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렀고 지금도 아픔이 가시지 않은 5.18 민주화 운동을 대상으로 오직 색깔론과 지역주의로 편을 가르고 혐오를 불러일으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행태에 대해 국민들께서 단호하게 거부해 주시기 바란다"며 사실상 '자유한국당 심판론'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이 남파되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왜곡하고 폄훼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의 역사와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국회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자기부정이기도 하다"고 자유한국당을 정면 겨냥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과 관련해 '역사 부정죄 처벌법'를 추진하려는 데 대해서도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기 다른 생각에 대한 폭넓은 표현의 자유와 관용을 보장한다"면서도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거나 침해하는 주장과 행동에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비록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작심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집권 첫 해인 2017년 5.18 기념사를 통해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고 발언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적, 역사적 근거를 들어 자유한국당 일각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5.18 민주화 운동은 1990년의 광주 민주화 운동 보상법, 1995년의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2002년의 5.18민주 유공자 예우법 등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되고 보상 대상이 됐으며, 희생자와 공헌자를 민주화 유공자로 예우하게 되었다"며 5.18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는 한국당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또 "1997년부터 5.18이 민주화 운동 국가 기념일이 됐고, 이후 모든 역대 정부는 매년 그날 국가기념식을 거행하며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의 계승을 천명해왔다"고 했다. 즉, 5.18 민주화 운동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을 계승해오던 과거 자유한국당 정부에 대한 부정이라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은 "한편으로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은 4.19 혁명, 부마 민주화 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정신의 토대 위에 서 있다"며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이 헌법 정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경원 "청와대 무례해…권태오·이동욱 후보 다시 추천"
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격 요건' 미비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 두 명을 그대로 다시 추천하겠다고 맞서 파열음이 커질 전망이다. '5.18 망언' 논란으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떨어졌어도, 나 원내대표는 5.18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훼방 놓을 가능성이 짙다'고 비판한 인물들에 대한 인선을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방침에 맞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제가 방미 중에 청와대가 5.18 진상조사와 관련한 국회 추천을 거부한 것은 한마디로 청와대의 시각을 보여주는 대단히 무례한 사례"라며 "입법부 추천을 존중하는 게 임명 절차인데, 추천을 거부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을 여러 차례 말했음에도 지금 역사 왜곡 세력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정점엔 청와대가 있다"며 "제1야당을 혼돈에 빠뜨릴 호재를 만난 양 전력투구하는 걸 보면서 문재인 정권은 사람이 먼저가 아닌 정권이 먼저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내에도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역사 왜곡 프레임'은 자유한국당이 김진태, 김순례 의원에 대한 '꼼수 징계' 논란으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5.18 진상규명조사위원 추천권을 둘러싼 문제를 청와대와 제1야당의 싸움 프레임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다른 야당들로부터도 고립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진상규명조사위원 추천권을 반납하라고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새로운 인물 추천 대신 '강대강' 싸움을 선택하면서, 5.18 진상규명조사위 출범이 늦춰질 가능성은 더 커졌다는 점도 한국당으로서는 부담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만약 자유한국당이 권태오·이동욱 후보를 재추천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나경원 원내대표가) 그러한 뜻을 밝히신 것이지, 아직 (그 두 후보를) 재추천하거나 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라며 "공식적으로 재추천해오면 그때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을 아꼈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은 △법조계 △역사·군사 분야 등의 교수·부교수 △법의학 전공자 △인권 분야 △역사 고증·사료 편찬 연구 활동 등에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을 조사위원 자격 요건으로 규정한다. 자유한국당은 권태오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이 육군3사관학교에서 전쟁사를 강의한 이력이 있으므로 '역사·군사 분야 교수' 요건을 충족하고,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의 경우 '박정희 전기',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을 보도했으므로 '역사 고증 연구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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