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국회는 최저임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매달 나오는 상여금, 그리고 식비, 교통비 등 일부 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도록 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골자였다. 이는 2019년 1월부터 적용됐다.
당시 노동계에서는 산입법위가 확대되면 최저임금이 오른다 해도 월급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고 반발했으나 여당에서는 이를 부인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연봉 2500만 원 미만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피해가 간다는 게) 사실이라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법안도 폐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홍 원내대표의 말처럼 실제로 저소득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마침 이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0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전국모임)' 주최로 최저임금 사례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GM부평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참석해 자신들의 월급 명세서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어떻게 자신들의 월급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했다.
최저임금 10% 올랐으나 월급은 고작 1만7050원 올라
한국GM 부평 사내하청업체인 태호코퍼레이션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2018년 월급은 213만4017원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0.9%가 오른 2019년의 월급도 2015만1067원이다. 전년도 보다 겨우 1만7050원이 올랐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2018년 21만9450원이었던 상여금이 50% 삭감돼 10만9725원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는 최저임금이 오른 것만큼 기본급을 올려줘야 하는데 이는 각종 수당 인상을 통해 맞췄다. 131만6700원이었던 기본급은 2019년에도 그대로였지만, 라인수당(2018년 기준 6만2700원), 보건수당(7만1060원), 복지수당(9만1960원), 생산장려수당(8만780원) 등은 각각 67%, 47%, 36%, 7% 올랐다.
이는 월별로 지급하기만 하면 수당, 상여금 등이 최저임금에 포함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 때문에 가능하다. 결국 총 월급으로 따진다면, 정기적으로 지급하던 윗돌(상여금)을 빼서 아랫돌(최저임금)에 맞추는 식이다. 만약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꼼수를 부리기는 어렵다.
서형태 한국GM부평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최저임금이 10.9% 올라서 수당이 올랐지만, 기본급이 동결되고, 성과급이 줄어들면서, 결국 최종 월급은 동결됐다"며 "회사는 남은 상여금도 그런 식으로 줄이면서 향후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피하려 상여금도 월별로 전환해서 지급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업체의 경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자 통상 두 달에 한 번 주는 상여금(연 600%)을 매월(50%씩)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한국GM부평 사내하청업체들처럼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월별 상여금 지급으로 전환할 경우, 즉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소속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동의가 없을 경우, 변경된 취업규칙은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상여금 월별 지금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은 불이익 변경으로 보지 않는다는 특례를 부여했다. 다만, 이렇게 회사가 월별 상여금 지급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취업규칙 변경 의견을 청취하도록 했다. 동의가 아닌 청취만 하도록 했기에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현제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은 "요식 행위로 노동자들에게 상여금 지급 규정 변경을 설명한 뒤,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며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 푼도 오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대자동차 사내업체인 Y&K산업(주), 나성기업, 기봉산업 등 상여금을 월별로 분할한 업체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임금이 동결됐다.
"최저임금법, 최임 준수율 담보하도록 개선돼야"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를 두고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될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며 "정기상여금을 이런 식으로 돌리면서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최저임금 개정안을 두고 "최저임금은 안 지켜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준수율을 담보할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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