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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눈'이야말로 연말대선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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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눈'이야말로 연말대선의 관건

<데스크 칼럼> IMF사태후 빈부격차ㆍ소외감 심화

며칠 전 일이다. 장상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준이 국회에서 부결된 뒤 이름 석자를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국내 굴지의 몇몇 CEO들과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총리 인준 부결이 화제가 됐다. 한 CEO가 나름대로의 부결 원인을 분석했다.

***한 CEO가 분석한 인준 부결사태 원인**

"아들의 국적문제나 학력허위 기재 문제 등은 그다지 별 문제가 안 됐었다. 이 정도 문제라면 총리 인준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청문회가 열리면서 장상씨가 세번이나 아파트를 옮겨다녔다는 투기의혹이 제기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세간의 여론이 급속히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장상씨가 해명하는 과정에 나이든 시어머니에게 책임을 떠넘긴 대목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아무리 집안살림을 시어머니가 맡았다 할지라도 사회적 지위가 대단한 며느리와 아들 의견도 묻지 않고 시어머니가 마음대로 집을 사고팔고 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설득력이 부족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국민에게 사죄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상황은 1백80도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장상씨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두 분을 모두 모셨다 한다. 서로 어른을 안 모시려 하는 요즘 같은 세태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표창이라도 해야 할 대목이다.

'어른들을 모시다 보니 집이 너무 좁았고, 그러다 보니 당시 시류에 휩쓸려 아파트 분양을 받아 사고팔면서 집 칸수를 늘려가게 된 것이다. 국민에게 송구스럽다.'

장상씨가 이런 식으로 해명을 했다면 대다수 국민은 도리어 장상씨를 높게 평가했을 듯 싶다. 솔직히 말해 80년대말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누군들 '집 걱정'을 안했고, 어떻게 하면 집 평수를 늘릴 것인가를 걱정 안 했었나. 나쁘게 말하면 모두가 '공범'이었다.

장상씨가 조금만 솔직했더라면 부결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 정국 출렁거림의 근원은 '부동산 스캔들'**

한 참석자가 이같은 분석에 공감하며, 부결 원인을 나름대로의 구조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장상씨 부결사태에는 정부측 대응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는 듯 싶다. 아파트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것은 대단히 심각한 사태 발생이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적당히 변명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올해 정국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부동산 문제'만큼 폭발력이 강한 이슈도 따로 없었다.

몇달전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지지율이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보다 20%포인트 이상 뒤진 적이 있다. 노 후보의 돌풍이 센 탓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회창 총재가 며느리의 원정출산 등 각종 의혹에 휘말린 책임도 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중에서도 일반국민의 반발을 가장 크게 일으킨 대목이 호화빌라 세 채를 빌려 살고 있었다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도 구하지 못해 난리인데, 호화빌라를 세 채나 빌려 살고 있어?'

이같은 여론의 반발이 이 총재의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면에도 부동산 문제가 결정적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참패의 근원은 대통령 아들과 측근비리였다. 그 중에서도 일반 서민들을 가장 화나게 만든 사건은 아마도 분당 파크뷰 아파트사건이 아니었던가 싶다.

특히 김 대통령의 핵심측극인 김모 의원이 아파트 세채를 분양받았다는 대목이 서민들의 '뚜껑'이 열리게 만들었다.

'분양경쟁률이 수백대 일이나 돼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워 줄을 서야 했던 아파트를 뒷전으로 세채나 분양받다니, 이런 도둑놈들이 어디 있나?'

국민의 정서를 읽었다면 당연히 김 대통령은 즉각 투기의혹자들을 단호히 잡아넣고 국민에게 고개숙여 백배사죄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지금도 문제의 김모 의원은 당당히 당사에 나타나 '감히 대통령을 욕하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집권세력의 상황인식이 이렇게 국민과 괴리돼 있으니, 장상씨의 아파트 투기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예의 안이한 대처로 일관하다가 인준 부결이라는 창피한 꼴을 당하게 되고 8.8 재보선도 참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앞의 CEO는 "집권당이 '서민의 눈'으로 사안의 심각성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서민의 눈'이야말로 정권의 향배를 결정할 바로미터**

이날 경제인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그동안 정부나 정치권에서 간과했던 '중요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다름아닌 '서민들의 눈'이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외형상 숫자는 IMF사태후 크게 좋아졌다. 경제성장률도 높고 실업률도 완전취업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졌다. 그러나 이는 숫자의 마술일 뿐이다.

IMF위기로부터 벗어났다고는 하나, 잘사는 쪽만 좋아졌지 IMF위기를 겪으면서 붕괴한 중산층의 상당수는 아직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도리어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고용형태도 임시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속히 불안정해지고 악화됐다.

한 예로 얼마 전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의 성인남녀 7백명을 대상으로 '소득분배구조와 최저임금제'에 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국민의 65.1%는 "외환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구별 실질 경제여건에 대한 질문에서는 41.3%가 악화됐다고 답했고, 다음은 변화가 없다(37%), 향상됐다(21.6%) 순이었다.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자신의 귀속계층을 물은 결과, '중하층'이라는 응답이 57.7%로 가장 많았고 중상층 21.6%, 하층 19.5%, 상층 0.7% 순으로 조사됐다.

요컨대 하층 19.5%와 중하층 57.7% 등 전체국민의 4분의 3에 달하는 도합 77.2%가 IMF극복후 크게 살기 좋아졌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 호화빌라 살이나 아파트 특혜분양이 어떻게 비칠 것인가, 바로 이 대목을 정부와 정치권은 제대로 못 읽고 있는 듯 싶다.

정부와 정치권이 근원적으로 시각조정을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숱한 시행착오가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정권의 향배도 누가 '서민의 눈'으로 사물을 볼 것인가에 달린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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