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입장 차이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 입장 차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미 사이의 핵심 쟁점이 '영변+알파' 대 '제재 해제'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앞으로 북미 간의 협상이 재개될 때 이 내용이 관건이고, 이것이 향후 협상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락사무소-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사실상 합의에 이르렀던 만큼," 영변+알파와 제재 해제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빅딜 문서" vs '항복 문서'
하지만 이러한 진단과 전망은 안일하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적인 결렬 원인은 비핵화의 정의 자체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컸다는 데에 있었다.
<뉴욕타임스>, 확대 정상회담에 배석한 존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 등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의 정의를 담은 문건을 건넸다. 볼턴은 이 문건에 "핵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라"는 내용이 담겼고 이것이 바로 "미국이 원하는 광범위하게 정의된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에 동의하면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볼턴은 이를 두고 "빅딜 문서"라고 주장했지만, 이 문서를 받아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패전국에게나 강요하는 '항복 문서'로 간주했을 것이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까지 포기하라는 것은 무장 해제를 요구한 것이자, 이른바 '리비아 모델'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리비아의 카다피는 2003년 12월에 개발 초기 단계에 있었던 핵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모두를 폐기하는 데에 동의했지만, 8년 후에 서방 국가들의 군사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었다.
이렇듯 미국은 자신이 정의한 비핵화의 관철을 목표로 삼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제재 완화 대 영변+알파'를 둘러싼 갈등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기실 '제재 완화 대 영변+알파'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최대 쟁점이었다면, 막판 조율을 통한 타협은 가능할 수도 있었다. 가령 미국이 지목한 영변 외 우라늄 농축 의혹 시설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현장 방문을 북한이 수락하는 것으로 타협안을 논의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쟁점에 집중해서 협상하기보다는 비핵화 문건을 꺼내들었다. '노딜'을 예감하면서 말이다.
비핵화의 정의부터 다자 협상에 이르기까지
이는 앞으로의 협상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의 정의 및 최종적인 목표에 관해 공동의 인식을 함께 하면, 초기 이행조치에 있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반면 비핵화 자체 및 최종적인 목표를 두고 동상이몽이 크면, 초기 이행조치 합의 및 이행도 어려워진다. 이게 바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본질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바로 이 점을 직시하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한국식 '비핵화의 정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비핵화의 정의로 삼았다.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할 때에는 미국이 주장해온 'CVID'나 'FFVD'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미간에 비핵화에 이견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차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는 결코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이견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젠 비핵화가 같다고만 하지 말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비핵화의 개념과 목표를 정립할 때인 것이다.
둘째는 이에 기반해 '제재 완화 대 영변+알파'로 구성되는 1단계 이행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북한은 물론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통째로 폐기할 의사를 피력했다. 제재 완화와 관련해 미국이 과거보다 다소 유연해진 입장을 피력한 것도 협상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대목이다. 하여 관건은 '+알파'에 있다.
'알파'의 범주를 명확히 하면서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영변+알파'에 '제2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포함된 것이냐'는 질문에 "정확하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제시하자 북한이 놀랐다"고 주장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트럼프가 제2의 농축 우라늄 시설의 위치를 안다고 밝힌 만큼, 외부 전문가들의 현장 방문을 통해 확인부터 해보자는 것이다. 일종의 '금창리 방식'인 셈이다. 확인 결과 우라늄 농축 시설이 맞다면 북한은 마땅히 폐기에 동의해야 하고 다른 시설이라면 추후 과제로 넘길 수 있게 된다.
셋째는 한국이 중재자나 제3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직접 협상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미 양자 협상 구도의 한계는 명확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장외 중재자' 역할을 해왔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곤 예상조차 못했다. 남북간, 한미간에 긴밀한 소통과 공조가 이뤄져 왔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제3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협상 당사자'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면서 북미 양자 협상 구도를 조속히 '다자화'해야 한다. 남북미 3자든, 남북미중 4자든, 러시아와 일본까지 포함하는 6자든 말이다.
한국이 협상에 참여하는 구도를 만들어야만 때로는 '장내 중재자' 역할도 할 수 있고, 때로는 큰 그림을 제시하면서 주도자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고 북미 협상 구도의 불확실성은 너무나도 크기에 어떤 형태로는 한국이 협상 당사자로 참여하는 틀을 만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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