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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인터뷰 上]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을 보면 2018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1349달러(3449만4000원)를 기록했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로서는 일곱 번째다.

반면, 하루 5명이 일하다 죽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거의 놓쳐본 적이 없다. 1994년 이후 통계가 공개된 2016년까지 23년 동안 두 차례(2006, 2011년)만 터키에 1위를 내줬을 뿐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1957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추락해서, 끼어서, 깔려서 죽는 '재래형' 사고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1970년 산업화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죽음이다. 소득 3만 불 국가이지만 명실상부한 산재 사망률 1위 국가이기도 한 셈이다.

이러한 이중구조의 배경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일하다 노동자가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왜 사람이 일하다 죽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는 그들의 죽음이 일부 제조업에서,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망 사고로만 치부되기 때문이다. 죽은 노동자들은 그저 불쌍한 존재로만 기억된다.

그래서일까. 노동부에서 산업재해 조사를 한다 해도 그저 사건사고로만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자연히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가 공론화되기는 요원하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산업재해 보고서의 공개'와 '근로감독관의 독립성'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태선 교수는 '왜 21세기 한국 사업장에서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가 발생했을까?'라는 주제로 2017년도 한국산업보건학회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산업보건 전문가다.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를 작업현장의 위험성에만 주목하지 않고, 좀더 근본적인 문제, 즉 구조적 문제로 접근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일하기면서 산업재해 현장을 직접 조사하기도 한 강 교수는 산업재해의 이론과 현장을 두루 겸비한 전문가다. 그에게 한국 사회에서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와 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와의 인터뷰를 두 회에 걸쳐 지면에 싣는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전문.

"최근에야 산재를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연구 이뤄져"

프레시안 : 강 교수님은 산업보건 전문가다. 일반인들은 산업보건 분야가 무엇을 연구하는지 잘 모른다. 이 분야를 설명해 달라.

강태선 : 직업과 관련해서 병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쪽이 직업환경보건이다. 우리는 엔지니어링 파트다. 작업환경을 살펴보고 유해인자를 측정한다. 만약 측정했는데 유해인자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하면, 이를 줄여야한다. 그런데 이를 줄이는 방안은 공학적 방안이다. 예를 들어 유해인자가 많으면 환기를 하도록 하는 식의 솔루션을 내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프레시안 : 관련 연구도 많이 했을 듯하다.

강태선 : 우리는 유해인자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관련된 연구를 한다. 나는 화학물질 소음에 대한 평가와 개선에 관한 연구를 주로 했다.

프레시안 : 메탄올 실명 노동자 관련 연구로 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15년 12월에부터 2016년 2월까지 삼성전자 등에 휴대전화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3차 협력업체들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이 잇따라 실명했다. 사안은 휴대전화 제작 과정에 사용하는 메틸알코올 중독이었다. 다섯 명 모두 모두 20대였다. 메틸알코올은 투명·무색의 인화성 액체로 식용 알코올과 달리 고농도에 노출될 경우 두통 및 중추신경계 장애가 유발되며 심할 경우 실명까지도 올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메틸알코올이 작업 과정에서 사용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 메탄올 실명 노동자. ⓒ민석기

강태선 : '원인과 구조'와 관련된 조사연구였다. 노동건강연대와 같이 했다.

프레시안 : 그 논문을 읽어봤는데, 메탄올 실명 사건을 단순 사건이 아닌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구조적으로 짚는 논문이었다. 사실 산업재해 사고를 그렇게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연구논문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강태선 : 산업보건학에서는 메탄올 사고 같은 건이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나간다. 그야말로 직접원인을 조사하는 식이다. 직접원인은 메탄올 중독이다. 메탄올에 과다 노출된 게 실명의 이유다. 그렇기에 작업장 내 메탄올 농도를 측정한다. 작업장에서 공기 중 노출기준이 200ppm인데, 이를 넘는지 아닌지를 조사한다. 그래서 노출기준을 초과하면 직업병으로 인정받는다. 그다음 피해자만이 아닌 다른 환자가 있는지 살펴보는 정도가 기존 방법론이었다.

그런데 내가 시도한 것은 좀 다른 방식이었다. 기존 방법론으로 조사하는 내용들은 직접원인을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근본원인은 따로 있다. 노동자가 메탄올에 과다 노출되기까지의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구조적 원인을 살펴보는 것을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해왔다. 직접원인이 아닌 간접원인까지 파악한 뒤, 이를 개선사항에 포함시켰다. 간접원인도 정책적으로도 고려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전에도 그런 식의 연구조사가 있었나.

강태선 : 그런 조사를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보건학에서 이전까지 그런 조사가 많이 시도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최근에서야 그렇게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 : 사실 산업재해 관련해서 그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짚는 연구나 조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대중들도 산업재해가 단순사고가 아닌 구조적 모순에 의해 발생한 사고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듯하다. 노동부에도 산업재해 관련, 조사 보고서가 있지 않나.

강태선 :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작업장 내에서 중대재해(사람이 죽거나 10명 이상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면 조사를 무조건 진행한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산재 보고서, 있지만 공개는 불가"

프레시안 : 노동부 등에서 진행하는 사고조사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나.

강태선 :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전문가가 중대재해를 조사한다. 말이 조사이지 사실상 수사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전문가가 조사를 지원하고,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수사관으로 활동하는 구조다, 그리고 수사결과는 검찰에 송치한다. 이러한 사건이 한 해 1000건 정도 된다.

