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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ㆍ방송, 김 대통령 F-X 재가 한 줄도 안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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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ㆍ방송, 김 대통령 F-X 재가 한 줄도 안다뤄

국방일보는 1면톱으로 대서특필, '언론 로비' 의혹

5월29일 아침, 일반의 상식을 깨는 '괴이(怪異)'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아침 신문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28일 차기전투기(F-X)로 미국 보잉사의 F-15K 40대를 사들이기로 최종 재가한 사실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날 아침 방송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번이고 조간신문들을 다시 뒤져보니, 단 한곳 한겨레신문만이 제2 사회면에 1단 기사로 짤막하게 재가 사실을 보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국방일보, "추가협상 잘 해 부정적 여론 해소했다"고 자화자찬**

반면에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에서 발행하고 있는 이날자 조간신문 국방일보는 'F-X사업 집행승인'이라는 제목으로 김대통령의 재가사실을 다음과 같이 1면 톱기사로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F-15K 전투기 40대를 직구매하는 공군의 차기전투기(F-X)사업에 대한 집행승인이 28일 이뤄져 빠르면 다음주 안에 본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김동신 국방부장관으로부터 F-15K 전투기 40대의 최종가격인 42억2800만달러를 포함, 절충교역과 후속군수지원 등 3가지 분야에 대한 추가협상 내용을 보고 받고 이를 재가했다.

통상 1천억원 이상의 무기체계 도입사업은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며, 재가를 거친 뒤 2주만에 이를 집행(신용장 개설)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가능하면 다음주 안에 미국의 보잉사와 본계약을 체결하고 세부사업별.연도별 획득물량과 사업예산ㆍ예산과목 집행기관 등을 명시한 집행승인서를 만들어 국방부 유관부서와 공군 및 집행기관에 하달한다.(후략)"

국방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보잉사와의) 추가협상에서는 전투기 40대의 최종가격을 포함해 절충교역 비율, 후속군수지원 문제 및 제3국 판매분에 대한 환수비를 받도록 하는 등 우리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해 이 사업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을 해소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언론들, "재가는 요식행위일 뿐, 기사가치 없어 안 썼다"**

속된 표현으로 '헷갈렸다'.

김 대통령이 28일 오후 F-X를 재가한다는 사실은 전일인 28일 아침 연합뉴스를 통해 이미 예고됐고, 본지도 곧 이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었다. 또한 그동안 F-15K 구입에 반대해온 2백70여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F-X 공동행동'은 김 대통령 재가 소식을 접하고 이날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긴급 비상집회를 갖고 앞으로 계속해 반대투쟁을 펴나가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이 전혀 재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자, 한 순간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국방일보가 오보를 한 게 아닌가. 대통령이 국민의 반대여론을 받아들여 막판에 F-15K 구매 재가를 취소한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 일정에 변화가 생겨 재가가 뒤로 늦춰진 것인가.'

청와대측에 29일 아침 확인전화를 했다. 답변은 "김 대통령께서 예정대로 어제(28일) 재가를 하셨다"는 것이었다.

***국민 85%가 반대한 사안**

한 마디로 어이 없었다. 미국 보잉사의 F15 구입건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5%가 반대해온 중차대한 현안이었다. 언론들도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보도를 해왔다. 많은 국민들은 비록 며칠전 국방부가 미국 보잉사와 추가협상을 마쳤다고는 하나, 최고통수권자인 김대통령이 이에 대한 재가를 하지 않기를 희망해왔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재가 여부는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대통령 재가 사실을 1단 기사로조차 처리하지 않았다. 이로써 1단 처리를 한 한겨레신문과 재가사실만 단신 처리한 MBC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언론들은 '김 대통령의 재가'라는 역사행위조차 자신의 데이타에 영원히 기록하지 않은 기괴한 모양새가 됐다.

한 신문사 담당기자는 이와 관련, "대통령 재가는 '절차상의 요식행위'로 생각해 짧게 기사를 만들었으나 데스크가 이를 싣지 않았다"고 기사가 게재되지 않은 경위를 해명하기도 했다.

또다른 신문사 기자는 "국방부가 보잉사와 추가협상을 체결하면서 이 문제는 이미 끝난 게 아니었냐"고 반문하며 "청와대에 개입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협상과정에 했어야지 나중에 김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할리는 없다고 판단해 아예 기사를 쓰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얼마나 대단한 넘들이 뒤에 있길래"**

그러나 이같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반응은 어이없다는 것이다.

29일 아침 많은 이메일이 본지에 도착했다. '무명씨'라는 이름의 한 네티즌은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다.

"얼마나 대단한 넘들이 뒤에 있길래, 일간지에 F-15 재가내용이 한 글자도 보이지 않는지... XX같은 언론들 한심하네요."

언론의 '냄비 근성'은 어제오늘의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이번의 대통령 재가 비보도 역시 이런 냄비근성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나 대단한 넘들이 뒤에 있길래"라는 네티즌의 의혹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듯, 여론은 비보도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혹시 광고주나 정부측의 로비가 있었는 게 아니냐는 식의 의문이다. 일종의 '음모론적 해석'이다.

음모론은 절대로 바람직한 사회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음모론이 양산되는 상당부분의 책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언론에 있다면 지나친 혹평일까. 5월29일 언론들이 한번 깊게 생각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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