개인적인 예상대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11일 석방됐다. 시티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관문인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이 자리한 반튼 주 출신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던 시티는 싱가포르 바로 아래에 있는 바탐섬 공장에 취직했다가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레이시아 유흥가로 갔다. 지난해 첫 조미 정상회담(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의 센토사섬에서 인도네시아 영토인 바탐섬이 보인다. 바탐은 관광과 산업이 고루 발달해 있으며, 여객선으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와 연결된다.
'김정남 사망 사건'(북한에서는 '김철' 사망 사건으로 부른다)으로 시티가 말레이시아 경찰에 잡히자, 바탐에 있던 시티의 어머니는 "우리 순진한 딸은 절대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정남이 죽은 공항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KLIA)이 아니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다. 인천공항과 쿠알라룸푸르를 잇는 항공편은 대한항공(KE)·말레이시아항공(MH)·에어아시아(AK) 3개로, 대한항공과 말레이시아 항공은 KLIA를, 에어아시아 같은 저가 항공은 KLIA2를 이용한다. KLIA와 KLIA2는 인접해 있으며 공항철도로는 5분, 택시로는 15분 정도 걸린다.
공항철도를 타면 공항에서 쿠알라룸루프의 중심부인 케이엘센트랄(KL Sentral)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공항철도표의 편도 가격은 55링깃, 1만5000원으로 비싸다. 케이엘센트랄은 철도역, 전철역, 택시 승강장, 호텔, 쇼핑몰, 환전소 등 여행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로 가득 차 있다.
'김정남 사건'은 2017년 2월 13일 KLIA2에서 일어났다. 당시 국내외 언론을 종합하면, 마카오에 살던 김정남은 관광을 목적으로 말레이시아를 자주 방문했으며, 한국인과도 폭넓게 접촉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그곳에서 접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사건 발생 일주일 전(2월 6일)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김정남은 사흘 뒤(2월 9일) 말레이시아 랑카위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미국 정보요원을 만나 거액의 현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랑카위는 말레이시아 북부에 있는 휴양지로,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김정남이 KLIA2에서 죽었을 때, 김정남이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 현금 13만8000달러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 책임자 완 아지룰(Wan AZIRUL)은 시티의 변호사가 한국계 미국인 정보요원의 이름, 그가 김정남을 만난 호텔 이름, 이들의 호텔 방 호수 등을 묻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수사 책임자의 법정 진술을 보면, 김정남의 노트북이 마지막으로 켜진 때는 미국 정보요원을 만난 날(2월 9일)이며, 김정남은 사망 하루 전날(2월 12일) 쿠알라룸푸르로 돌아 왔으며, 사망 당일(2월 13일) KLIA2에서 마카오로 가는 항공기를 타려고 했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대목은 김정남의 가방에 들어 있던 13만 달러가 넘는 현금이다. 말레이시아도 대한민국과 같이 1만 달러가 넘는 돈은 입국 시 신고하지 않으면 들고 나갈 수 없다. '국제통'인 김정남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우리 돈으로 1억5000만 원이 넘는 현금을 가방에 넣어 등에 멘 채 공항으로 갔다.
두 가지 유추가 가능한데, 첫 번째는 김정남이 이 돈을 들고 출국하려 했다는 추측이다. 이 경우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직적 혹은 개인적 협조와 묵인이 필요하다. 두 번째 추론은 이 돈을 출국 전 공항에서 누군가에게 주려고 했을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정보요원에게 거액의 현금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말레이시아를 자주 출입한 김정남에게 주어진 돈이 과연 이것뿐이었을까? 의문이 의문의 꼬리를 잇는다.
김정남이 죽기 전 일이다. 밤 비행기로 KLIA2를 통해 인도를 간 적이 있다. 그때 둘러본 공항 청사는 서울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비슷했다. 탑승 시간이 되어 탑승구로 가려는데, 따로 탑승구가 없었다. 공항청사 건물 밖으로 무리 지어 나가는 탑승객을 따라갔더니, '○○행(行)' 안내판이 쫙 붙어 있다. 공항버스가 오는가 싶어 안내판 밑에서 줄을 선 채 기다리는데, 팻말을 든 항공사 직원이 '탑승 시간이 되었다'며 맨 앞에서 '따라오라'고 했다. 피난민 행렬처럼 공항 활주로를 200미터 정도 걸으니, 인도행 에어아시아 항공기가 서 있었다.
김정남이 KLIA2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김정남이 돈이 없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돈이 있었다면, KLIA2가 아닌 KLIA에서 떠나는 항공기를 이용했을 텐데'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죽는 날까지 미국의 정보요원 곁을 기웃거리며 돈을 받아야 했던 이유가.
재판에서 석방된 시티 아이샤가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평범한 젊은 여성인 시티가 자신에게 몰아친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를 잊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일상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길 바란다.
참! '김정남 사건'이 발생하기 전, 말레이시아 여권 소지자는 북한 입국 시 비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시티의 석방을 계기로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도 본격적으로 정상화될 것이다. 사실 정상화라고 할 것도 없다. 사실 '김정남 사건' 이후에도 두 나라의 관계는 별로 나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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