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의 특징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므로 먼저 진입해 네트워크의 표준을 장악하는 자가 '넘사벽 승자'가 되어버리는 생존 전쟁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표준의 지위를 획득한 특허가 아니면 별로 의미가 없다.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특허기술은 네트워크 시대의 자산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4차산업혁명 시대는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즉시 공개하고 네트워크 시대의 표준기술로 인정받기 위해 사활을 걸게 된다.
현재 전 세계 주요국가들에서는 '도시의 미래'로 불리는 스마트시티를 국가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단순히 미래형 도시를 건설하려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는 바로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실용화하는 현실적인 집약체의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스마트시티의 중심은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스마트시티가 소수의 부자나 특권층만 거주할 수 있는 특별한 도시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마트시티를 추진하는 국가의 정책이 신산업 개발이라는 발상에 치우칠 경우, 대다수 국민의 삶과 유리된 실패한 도시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국가적으로 스마트시티를 완전히 새로 건설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스마트 신도시 건설사업과 기존 도시들을 '스마트화'하는 도시재생형 스마트시티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마트시티는 노약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스마트'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지향해야 하며, 지역균형발전에 맞게 추진해야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기획은 정부가 국가 핵심 선도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를 중심으로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표준 등 각종 정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스마트시티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시티 사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는 좌담에 이어, 스마트시티에 쓰이는 제품과 기술이 국제적으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요소인 표준의 중요성을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각종 제품 및 서비스는 추구하는 규격이나 기준이 정해져야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사항에 얼마나 충족되는가를 심사하는 활동이 바로 '적합성 평가'다. 교통분야에서는 제품과 서비스가 표준 규정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심사한다는 의미를 강조해 원칙적으로 '표준적용검증'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스마트시티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적합성 평가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용규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 교수는 국가간 적합성 평가를 상호 인정해주는 MRA(상호인증협정) 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TEL(정보통신정보실무그룹) MRA 분과의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10여년간 활동해 왔다.
이 교수는 다음달 칠레에서 개최되는 APEC TEL 참석 차 3월 1일 출국을 앞두고 중앙대 교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어로는 송용찬 중앙대학교 교수가 나섰다. 송 교수는 산업자원부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표준전문가들과 오니피언 리더들의 네트워킹을 위해 중앙대에 개설한 '표준 고위과정' 총괄책임자다.
이용규 교수는 인터뷰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사업이 각종 제도와 법적인 문제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마트시티의 전신에 해당하는 유시티(U-city)사업도 그렇지만, 스마트시티는 유시티보다 건축과 보다 첨단화된 ICT가 융합해서 만들어지는 산물이다. 표준 관련 분야에서도 스마트사업이 구체화될수록 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뒤늦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많은 시간과 비효율적인 진행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노하우를 축적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재들을 미리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
송용찬: 교수님이 활동하는 APEC TEL은 어떤 분과인가요?
이용규: APEC TEL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ICT 인프라와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지역 내의 협력과 정보 공유 나아가 효율적인 ICT 정책과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ICT의 효율적 활용을 통해 사회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ICT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송용찬: 교수님의 APEC TEL에서의 활동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건가요?
이용규: 제가 활동하는 적합성 평가와 상호인증협정(MRA) 분과는 APEC TEL 분야에서 유일하게 국가간 실무협상이 벌어지는 곳이어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오고 갑니다. 다른 분과는 협상보다는 정보와 지식, 경험을 나누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무에 대해 논리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곧바로 협상에서 밀려버리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용찬: 국가간에 MRA가 체결되기까지는 상당히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MRA 협상은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이용규: MRA는 상대국가에서 실시한 제품, 공정, 서비스의 적합성 평가결과 및 절차를 자국에서 실시한 것과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협정으로서, 시험성적서만을 인정하는 1단계와 인증서까지도 인정하는 2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MRA는 중복적인 시험을 피하고, 불필요한 규제 비용을 줄이고, 교역을 위한 시장접근을 쉽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캐나다와는 2단계까지 체결하였고, 미국· EU· 베트남과는 1단계를 체결하였습니다.
송용찬: 제4차산업혁명으로 생산과 유통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데, 적합성평가방식의 변화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용규: 최근 다양한 ICT제품들이 종래 방식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교역되고 있어 기존의 MRA 방식으로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해외직구를 많이 하는데요. 이러한 제품은 국내법에 의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제품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현재에는 없습니다. 공산품은 반드시 정부의 인증을 받고 사용해야 안전한 것입니다. 특히 ICT 제품은 통신장애, 전자파 간섭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정한 시험-인증을 정부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DIY로 만든 제품도 시험받지 않고 사용하면 이것도 불법입니다. 적합성 평가도 받지 않은 채 해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제품, DIY 제품들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적합성평가 체제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지금까지 해외직구로 구매한 제품들이 문제가 된 적은 없지 않나요?
