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Key Resolve) 연습과 독수리훈련(FE:Foal Eagle)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두 훈련의 현재 이름이 지어진지 각각 11년, 44년만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은 지난 2일 전화통화를 하고 KR과 FE훈련을 종료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더는 이런 이름의 연합훈련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방부는 3일 양국 국방부 장관이 통화에서 이런 결정을 했다고 발표했다.
키리졸브연습은 한미 연합군사령부가 연합사 '작전계획 5027' 등을 적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워게임(War Games)을 말한다. 연합방위태세 점검과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발생할 때 이를 수행하는 절차에 중점을 둬 실시되는 연합전구급 지휘소연습(CPX)이다.
한측에서는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 작전사령부, 국방부직할·합동부대가, 미측에서는 연합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 태평양사령부 등이 각각 참가한다.
연합전시증원(RSOI)연습이던 이 연합훈련은 2007년 키리졸브로 바뀌었다. 당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합의하면서 기존 연합훈련의 기본 모델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판단에 따라 일차적으로 명칭 변경을 검토한 데 따른 것이다.
이어 2008년 미측의 주장에 따라 '주요한 결의'란 뜻의 키리졸브연습이 처음 시행됐다. 당시 미측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 결의를 표현하고자 키리졸브란 이름으로 작명했다. 1976년에 시작된 팀 스피릿(Team Spirit) 훈련이 시초이다. 이 훈련이 RSOI로 바뀐 것이다.
작년에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로키'(low key·절제된 대응)로 진행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빈발했던 2017년에는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등 전략무기가 참가한 가운데 공세적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26일부터 키리졸브연습의 예비단계인 위기관리연습(CMX)이 시행되고 있다. 오는 4일부터 7일간 시행될 본훈련은 명칭이 바뀐다. CMX와 본훈련을 위해 필수 미군 병력이 들어왔다. 주말을 빼고 시행되므로 오는 12일께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략무기는 참가하지 않는다.
한미는 훈련 일정에 이어 훈련 시나리오도 변화하는 안보 상황에 부응하고자 대폭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부 반격 연습은 하지 않는 등 축소 시행한다고 한다.
그간 KR 연습은 1부, 2부로 나눠 2주가량 시행됐다. 올해 2부 반격 연습은 생략하되 1주일 훈련 기간에 'ROC-Drill'(작전개념 예행연습)과 같은 개념으로 '점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우리 합참이 훈련 계획을 수립하고, 대항군 운용과 사후검토를 주도했다. 올해도 우리 군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검증의 첫 단계인 최초 작전운용능력(IOC: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훈련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 명칭이 사라지는 독수리(FE) 훈련은 1961년 소규모 후방지역 방어훈련으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독수리'란 한글 명칭으로 시행됐다.
이후 1975년부터 연합·합동작전과 연합특수작전 개념을 추가해 'Foal Eagle'(독수리훈련)이란 영어로 바뀌었다. 1982년 이후에는 정규전 개념을 적용해 특전부대의 침투·타격훈련과 중요시설 방호훈련을 병행하는 야외기동훈련(FTX)으로 확대됐다.
2002년부터 훈련 효율성 제고와 전투력 향상을 위해 RSOI연습과 통합해 시행했다. 2008년 RSOI가 KR 연습으로 바뀌면서 KR/FE연습으로 통합해 시행해왔다.
최근에는 연합기동훈련, 해상전투단훈련, 연합상륙훈련, 연합공격편대군훈련 등 한미 연합작전과 후방지역 방호작전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으로 발전했다.
이달 중순부터 대대급 이하의 소규모 부대가 참여해 상시로 연합훈련을 하게 된다. 훈련 명칭은 FE를 쓰지 않고 훈련 부대간 알아서 정해 붙이면 된다.
매년 8월께 실시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명칭도 사라질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없이 결렬됐음에도 한미가 방침을 바꾸지 않고 훈련 종료를 곧바로 발표한 대목이다.
여기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탄도 미사일 실험 중단을 계속 유지할 뜻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밝힌 점이 우선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북미협상의 가변성이 커졌지만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의 '쌍중단' 구도를 한미 쪽에서 먼저 깰 경우 북한의 강경한 대응이 예상되는 만큼 상황을 관리하는 측면을 감안한 셈이다.
'트럼프 요인'도 빼 놓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할 생각인가 아니면 중단 상태로 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군사훈련은 내가 오래 전에 포기했다. 왜냐면 할 때마다 1억 달러의 비용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폭격기들이 괌에서부터 와야 한다. 내가 처음에 이걸 시작할 때 한 장군이 '네. (폭격기가) 괌에서 옵니다. 바로 옆입니다'라고 했는데 바로 옆이 7시간 거리다. 폭격기들이 와서 수백만 달러의 폭탄을 떨어뜨리고 돌아가는 거다"며 "우리가 이런 훈련에 수억 달러를 사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시사하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는 군사연습(War Games)을 중단할 것이고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을 절감시킬 것"이라며 "그것(한미연합군사훈련)은 매우 도발적이고 이런 환경 아래에서 우리는 완전한 거래를 협상하고 있다. 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연합훈련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에 따라 앞으로 미군 전략무기가 대거 한반도에 투입되어 훈련하는 사례는 당분간 없을 전망이다.
미국은 올해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도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연간 한반도로 출동하는 전략무기 전체 예산을 월별로 나눠 일정액을 우리나라에 부담시키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 훈련은 작년초 시작된 한반도 정세의 변화 흐름 속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미연합방위 태세에 일정한 희생을 감수한 채 북핵 폐기 협상 지원이라는, 보다 장기적 안보 이익을 감안해 내린 이번 결정에 대한 평가는 진행 중인 비핵화-평화 프로세스의 결말을 지켜봐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프로세스가 비핵화-평화협정-북미수교에 도달할 경우 한미의 '용기있는 전략적 결단'으로 평가받을 전망이다. 반대로 교착이 길어지거나 역진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대비태세만 약화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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