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에 IR(Investor Relations)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기업설명회' 정도가 된다. 투자가들에게 기업의 실상을 알리고 투자를 유도하는 경영행위를 가리킨다.
IMF사태후 IR의 중요성을 모르는 경영자는 없다시피 됐다. 투자가들의 외면으로 주가가 떨어지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IR의 기본철학, "나쁠 때일수록 CEO가 나선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IR과 PR의 차이점조차 구분 못하는 경영인들이 적잖이 있다. 상당수 기업이 IR과 PR업무를 같은 부서에서 맡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IR이란 회사의 좋은 점만을 강조하는 PR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IR은 투자가들이 알고 싶어하는 실상을 솔직히 알리는 일이다. "비록 그것이 다음날 주가를 폭락시키는 내용일지라도 절대로 숨겨서는 안된다"는 게 IR의 기본철칙이다.
특히 투자가를 상대할 때 CEO는 항상 사람들 앞에 기꺼이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경영실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관성 있게 나서야 한다. 상황이 유리할 때만이 아니라, 나쁠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CEO가 몇 달씩이나 투자가들을 만나지 않으면 투자가들은 그 회사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떨어진다. 투자가들은 결국 그 주식을 팔고 싶어 하고, 주가는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CEO는 실적이 좋을 때에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연단에 오르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부하직원을 대신 내보내고 자신은 그늘에 숨는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CEO는 기본적으로 자격이 없는 CEO이다. 정치지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국민 사과는 검토한 바 없다"?**
6.13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참패했다. 참패의 충격이 워낙 컸던 만큼 집권세력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든 듯 보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간 연말 대선이나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는 김대중 대통령의 친인척 및 가신들이 저지른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의 분노이다. 선거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이의 67%가 '3홍 비리'에 대한 분노때문에 표를 던졌다. 6.13선거 참패의 원인은 친인척 비리를 예방하지 못한 김대중 대통령과, 이같은 비리에 정면대응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방어하려 한 민주당에게 있는 것이다.
원인이 이렇게 분명하다면 위기돌파의 해법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통렬히 참회하고, 책임질 사람이 깨끗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 힘든 게 작금의 청와대 및 민주당의 24시다.
선거 참패의 원인과 책임 문제를 따지기 위해 소집된 연석회의에서 민주당이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던 17일 오후의 일이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 앞에 나섰다.
이유인즉 김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의 오는 19일 검찰 소환이 확정된 후 일부 언론에서 "김대통령이 주말께 직접 대국민사과를 할 것"이라는 보도를 한 데 따른 해명 차원에서였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검토한 바 없다"고 끊어 말했다.
김 대통령은 3홍 비리와 관련, 지금까지 두 차례 간접사과를 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박선숙 대변인을 통해서였고, 두번째는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서였다. 아니, 한번 더 있다. 김홍걸 구속직후 국무회의에서 각료들에게 한 사과이다. 그러나 자신의 육성으로 국민 앞에 나서 사과한 적은 없다.
김 대통령은 취임후 몇 차례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었다. IMF위기로 국민들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 행한 김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김 대통령의 리더십은 한층 빛을 발했고 강화됐다.
***김대중 대통령, 이제 국민 앞에 나설 때**
그러나 지금 김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지금 느끼고 있을 참괴함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IMF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 실현 등 기념비적 위업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가 처한 처지는 너무나 초라하고 남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한 '자연인'이 아니라, 한국주식회사의 'CEO'이다.
CEO는 항상 사람들 앞에 기꺼이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경영실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관성 있게 나서야 한다. 상황이 유리할 때만이 아니라, 나쁠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실적이 좋을 때에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연단에 오르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부하직원을 대신 내보내고 자신은 그늘에 숨는 실수를 되풀이하는 3류 CEO가 되서는 안된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으나, 지금이야말로 김 대통령이 직접 나설 때이다. 이것만이 6.13선거에서 표출된 민의에 답하는 길이며, 수십년동안 김대통령을 신뢰해온 지지자들의 '상처입은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이 될 것이다.
***김홍일, 김옥두 등도 자숙하고 탈당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와대나 민주당 일각, 더 나아가 작금의 사태에 큰 책임이 있는 김대통령 일가는 아직 민의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보는 이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한 예로 민주당으로부터 '출당' 압박을 받고 있는 김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은 펄쩍 뛰며 반발하고 있다. 김홍일 의원은 6.13선거후 탈당 여론이 일자, "내가 맡은 목포 지역구에서 시장 등 민주당 후보를 모두 당선시켰다"며 강력반발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식 궤변이다. 김홍일 의원이 원래 목포시장으로 밀었던 인물은 진도 출신의 김홍래 전 차관이었다. 김의원은 시장 경선때 김 전 차관을 지명한 뒤 대의원들에게 이를 강요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전횡'에 분노한 대의원들과 이 지역 시민단체들은 목포 출신의 전태홍 목포상공회의소 의장을 밀어 이를 관철시켰다. 이런 마당에 김홍일 의원의 어이없는 주장은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킬 뿐이다.
17일 민주당 연석회의때 나온 동교동계의 반발도 민의와 궤를 달리 하기란 마찬가지다.
동교동계 구파의 좌장격인 김옥두 의원은 쇄신파의 DJ 차별화 주장과 관련, "과연 저런 말을 해야 하는가 착잡하다"며 "대통령을 괴롭히지 말라"고 얼굴을 붉혔다. 조재환 의원도 "대통령이 탈당까지 했는데 대통령을 밟고 넘어가야 한다는 데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반응했다.
그런데 과연 김옥두 의원에게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그는 6.13선거 참패의 한 원인을 제공했던 분당 파크뷰 아파트에 3채의 집을 소유, 서민들을 분노케 했던 문제의 의원이다.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깨끗이 물러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당사자인 것이다.
이런 몰상식이 존재하는 한, 집권여당의 장래는 없다. 민주당호의 처참한 침몰만이 기다리고 있을뿐이다.
***루소의 참회와 프랑스 혁명**
노무현 후보, 한화갑 대표 등도 차제에 경선 및 6.13선거 운동기간중 행한 오류를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노무현 후보는 "김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시민들을 학살했던 전두환, 노태우의 범죄에 비교할 수 있느냐"는 식의 논리를 폈다. 한화갑 대표 역시 김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한 비판, 즉 DJ차별화에 극력반대했다.
노 후보가 당내 독자적 조직기반이 별로 없어, DJ지지 대의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불가피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최소한 노 후보는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된 후에는 민의를 수용했어야 했다. 한 노 후보 지지자는 선거패배후 "노 후보는 대통령에 대한 의리 대신에 국민에 대한 의무에 충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노 후보가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할 충언이다.
참회란 본디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는 그러나 자신이 방탕했던 젊은 시절, 십수명의 사생아를 낳아 고아원에 보냈던 사실을 고백했고 참회했다. 이런 고백과 참회가 바탕이 됐기에 그의 사상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토양이 됐고, 그후 수백년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루소의 참회 정신에서 위기돌파의 해법을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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