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이 회담 취소도 아니고 회담 도중에 판이 깨져버리자 영미권 언론들은 일제히 "나쁜 합의를 하는 것보다 합의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고, 미국의 시사전문지 <애틀랜틱>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입김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중에서 미국의 양대 주류 매체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1일 이번 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배경을 분석하고, 실망스러운 회담 결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차분한 후속 대응을 주문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북협상 중단은 실책이 될 것"
<뉴욕타임스>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걸어나온 것은 옳았지만, '환상적인 성공'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 김정은 위원장이 요구 수준을 높이도록 자초했다"면서 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요인을 분석했다.
이어 신문은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정상회담은 합의가 미리 준비된 상황에서 한다"면서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외교적 절차에 대해 인내심을 보인 적이 없고, 개인적인 관계로 돌파할 수 있다는 과도한 믿음을 보여왔으나 이번 회담에서 분명히 이런 믿음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신문은 "아직 외교적 희망은 남아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실험 중단과 영변 핵시설 동결을 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북측이 요구하는 대가가 너무 크지 않다면 합의를 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미국이 그 대가로 제공할 수 있는 '합당한 수준'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철도 연결 등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 완화"라고 제시했다.
신문은 "이렇게 제한된 합의는 앞으로의 외교가 추진할 목표가 되어야 한다"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중재 역할을 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지지 속에 이런 목표를 추진할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요인 중 하나로 미국의 양극화된 정치를 꼽았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수용해 대북제제를 철회하기로 약속한들 미국의 정권이 바뀔 경우에도 지켜질 수 있을지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과 미국 모두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전력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냉전 시대만 해도 정권이 바뀌어도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는 편이었던 미국은, 조지 W. 부시 정부 이후 협상 상대국과의 약속을 정권이 바뀌어도 지킨다는 신뢰를 잃었다.
이란과의 핵협정을 보자.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대가로 경제제재를 철회하기로 국제적인 다자간 형식으로 합의가 됐지만, 사실상 실질적인 제재 해소가 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로 바뀐 이후 아예 미국은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는 '리비아 모델'도 있다. 지난 2003년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한 대가로 당시 부시 행정부는 관계개선과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 이행조치는 이뤄진 것이 거의 없었다. 이후 리비아의 최고지도자 무하마르 가다피는 미국이 지원한 반군에 의해 제거됐다.
북미간의 역사도 상호 신뢰하기 힘든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도 거짓말과 합의 위반을 반복해서 저질렀지만, 미국도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영변 핵시설 동결 등의 대가로 미국은 2개의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을 약속했다. 당시 빌 클린턴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부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아예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고 더욱 강경한 대북 노선으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가. 전임 오바마 정부의 정책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거나 심지어 반역적 정책으로 취급하고 있다.
신문은 "북한으로서는 트럼프 정부와 맺은 합의가 후임 정부에서 존중되고 지켜질 것인지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미국은 극단적인 정치분열로 국제적인 신용과 일관성에 손상을 입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도 "대북 문제 해결에 대한 트럼프의 의지가 진지한 것이라면, 북측의 위협을 줄이고 북한 개발로 나가아기 위한 장기적이고 신중한 협상 과정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대북 협상을 중단하는 것은 실책이 될 것이며,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현명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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