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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꿈의 기적'…(인생 막장에서)‘기사회생한’ 폐광촌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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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 전 대통령 '꿈의 기적'…(인생 막장에서)‘기사회생한’ 폐광촌 50대

무일푼 빚쟁이가 5년 만에 10억대 부자로 ‘승승장구’

폐광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을 1주일 간격으로 3번이나 꾼 빚더미에 빠진 50대가 5년 만에 10억대 재력가로 기사회생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파산으로 인한 가정파탄이후 라면으로 끼니를 겨우 때우면서 월 3만 원의 사글세 마련이 힘들 정도로 벼랑을 헤매던 사람이었다.

A씨(56)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40여 년을 월세 방을 전전할 만큼 생활이 궁핍했다. 특히 탄광에서 노동운동 2년여 만에 파산위기에 처하자 부인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겼었다.

▲사북광업소 벽면에 새겨진 산업전사 광부의 얼굴. ⓒ프레시안

그의 당시 회고담.

“탄광 노조위원장으로 임금교섭 당시 사장이 제안했다. 임금인상 100%로 하되 실제로는 50%만 임금을 인상하고 나머지 50%는 노조위원장과 사장이 절반씩 나눠 갖자는 것이다. 나는 ‘동료를 팔아 내 이익을 챙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형편이 어려운 동료에게 쌀을 지원하면서 노조위원장 2년 만에 빚이 억대에 달했고 결국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부인과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낙담하지 않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을 이어올 정도로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을 가장 소중하게 지켜왔다.

마침내 운명이 바뀌게 될 2014년이 밝았지만 그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하루 삼시세끼를 라면으로 해결해야 했고, 그나마도 1주일에 3일 이상은 김치도 없이 라면만 먹어야 했다.

드디어 그해 5월 하순, 그는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5년 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타나 문을 노크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A씨의 회고.

“당시 신세한탄을 하며 설 잠이 든 상태였다. 누가 방문을 노크해 문을 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 말도 없이 문 앞에 서 있었는데 다가가자 (나의)어깨를 격려하듯이 만져주면서 한 손으로 부엌의 선반을 가리켰다. 월세 3만 원짜리 단칸방에 비좁은 부엌의 선반을 열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길이 3미터 가량의 선반에 황금덩이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생생해 꿈이 아니고 마치 생시 같았다.”

이튿날 그는 신기한 꿈을 생각하며 복권방에 달려가 수중에 있던 2만 여 원을 털어 로또복권을 구입했다. 그러나 대박은커녕 모두 ‘꽝’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황금의 꿈을 의미 없는 ‘개꿈’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첫 꿈을 꾸고 정확히 1주일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꿈에 나타나 처음처럼 ‘방문 노크, 어깨를 두드리며 손짓하는 선반, 황금이 가득한 것 등 처음과 똑같은 꿈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1주일 후 그는 다시 꿈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고, 처음과 두 번째 동일한 내용의 꿈을 꾸었다.

1주일 단위로 3번 연속 똑같은 꿈이 보통 꿈은 아니라는 생각에 무언가 계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 그는 생전 처음 봉하마을에 3차례 찾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했다.

그리고 그는 지역에서 용하다는 철학관과 스님을 찾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해몽을 부탁했다.

A씨의 계속된 회고.

“똑같은 꿈을 3번이나 1주일 간격으로 꾼 뒤 예사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하늘이 계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봉하마을에 3번 찾아가 참배를 한 뒤 철학관과 스님을 찾아가 꿈 해몽을 부탁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분명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징조다. 복권으로 인생역전 같은 우연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은인이 나타나 좋은 길을 안내할 것이라는 해몽을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꿈을 꾼 뒤 식당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평생 식당 한 번 해본 경험도 없고 음식 솜씨도 특별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당시 그는 식당을 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지만 당장 단칸방 사글세 3만 원도 낼 형편도 안 되는 처지였지만 용기가 생겼다.

출근하던 봉사센터 사무실에서 알게 된 40대 후반의 피자가게 여주인에게 용기를 내서 말했다.

“이제는 봉사센터 출근을 접고 식당업을 하고 싶은데 돈도 없고 어느 곳에서 식당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도와 달라.”