프레시안 : 중대재해 관련, 조사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되나.

강태선 :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중대재해조사 의견서라는 형식으로 문서를 작성한다. 일종의 보고서인데, 내용이 매우 괜찮다. 사고 관련, 근본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장 내의 4M(machine(기계, man(사람), management(관리), media(환경))을 조사한다.

프레시안 : 생각보다 다각도로 조사하고, 그에 따른 보고서를 작성하는 듯하다.

강태선 : 그들이 기술적으로 전문화된 이들이지만, 사고조사 방법론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전문성과 경험을 가지고 조사하는 거다.

프레시안 : 조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강태선 : 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입각해서 진행한다. 그것을 기준으로 조사한다. 보고서는 10페이지 이내로 돼 있는데, 기술적으로 상당히 자세하다. 전기공학, 토목공학, 기계, 건축공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결합해서 조사하기에 기술적으로는 내용에 깊이가 있다. 하지만 간접적인 원인, 즉 구조적 원인인 도급에 관한 내용 등은 기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런 문제를 피하기까지 한다.

프레시안 : 산안법에 부합하는 것만 조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태선 : 법 적용 때문이다. 법 적용은 근로감독관의 몫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전문가들이 중대재해 보고서를 사고 발생 14일 안에 근로감독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근로감독관은 그 보고서와 자기가 수사한 내용을 종합해 법 적용을 따져본다.

프레시안 : 한마디로 조사가 아닌 수사가 본래 목적이기에 중대재해 보고서도 결국, 사업장에 어떤 법, 즉 산안법의 무엇을 위반했는지를 조사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중대재해 보고서는 공개가 되나. 사실 그런 보고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강태선 : 수사 기록이기에 비공개가 원칙이다.

프레시안 : 산업재해 취재를 위해 자료를 찾아도 산재사고 보고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나오는 한 장짜리 보고서가 전부다. 육하원칙에 따라 사고를 간단히 설명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매우 자세한 중대재해 보고서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강태선 : 관행이다. 피의사실공표 관련해서는 사회적 요구가 없었던 것이다. 이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런 보고서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산재 자료의 공개화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산재관련 데이터가 매우 부족한 게 문제인 듯하다. 있는 것도 거의 비공개로 돼 있는 상황이다.

강태선 : 산재통계 관련해서, 근로환경조사가 1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것은 공개돼 있다. 이런 데이터도 활용하면 된다. 산재보험통계는 공개가 안 되지만, 개인정보를 가리고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대재해조사 보고서도 다 공개는 어렵더라도, 지금보다는 분석 가능한 데이터로 공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기본으로 많은 사람들이 결합해서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어떻게 제거할지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프레시안 : 산재 관련해서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던 듯싶다. 산업안전 관련해서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하는 학자도 부족하다고 한다.

강태선 : 사실 이쪽 분야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목표가 0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골키퍼 같은 역할이다.

프레시안 : 골키퍼는 골을 막는 거라도 우리가 볼 수 있지만, 산업안전 분야는 막는 것을 볼 수도 없는 듯하다.

강태선 : 막는 것은 당연하고, 사고 나면 책임까지 져야 하는 분야다. 그렇다 보니 이쪽 분야가 아무래도 사람이 부족한 편이다.

프레시안 :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나 통계자료가 공개되지 않는 문제도 있는 듯하다. 산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해서 연구를 해보려 해도 관련 데이터를 구할 수 없어 포기했다는 연구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강태선 : 그래서 산재관련 자료는 공개화가 필요하다. 물론, 개인적인 내용도 있으니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목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이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산업재해가 왜 발생하는지 분석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구들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다. 빅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재해 관련해서는 빅데이터로 쓸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를 비롯한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

"이전까지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프레시안 : 피해자나 유가족이 나서서 설명하지 않는 이상은 관련 내용을 거의 접할 수 없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현대중공업 노조에서는 '즉보'라는 것을 내는데, 한 장 짜리다보니 사고의 이면은 알 수 없다.

강태선 :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중대재해 관련해서 대형 사고의 경우, 조사위가 하나둘씩 운영되고 있다. 김용균 씨 관련, 석탄발전소도 조사위가 뜨지 않았나. 거기에는 유족들 힘이 컸다. 김용균 씨 어머니가 큰 힘을 발휘했다.

프레시안 : 이전에는 왜 그런 조사위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강태선 : 이전까지는 그런 사고가 발생해도 조사 관련해 누구도 문제로 삼지 않았다. 조사를 요구한다든가, 조사의 부당함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중대재해는 그냥 보상의 문제로만 넘어갔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 들어서 그런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진 듯하다. 정치가 의지를 가지면서 프레임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나.

강태선 :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월에 자살, 산재, 교통사고 이 세 분야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천명했다. 의미 있는 선언이고 어려운 목표다. 하지만 7%의 경제성장만 이야기하던 이전 대통령과 달리 그런 목표를 제시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대통령 중에서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

프레시안 : 대통령이 김용균 씨 어머니도 만났다. 대통령이 산업재해 피해유가족을 만난 적도 없었던 듯하다.

강태선 : 김용균 씨가 우리 사회에 끼친 파장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산안법이 28년 만에 개정되지 않았나. 산안법은 전문가 내지는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일부 사람들만 알던 법이었다. 노사도 모르던 법이었다. 노조도 대기업 노조만 알던 법이었다. 그런 산안법이 명실상부한 '사회법'이 됐다. 세상 사람들이 아는 법이 됐다는 이야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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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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