이용규: 최소한 해당 제조국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허가를 따로 받지 않았다고 곧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ICT 분야를 예로 들면, 가까운 미래에 기술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에서도 휴대폰 등을 제조할 것입니다. 문제는 개발도상국 중에는 적합성평가와 관련된 법과 제도가 허술한 곳이 많아 적정한 평가를 받지 않고 유통되는 제품이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향후 이런 곳에서 제조된 제품들이 국내로 유입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적합성 평가체제는 세계적으로 1990년대 전후에 형성된 것입니다. 당시는 개발도상국에서도 대량 생산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교역량도 급격히 증가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에서 각국이 자국 시민을 보호하고, 교역을 증진하기 위하여 적합성평가와 관련된 국제기구 등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직구가 일상화되고, 다품종 소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적합성 평가체제도 변화해야 합니다.
송용찬: 교수님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국제적인 적합성 평가체제 방안을 APEC에 제안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어떤 단계까지 왔나요?
이용규: 해외직구과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적합성 평가체제 방안을 1년전에 여러 개 만들어 APEC에 보고를 했습니다. 소량 생산된 제품에 대하여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적합성평가를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받으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소량 생산체계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는 소량 생산된 제품에 대하여 간소화된 그러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직구 및 소량생산품에 대한 적합성 평가제도 개선방안'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를 APEC TEL에서 발표하였고, 각 국 대표들이 APEC 차원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 합의에 대해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안에 대하여 각국의 서명을 받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프레시안: APEC 회원국 중 선진국 전문가들도 많을 텐데,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적합성 평가체제를 이 교수님이 최초로 제안을 하게 된 것이 의외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은 새로운 적합성 평가체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건가요?
이용규: 제가 APEC TEL 회의에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하고 있지만, 사실 이 회의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민간인입니다. 이 회의는 원칙적으로 국가관료들이 각 국 대표단을 구성해 참여하는 곳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 회의 대표로 나오는 관료들은 10여년 이상이 된 전문공무원들이기는 하지만 전문가 출신들은 아니죠. 반면 한국은 10여년 전만 해도 이 회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고, 담당 공무원이 빈번하게 바뀐 탓에 영어로 전문적인 토론을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한국 대표단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민간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국가간 상호인정 협정(MR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하여 발표하였고, APEC TEL 의장단의 요청에 의해 매년 새로운 주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여 왔던 것입니다. 10여년간 APEC TEL에서 활동하다보니 선진국 대표들도 저에게 이 분야에서 실질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위상을 갖게 됐습니다.
송용찬: 이번 APEC TEL의 주요 안건은 어떤 건가요?
이용규: '직구 및 소량생산품에 대한 적합성 평가제도 개선방안'을 다루기 위해 APEC TEL에 소위원회를 설치할 것인지가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소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가 이뤄진다면, 제가 초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안이 온다고 해도 맡을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APEC 기구의 성격 상 위원장은 국가관료가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국가예산 등 정부의 지원이 원활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저도 적극적으로 후원해 줄 예정입니다.
프레시안: 4차산업혁명시대에 쏟아져 나올 제품들에는 강제표준(기술규제) 규정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을 텐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이용규: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잠정인증인데요. 제가 10여년 전 잠정인증 제도 도입을 처음 제안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해당 제품과 관련된 기술규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제품을 현실적으로 출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잠정인증제도가 마련된 다음에는, 안전성 등에 대한 기초적인 시험만 하여 잠정인증을 내주고, 이후 기술규정이 완비되면 그때 다시 시험과 인증을 받도록 하여 제조자에게 많은 편익을 제공하였습니다.
송용찬: 교수님은 스마트시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시티(U-city) 사업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시티 사업에 참여한 경험으로 스마트시티 사업에 조언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나요?
이용규: 저는 유시티 사업에서 각종 기술 활용에 따른 법제도적 문제, 특히 규제 해결 방안을 찾아내고 필요한 규정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스마트시티 사업도 각종 제도와 법적인 문제에 부닥칠 것입니다. 아울러, 유시티도 그렇지만, 스마트시티는 건축과 ICT 등 더욱 높은 차원으로 각종 분야가 융합해서 만들어지는 산물입니다. 표준 관련 분야에서도 스마트사업이 구체화될수록 여러 유형의 난관에 봉착할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인재에게 표준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교육시켜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프레시안: 국가시범도시로 스마트시티를 건설하는 사업계획을 수립한 곳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합니다. 배경이 뭔가요?
이용규: 스마트시티처럼 대규모 개발사업을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시티를 위한 토지 수용이 아직 법적으로 가능하고, 첨단 ICT 기술의 테스트베드로서의 수준에 올라온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사유재산권을 엄격히 보호하는 선진국에서는 스마트시티와 토지수용을 전제되는 대규모 개발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해 낸다면, 중동 지역 등을 상대로 스마트 신도시 건설을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습니다.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민간의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 민간과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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