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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도 정신 못차린 미국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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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도 정신 못차린 미국지도부

SEC위원장 '장관급 승격' 요구, 대통령은 한달간 장기휴가

미국경제가 붕괴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국 지도부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망언이 나와 미국민들을 개탄케 하고 있다. 망언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증권거래위원회(SEC) 하비 피트 위원장(56)이다.

피트 SEC위원장은 24일(현지시간) 상·하원 합동회의에 불려나갔다. 지금 미국자본주의를 뿌리채 뒤흔들고 있는 분식회계 사태를 막기 위한 개혁법안 문제 처리를 위해서였다.

평소 친기업적 발언을 일삼아온 그는 가뜩이나 의회로부터 "대기업 및 회계법인과 유착한 혐의가 짙어 미국금융당국의 수장 자격이 없다"며 사퇴압력을 받아온 처지였다. 그러나 피트는 의원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자신의 직급을 장관급으로 올려주고 봉급도 더 줘야 한다고 청원한 것이다. 직급이 낮고 봉급도 적어 기업들의 부정행위를 제대로 감독할 수 없었다는 식의 논리였다.

당연히 그의 제안은 의회에서 거절당했다. 의회뿐 아니다. 내심 못마땅해 하면서도 아직까지는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는 백악관도 즉각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거절했다.

현재 미국에서 정부 부처의 장관 이외에 장관 대우를 받는 사람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사회보장위원회(SSC)의 조 앤 반허트 위원장 둘뿐이다. 피트는 내심 '미국의 경제대통령' 그린스펀 의장과 동격으로 대우받고 싶어했던 셈이다.

CNN 보도에 따르면 피트 위원장의 연봉은 현재 13만8천2백달러로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그가 장관급이 된다면 16만6천7백달러가 된다. SEC내의 임원 4명의 보수도 현재의 13만 달러선에서 15만 달러선으로 인상된다.

***"이번 발언은 역대 최대 망언"**

피트의 발언을 접하고 가장 분개한 것은 미국언론들이다. 분식회계 사태 발발후 감독 소홀을 이유로 피트의 사퇴를 주장해온 미국 주요언론들이 당연히 피트에 대해 십자포화를 때리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피트 위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보다 많은 보수를 달라고 의원들에게 요청한 것은 그동안 피트가 해온 망언 가운데 어떤 것과도 그 시기의 부적절함과 불운한 상징성에서 비교될 수 없는 망언"이라고 질타했다.

WP는 "워싱턴에서 가장 성공적인 법률가로서 증권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자기 지위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스스로 저질렀는지 미스테리"라고 비꼬았다.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인 톰 대슐 의원은 "피트 위원장이 염두에 두고 있는 모든 일 중에서 자신의 승진과 보수에 대해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놀라운 뿐"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아무리 봐도 피트는 증권거래위원장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게 민주당의 대체적 의견"이라고 재차 그의 해임을 주장했다.

***'기업의 감시자'라기보다는 기업의 보호자'에 가까운 피트**

피트는 부시정권 출범후 SEC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SEC체제를 개편해 보다 친절하고 신사적인 기관으로 바꾸겠다"고 기업의 비위를 맞춰 물의를 빚었었다. 또한 측근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분식회계혐의로 SEC 조사를 받고 있던 제록스와 회계법인 KPMG 회장단을 사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피트는 또 미 기업들의 오랜 민원인 집단소송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기업의 감시자'라기보다는 기업의 보호자'에 가까운 처신으로 일관해 왔다.

당시 미 언론들은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모신 경험이 있는 회계사 출신인 피트 위원장이 이해상충에 휩쓸릴 위험이 커 개인투자자들을 보호하는 SEC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화당은 피트를 적극 감싸왔었다. 한 예로 공화당의 필 그램 상원의원은 "피트는 SEC 역사상 최고의 위원장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고 옹호했었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피트 때문에 말못할 속앓이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엘리트주의의 화신**

피트 위원장은 지난 주 한 오찬 모임에서 "왜 사퇴하지 않으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투자자들은 금융계 돌아가는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피트의 이같은 자신감은 그가 월가에서 쌓아온 법률가로서의 명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WP에 따르면 빈민층 출신의 피트는 자력으로 브루클린 대학을 졸업하고 세인트 존 대학에서 법률학위를 받는 등 성장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브루클린 출신의 가난한 소년"이라고 불렀다.

볼품없는 학력이지만 1971년 법대를 졸업한 뒤 SEC에서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은 후 1978년 명문출신만 모인 프라이드 프랭크 법률회사에 옮겨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일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일 중독자'로 불리며 그는 이 회사에서 23년간 일하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 파트너로 발돋움했다. 1년에 3천시간 근무에 대한 서비스료를 청구하는 일은 그에게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외 활동도 활발히 해, 과연 이같은 엄청난 업무를 어떻게 소화해 낼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이 회사에서는 전설로 남아있다.

그러나 WP는 "피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처럼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최대의 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비꼬았다.

프라이드 프랭크에서 피트와 절친했던 한 파트너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채 "그는 개성이 강하고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고집하는 유형"이라면서 "그는 소신이 너무 강해 주변의 사람의 평가가 양극단으로 갈리게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피트의 '엘리트주의'가 그의 시대착오적 망언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부시는 한달간 장기휴가 발표하기도**

미국민을 절망케 하는 것은 피트의 망언뿐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24일 미국경제가 주가 폭락으로 초토화되고 있는 와중에 한달간이나 텍사스 목장으로 장기휴가를 떠나겠다고 발표해 언론의 호된 비판을 자초했다.

미 언론들은"위기에 빠진 미국을 책임질 대통령이 지금 한가롭게 한달씩이나 휴가를 갈 수 있느냐"며 "대책이 없어 일단 도피하고 보자는 게 아니냐"고 비아냥대고 있다.

지금 미국의 최대위기는 "미 지도부내에 개혁주체가 없다"는 폴 크루그먼 교수(프린스턴대)의 지적이 새삼스럽게 피부에 와닿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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