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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무력화'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인가

[사회 책임 혁명] 스튜어드십 코드 이해(利害) 감별법

고대 로마 격변기 시대의 공화주의 정치가로 잘 알려진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변론가(辯論家)로도 유명했다. 기원전 80년, 친부살해(親父殺害) 혐의로 친척들에게 고발된 청년인 섹스투스 로스키우스(Sextus Roscius) 사건의 배심 법정은 키케로가 시민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명성을 얻은 무대였다. 키케로는 이 법정에서 로스키우스의 무죄를 증명해 냈고, 그의 친척들이 공모한 범행임을 밝혀냈다. 당시 로마의 실권자인 루키우스 술라의 최측근인 크뤼소고누스가 비호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진실에 다가서는 키케로의 질문 방식은 '퀴 보노(Cui bono)'였다. 즉,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논리적으로 곰곰이 따지는 식이었다. '퀴 보노'는 로마의 지혜로운 재판관으로 알려진 루키우스 카시우스의 철칙으로, 범죄의 동기와 관련해 지금도 매우 유용한 법언(法諺)으로 통한다. 대부호인 친부의 죽음으로 누가 이득을 얻었는가. 농장 13개를 재산 몰수 명단에 올리고 헐값에 사들인 로스키우스의 친척들과 크뤼소고누스인가, 아니면 친부의 죽음으로 오히려 더욱 가난해진 로스키우스인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보수적인 언론, 교수, 정치인 등이 나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악(惡)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공격의 핵심 대상이다. 모 언론은 국민연금의 2018년도 연간 수익률이 -0.92%로 발표되자, 스튜어드십 코드로 인한 경영 참여가 수익률 하락의 원인이라는 금융권의 의견을 기사에 넣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이행 로드맵 발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구성 등 준비단계 과정에 집중했을 뿐 이렇다 할 기업 관여가 없었다. 이 얼마나 견강부회(牽强附會) 같은 진단인가.

수익률만 해도 그렇다. 일본 GPIF -7.7%, 노르웨이 GPFG -6.1%, 미국 CalPERs -3.5%, 네덜란드 ABP -2.3%로 이 연금의 수익률 하락은 국민연금보다 심했다. 다만 캐나다의 CPPIB만 8.4%로 높았다. 주식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연기금의 수익률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약세로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 뿐이 아니다. 국민연금 수익률 하락은 직접운용보다 민간 위탁운용에서 더 심했다. 연기금 사회주의 방지, 운용 전문성 등을 이유로 주식 100%를 민간 위탁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입장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원칙이다. 지금이 주주총회 시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목적은 주총에서 주주권 행사, 즉 '스튜어드십 코드 무력화'에 있다고 추정된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그들의 언어는 관치, 경영간섭, 연기금 사회주의, 경영권 찬탈, 심지어 기업 죽이기 등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무력화하거나 도입 수준을 하향 조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십자포화(十字砲火) 용어는 고스란히 올해 주총 시즌으로 옮겨왔다. 혹세무민(惑世誣民) 수준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중심에 놓고 '퀴 보노(Cui bono)'와 '퀴 플라갈리스(Cui plagalis)' 원칙을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가 무력화되면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를 곰곰이 따져보자는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물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SRI), 국내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기업과 투자자의 관계, 산업과 자본시장에서의 국민연금기금의 역할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인식의 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인 기업과는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기업 가치과 주주 가치 제고를 바란다는 점에서 윈윈(win-win)의 파트너 관계다. 하지만 주주로서 건강한 긴장 관계를 통해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과 부패 등을 막을 감시자로서의 책임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 오너나 경영진은 이를 간섭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포섭과 제거 그리고 무력화는 이 간섭 피하기 위해 그들이 쓰는 주된 방법이다. 사외이사와 감사는 포섭했고,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소수 주주들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각종 법‧제도적 방안들은 반대를 통해 무산시켰다. 한편으로 그들은 사익편취를 일삼아 왔다. 최근 경제개혁연구소가 낸 '사익편취 회사를 통한 지배주주 일가의 부의 증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24개 기업집단의 39개 회사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회사 기회 유용 등 사익편취로 증식한 부의 총액이 35조8000억 원에 달한다고 조사되었다. 2016년 조사 때보다 4조8000억 원 가량 더 증가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무력화된다면, 누가 이득을 보겠는가. 우리나라 기관투자자 중 주요 기업의 의미 있는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 속된 말로 말발이라도 먹히는 투자자는 누구인가. 국민연금뿐이다. 그런데 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무력화 된다면, 누가 이득을 보겠는가. 오너 일가는 사익편취로 천문학적 이득을 얻었지만, 소수 주주와 국민은 그만큼의 손해를 봤다.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대가로 보수언론은 광고라는 이득을 챙겼고, 정치인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이득을 누렸다. 교수들은 사외이사나 감사 자리에 가는 이득을 누리거나 후보자 리스트에 기재될 가능성을 높였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무력화는 이득은 소수가 얻고 손해는 국민이 보는 현재의 구조를 지속시키자는 말에 불과하다. 스튜어드십 코드 반대론자들은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을 이유로 기업관여 활동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이유라면 코드를 더욱 철저하게 이행해야 한다. 코드의 원칙 2는 이해 상충 방지, 즉 독립성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립성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무죄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도 죄가 없다. 누군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불순한 프레임으로 가두려 한다면 그 누군가에 물어보라. 퀴 보노! 퀴 플라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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