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밥집 강씨 아저씨의 '1백번째 손님' 이야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밥집 강씨 아저씨의 '1백번째 손님' 이야기

'책 읽어주는 부행장'의 주말이야기<13>

김종욱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이 한 편의 따듯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보내왔다. 이메일 동호인회의 류영하님이 보내준 글이라 했다.

여기에 무슨 사족이 필요하겠는가. 월드컵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읽어볼 일이다. 편집자

***국밥집 강씨 아저씨의 '1백번째 손님' 이야기**

국밥집 주인 강씨 아저씨는 손님을 기다리며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의 손님들이 한 차례 지나간 뒤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때늦은 점심을 찾는 손님이 몇은 더 있음직한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천천히 문이 열리면서, 머리카락이 허연 할머니가 들어섰습니다.
그 뒤에 열 살도 채 안돼 보이는 소년이 마치 꼬리를 잡듯 할머니의 한 손을 꼭 잡고 따라 들어왔습니다. 옷차림이 남루하고, 얼굴에는 궁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 저어... 쇠머리국밥 한그릇에 얼마나 하는지...?”
“4천원입니다.”

강씨 아저씨는 사람좋은 웃음을 온 얼굴에 가득 담아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몸을 조금 돌려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주머니 안에 든 동전까지 조몰락거리며 헤아려보더니 소년을 자리에 앉히고
할머니는 맞은쪽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한그릇만 주세요.”
“예?”
“난 점심을 이미 먹었다오.”
“아, 예. 맛있게 말아드리겠습니다.”

국밥 한그릇이 할머니와 소년의 가운데에 놓였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아가야, 어서 많이 먹어라.”
“할머니, 정말 점심 먹었어?” 소년은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배불리 먹었다. 너나 어서, 어서 먹어라.”

그제서야 소년은 국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게걸스럽게 먹는 동안 할머니는 깍두기 하나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국밥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어느새 뚝배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서 혀로 입술을 핥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씨 아저씨가 그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오늘 참 운이 좋으십니다. 할머니는 오늘 우리 집의 백번째 손님입니다.”
“뭐라구요?”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씨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소린지 몰라 불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우리집에서는 그날의 백번째 손님께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작은 복권을 하나 타신 셈이지요.”
“아니, 그게 정말인가요?” 할머니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웬 횡재냐?’하는 기색을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 그럼요. 오늘은 그냥 가시고, 다음에 또 오십시오.”

한손으로 돈주머니를 꽉 쥔 할머니는 쪼글쪼글한 주름살 속에 숨겨두었던 반색을 죄다 드러내며 환히 웃었습니다.
문을 열어주며 할머니와 소년을 배웅하는 강씨 아저씨는 그보다 더 밝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2개월쯤 뒤, 할머니와 손자가 또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 들렀습니다.
그들을 알아본 강씨 아저씨는 대뜸 “할머니는 참 복이 많으시군요”라며 반겼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백번째 손님의 행운을 그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씨 아저씨가 무심코 창 밖을 내다보다가 길 건너 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낯익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왔던 소년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한참 유심히 살핀 뒤에야 소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냈습니다.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 손님이 한사람 들어올 적마다 돌맹이 하나씩을 땅에 그린 동그라미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심 손님이 거의 끊어진 뒤에 그 돌맹이를 헤아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기껏 해야 돌맹이는 50개도 안되었던 것입니다. 사흘째 내리 그 아이를 본 강씨 아저씨는 아내를 보내 무슨 까닭인지 넌지시 알아보게 했습니다.

한참만에 돌아온 아내의 얼굴빛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내일모레가 제 할머니의 생신이래요. 할머니께 국밥을 대접해드리려고 언제쯤 오면 백번째 손님이 될 수 있는지를 셈치고 있나 봐요.”

이미 백번째 손님에 대한 사연을 알고 있던 그의 아내가 일러주었습니다.

“이거 야단 아닌가!”를 연발하던 강씨 아저씨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러더니 전화기 앞에 붙어 앉아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댔습니다.

“과장님이세요? 모레 점심 시간에 저희 집에 오십시오. 별일은 아니고요.
평소에 도와주셔서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요. 친구분들하고 같이 오시면 더 좋습니다.”

“여보게, 날세. 모레 점심 시간에 우리집에 오게. 무슨 날은 아니고.
그냥 점심 한끼 같이 먹고 싶어서. 그래, 직원들도 함께 와.”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 건너편 길에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혼자가 아니고 할머니랑 같이였습니다.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 손님이 한사람 한사람 들어갈 적마다 동그라미 속에 돌맹이를 하나씩 넣었습니다. 강씨 아저씨는 부인과 함께 가끔 창 밖으로 그 모습을 엿보았습니다. 여느 날과 달리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 어서 일어서! 벌써 아흔아홉번째 손님이 들어갔어. 다음이 백번째란 말이야.”
얼마 뒤 소년이 서둘러 할머니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할머니, 오늘은 내가 할머니한테 사주는거야.”
“그래, 고맙다.”
할머니는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진짜 백번째 손님이 된 할머니는 또 따뜻한 쇠머리국밥 한그릇을 대접받았습니다.
식당 안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아무 영문도 몰랐습니다.
아내가 강씨 아저씨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여보, 저 아이에게도 한 그릇 줍시다.”
그러나 강씨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쉿, 그런 말 말아요. 쟤는 오늘 안먹어도 배가 부르는 법을 배우는 거라오.”

할머니는 천연덕스럽게 혼자서 국밥을 후룩후룩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길은 할머니의 숟가락을 따라 계속 국밥 그릇에서 입으로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러다가 몰래 침을 꼴짝 삼켰습니다.
“너 정말 배 안고파? 좀 남겨줄까?”
“난 안 먹어. 정말 배불러. 이봐.”

아이는 짐짓 배에 바람을 가득 넣어 앞으로 쑥 내밀었습니다. 그러고는 깍두기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날름 넣고 우직 씹었습니다.
전에 할머니가 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강씨 아저씨와 그 아내의 입안에도 군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는 뒤로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말로 백번째 손님이 되어 국밥을 공짜로 먹는 사람이 날마다 생겼습니다.
2백번째 손님이 되어 같이 온 사람들까지 공짜 국밥을 먹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