그러자 그를 좋게 본 피자가게 여주인은 정보지에서 매물로 나온 식당을 추천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계약금 50만 원, 가게 리모델링과 식당 그릇, 식탁, 재료비 등을 위한 비용도 수천만 원에 달했지만 일단 식당 계약부터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때부터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식당 보증금 50만 원을 피자가게 여주인이 조건 없이 선뜻 내준 돈으로 식당을 계약하자 곧장 친한 친구가 찾아와 2000만 원을 내밀며 ‘나중에 벌어서 갚으라’며 조건 없이 빌려줬다.

또 식당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 식당 리모델링을 해주는가 하면 식탁과 그릇, 식당에 필요한 대형 솥 등 수천만 원의 비용을 자발적으로 지원해 주어 식당계약 2개월 만에 개업 준비를 모두 마치게 되었다.

그의 회고담.

“식당 개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벌어진 일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식당 계약금을 준 피자가게 여주인도 그렇고 주변의 이웃들이 자비를 들여 리모델링에 나서주고 친구가 갑자기 찾아와 보증금 2000만 원을 조건 빌려준 일들이 그랬다.

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그릇과 집기를 비롯한 냉장고와 각종 식당용품을 구입해준 이웃은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해 12월 1일 개업을 한 뒤 신기하게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막다른 벼랑 끝에서 어렵게 개업했기 때문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2년 만에 빚 2억 원을 모두 갚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 3층짜리 식당건물을 7억 원에 인수하였다. 일부 잔금은 은행대출로 해결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을 꾼 이후 벼랑에 몰렸던 인생이 그야말로 술술 풀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재단

식당 개업 3년이 지나면서 그에게는 천지개벽 같은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2억 원의 빚을 상환하고 시가 7억 원에 달하는 건물을 매입했다. 또 식당개업의 일등공신인 피자가게 여주인과 재혼에 성공하는 등 만사형통이 생겼다.

이때부터 그는 매월 하루는 가게 문을 닫아 걸고 어르신들에게 보은잔치를 베풀었다.

그는 “식당 개업 3년이 지나고 빚이 정리되고 만사가 모두 풀리게 되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모두 고객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월 1회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해 무료로 정성껏 식사를 대접했다. 처음에는 50여 명에서 출발했으나 100명, 150명, 200명으로 늘어났다.

재혼하기 전에 피자가게 여주인이 매번 10마리 이상의 치킨과 피자를 어르신 보은잔치에 일부러 찾아와 놓고 갔다. 인생을 정말 잘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더라. 나중에 재산은 2세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다.

주변에서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것을 보고 정치적인 꿈이 있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거나 심지어 비방과 시샘도 수 없이 받았다. 식당을 개업하기 전에 용하다는 스님을 찾아가 상호를 부탁했다. 당시 스님은 ‘당신은 60세 전에 큰돈을 번 다’는 말씀을 하시며 작명대금은 나중에 갚으라고 해서 식당이 성공한 뒤 매년 쌀을 시주하고 있다. 주변에 고마운 이들이 너무 많다. 평생 고마운 이들에게 신세를 갚고 보은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고 싶다.”

한편 잘 나가던 시기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그가 어르신들에게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큰 딸의 장녀가 5세 때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찾았는데 뇌종양이 머리 전체를 덮고 있어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온 집안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 또 하나의 기적이 생겼다. 대학병원 진단에서 손녀의 뇌종양이 대부분 사라져 완치 단계에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의 회고.

“뇌종양 판정 1년이 지난 딸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수년간 봉사활동을 한 보은의 혜택으로 생존 가능성이 없던 딸이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는 전화였다. 이것은 아버님이 이웃에 베푼 봉사의 힘이라고 딸은 거듭 감격해 했다.

처음 손녀의 뇌종양 말기 판정에 이어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 한 없이 솟구쳤다. 이때 아무리 어려워도 봉사활동을 멈춰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를 했다. 사실 매월 한 차례 토요일 하루 영업을 하지 않고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는데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손녀의 완치에 가까운 기적 같은 소식에 봉사활동을 멈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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