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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헌 부산시장 후보, '지역주의 발언' 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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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이헌 부산시장 후보, '지역주의 발언' 물의

"부산시민들은 부산대통령 나올 것으로 기대"

민주당의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한이헌 전 의원의 '지역주의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자신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역주의에 기대는 시대착오적 정치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여론이다. 한 후보의 발언과 같은 돌출 행동이 결국 '노무현 바람'의 급랭을 초래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부산시민들은 '부산대통령'을 기대한다"**

한이헌 후보(59)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부산시민들은 결국은 우리 부산에서 배출하는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것은 지역감정이라고 보면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내 고장 사랑하기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도 볼 수 있는 요소가 있다. "

92년 12월 대통령선거 당시 부산 초원복집에서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섬뜩한 지역주의 발언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한 후보의 이같은 발언을 오마이뉴스는 "정개개편 바람 영남에서 먼저 불 것, 부산시민들은 '부산대통령' 기대한다"는 제목으로 굵게 뽑았다.

이같은 발언은 한나라당은 물론 노무현 후보 진영에서조차 고심 끝에 그를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낙점한 노 후보의 '지역감정 타파' 원칙과 정면배치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그동안 시류에 따라 정치적 변신을 거듭해온 한이헌 후보를 잘못 공천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이헌 후보는 이에 대해 본지와의 통화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같이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후보의 지난 경력등을 고려할 때 그의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YS정권 시절의 '경제실세'**

한 후보의 경력을 돌이켜 보면, 그는 애당초 노무현 후보가 주장하는 '개혁성'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한 후보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YS의 경남고 후배이기도 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그는 행시 7회에 합격, 지난 70년 경제기획원(EPB)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행시 동기로는 이석채 전 정통부장관, 이기호 현 경제복지노동 특보 등이 있다.

80년 신군부가 등장하자 그는 국보위에 파견돼 업무를 보았고, 87년에는 청와대에 파견돼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내는 등 정권교체기마다 권력 지근거리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90년 3당합당이 단행되면서 그의 일생에 전기가 찾아왔다. 그의 고교 선배인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그를 지목, 신한국당 전문위원으로 파견나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YS의 '경제가정교사'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92년 대선 과정에는 김영삼 대통령후보 경제보좌역으로 공개리에 활동하기도 했다.

92년 대선에서 YS가 집권에 성공하면서 그는 93년 공정거래위원장,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승승장구하다가 94년 YS정부의 2대 경제수석이 되면서 이른바 '경남고 시대'를 열었다.

***한이헌의 3대 정책실패**

그는 94년과 95년 경제수석으로 재직하던 중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YS가 일선의 경제장관들보다는 지근거리에 있는 한이헌 경제수석의 말을 보다 중시하는 통치 스타일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95년 과천 경제청사에는 '6311'이라는 신조어가 나돌았다.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이 "한이헌 당시 경제수석이 6이라면, 이석채 재경원차관은 3, 홍재형 부총리는 1,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은 1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당시 한이헌 수석의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예다.

그는 정권 초기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맡았을 때는 재벌개혁 등에서는 경제기획원 출신답게 소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바뀌었다.

경제수석 재직기간중 그는 세가지 중대한 실정(失政)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번째 실정은,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통합에 의한 94년 12월3일의 재정경제원 출범이다. 거대공룡부처인 재경원 출범은 그후 IMF위기 발발후 IMF로부터 환란을 초래한 근원적 정책실패중 하나로 비판받은 대목이기도 하다.

경제기획원 출신인 한 수석이 재경원 발족을 추진한 것은 당시 행정쇄신위원회가 기획원에는 기획 및 예산업무만 남기고 집행기능은 관련부처로 넘기는 안을 추진하는 데 따른 일종의 방어적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경제기획원에서 핵심기능을 떼어낼 바에야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1대1로 합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는 것이다.

두번째 실정은, 94년 12월의 삼성자동차 설립 허가이다.
94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그룹의 자동차 진출은 중복과잉 투자를 우려한 김철수 당시 산업자원부장관의 강력한 반대로 벽에 막혔었다. 그러나 부산출신인 한이헌씨가 경제수석에 임명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어 그해말 삼성은 자동차 진출에 성공했다. 결국 삼성차 허가는 그후 IMF위기 발발의 주요요인중 하나로 작용했다.

IMF위기 발발후인 99년 7월1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차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긴급토론회에서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실행위원인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삼성차를 허용하고 부산에 공장을 유치한 김영삼 전대통령과 한이헌 의원,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등에게도 재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한이헌씨가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되면서 한 배를 타게 된 노무현 후보의 최측근 천정배 의원의 경우 99년 7월 국회에서 "한이헌 의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이 되면서 삼성차 허가쪽으로 상황이 역전됐다"며 한 후보를 집중성토하기도 했다.

세번째 실정은, 정태수 한보철강회장에게의 4천7백억대 대출 외압 의혹이다.
95년 6월 YS의 가신 홍인길씨는 한이헌 수석에게 '허허벌판에 말뚝 꽂았을 때는 돈 주고, 공장 다 지어가니 돈 안주는 것은 모순 아닌가"라고 대출압박을 가했다. 그해 11월 홍씨는 또 한 수석에게 "한보그룹에서 찾아왔는데 회사 자금사정이 딱한 것 같으니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며 정보근 한보회장과 한 수석을 만나게 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홍인길의 부탁 뒤인 95년 8월에는 산업은행이 2천7백억원을, 95년 11월에는 제일은행이 2천억원을 각각 한보철강에 대출해줬다. 한 수석은 청문회에서 홍인길 부탁과 대출 사이의 연관성을 강력부인했으나, IMF발발후 그는 검찰로부터 한 때 수뢰혐의로 구속검토 대상에 오르기까지 했다.

***2000년에는 정계은퇴 선언해 위기 모면하기도**

이같은 정책실패외에 97년에는 그의 정치적 행보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96년 그는 YS의 배려로 부산 북ㆍ강서을 선거구에 출마해 15대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던 중 97년 IMF사태가 터지면서 그해 11월31일 김운환, 서석재 의원등과 함께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IMF사태후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이회창 후보 등 신한국당 주류세력들로부터 '민주계 망국론'이 터져나온 여파다. 한 예로 김태호 사무총장은 당시 "민주계가 나라를 망쳤다"며 "불만이 있으면 민주계는 나가라"고까지 질타했다.

이렇게 신한국당을 나온 한이헌 의원이 곧바로 둥지를 튼 곳은 이인제 후보가 97년 대선때 만든 국민신당이었다. 그는 국민신당의 당3역중 하나인 정책위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이인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가 98년 8월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국민회의와 합당을 하자, 국민회의에 입당을 하려다 그후 YS가 본격적으로 DJ를 맹성토하자 무소속으로 남았다.

2000년 4.13 총선때 그는 또다시 출마하려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문제였다. 5백여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총선시민연대는 그를 낙선대상에 포함시켜 대대적 낙선운동을 전개하려 했다. 그의 중차대한 정책실패와 철새형 당적바꾸기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결국 2000년 시민연대가 낙선자 명단을 발표하기 직전 '정계은퇴' 선언을 발표, 낙선운동 대상에서 가까스로 빠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계에 복귀, 민주당의 부산시장 후보가 됐다.

현재 그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상당한 격차로 뒤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한달 동안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후보가 지역주의에 의존해 선거를 치르려 한다면, 비록 그가 부산시장이 된다 할지라도 결코 영광스런 승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주의는 더이상 존속되서는 안될 '정치판의 에이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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