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혐의로 구속된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가 검찰 출두 이틀전인 지난달 14일 녹음해둔 테이프 3개와, 지난달 10일 본인이 직접 쓴 메모가 7일 언론에 전격 공개돼 '제2의 최규선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최씨는 여기서 검찰 출두 직전에 청와대로부터 받았다는 해외망명 주문을 비롯해 김홍걸씨에게의 수표 3억원 전달, 김대중 대통령과 김우중 대우그룹회장간의 깊은 유착, 김홍일씨와 홍걸씨 세력간의 권력암투 등 새로운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최씨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규명될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검찰 조사 및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건의 파편들과 최씨 주장을 합쳐 모자이크 해보면 상당 부분 진실에 근접한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게 사실이다.
7일 발간된 뉴스위크 한국어판에 수록된 최씨의 녹음 테이프 3개(80분 분량)와 조선일보가 6일 최씨의 이종사촌형 이모씨로부터 받았다는 최씨의 자필 메모(A5 3장 분량)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과 주장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추적해본다. 편집자
***팩트 1. "김홍걸에게 3억원을 줬다"**
오늘 4월14일(검찰 출두 이틀전), 일요일 아침에도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현섭씨와 통화했다. 그도 걱정을 많이 했다.
"최규선씨 소환을 오늘쯤 해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검찰 관계자가 묻던데, 검찰도 별달리 나온 게 없어 곤혹스러운 것 같습디다. 그런데 제일 문제가 LA의 그 사람(김홍걸씨)에 관한 부분을 최규선씨가 어떻게 진술하느냐를 두고 검찰뿐 아니라 청와대, 그리고 모두가 떨고 있습니다."
김현섭씨(청와대 민정비서관)의 말에 나는 "(김홍걸씨에게) 1백만원짜리 수표 3백장을 건넸는데, 그건 수표였기 때문에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소환을 좀 늦춰주십시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부탁했다.(뉴스위크 한국판 보도 녹취록 중에서)
최규선의 이같은 주장은 구속 직전에 최규선씨와 청와대가 김홍걸 비리연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상당히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씨의 다른 주장에 대해선 강력 부인하고 있는 김현섭 민정비서관도 최규선씨와의 통화 사실, 최씨가 3억원어치의 수표 세탁을 위해 시간을 더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사실만은 시인하고 있다.
최씨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몇가지 새로운 사실과 의혹이 제기된다.
첫번째, 최씨가 김홍걸씨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김홍걸씨 사법 처리의 결정적 근거자료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두번째, 청와대가 검찰수사 상황을 피의자인 최규선에게 사전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세번째, 결국 청와대가 최씨 부탁을 들어줘 당일로 예정됐던 검찰 출두일자를 이틀간 늦추도록 검찰에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팩트 2: DJ, "김우중 회장에게 도움 많이 받았다"**
온 힘을 다해 저는 사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왕자를 그해(1997년) 12월23일 서울로 데리고 오게 됩니다. 그 사실을 (김대중)당선자에게 보고하러 갔습니다. 당선자는 저를 삼청동 안가의 안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네. 그리고 김우중씨 같은 사람 없네."
"그러잖아도 저한테 직접 전화까지 했습니다."
"그래,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야. 그 사람을 돕게. 그리고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 나, 도움을 많이 받았네. 이 회사 저 회사 만나게 하지 마. 그냥 대우만 만나서 투자유치를 시키게."
"알겠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아, 대우를 밀어줘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환율이 1천8백원일 때 알 왈리드가 와서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대우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쾌거를 올린 것입니다.
그후 현대도 대통령 당선자가 찍어줬습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에 5천만달러의 투자가 이뤄진 것입니다.(뉴스위크 한국판 녹취록 중에서)
최규선씨의 이같은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함의는 대단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김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전제할 경우, 김 대통령이 97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김우중 회장을 전경련 회장에 내정했으며, 그후 99년 8월 대우그룹이 쓰러지는 순간까지 대우그룹이 부실 규모를 80조원대로 키우도록 현정부의 암묵적 지원 또는 묵인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씨의 "당선자가 현대도 찍어줬다"는 주장 역시 97년 대통령선거 과정의 정치자금 수수와 그후의 반대급부 의혹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의혹은 앞으로 이번 최규선 게이트의 파장이 '3홍 비리' 차원을 뛰어넘어 김 대통령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팩트 3: 김홍일 세력과 김홍걸 세력간 암투**
김홍걸씨와 나는 2000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왕자로부터 10억달러를 투자 받아 벤처투자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의 회사는 사장이 내가 되고, 회장은 알 왈리드, 홍걸씨는 애널리스트가 되기로 합의했었다.
대통령은 알 왈리드 왕자의 서신과 홍걸씨의 이야기를 듣고 회사 설립을 승낙했고 2000년 7월 알 왈리드 왕자 방한에 맞춰 회사설립을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홍일 의원이 사생결단으로 반대했다. 김홍일 의원은 현 민주당 최고위원 K씨, 현 공기업 사장 K씨 등을 앞세워 나를 협박했다. 특히 최고위원 K씨는 그해 5월 김희완씨와 나를 압구정동의 한 카페로 불러 "네가 강행하면 나라가 절단 난다. 홍걸씨도 청와대를 나와 버려 어르신, 여사님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김홍일 의원은 권노갑씨를 만나 "아저씨, 제발 최규선이 보고 홍걸이 회사 하지 말라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 고문이 나에게 전해준 말이다. 특히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은 권 고문에게 나와 홍걸씨에 대한 온갖 거짓정보를 보고했다.
당시 갈등구조는 나, 권노갑, 김홍걸, 이희호 여사를 한 축으로 하고 김홍일, 김은성, 정성홍이 반대축이었다. 김은성은 2000년 7월8일 두차례에 걸쳐 나를 양재동 자신의 안가로 불러, 온갖 협박을 했다. 이후 위의 회사설립 계획은 무산됐지만 나와 홍걸씨는 형제 이상으로 똘똘 뭉쳤다."(최규선 자필메모 중에서)
나도 불쌍한 놈이었고 김박(김홍걸씨)도 거기서 소외되었던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고 위안이 되면서 왔는데, 홍일이 형이 또 서울에 들어옵니다. 어떤 장난을 칠지 몰라요. 만약에 이런 장난이 이뤄지면 공개됩니다. 모든 게 공개될 겁니다.(뉴스위크 한국판 녹취록 중에서)
최씨의 이같은 증언은 최근 포스코를 둘러싼 이희호 여사의 김홍걸 청탁설 파문에서도 상당 부분 드러났듯, 김홍걸씨의 벤처 설립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같은 김홍걸의 벤처 설립 추진이 김대중 대통령의 사전 인가 속에 진행됐으며, 김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의 저지로 인해 좌절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대통령 친인척과 가신을 포함한 당시 권력층 내부의 암투 양상이다. 최씨 주장에 따르면, 김홍일 의원은 김은성 국정원 2차장, 정성홍 국정원 경제과장 등 주로 국정원 인맥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반면에 김홍걸씨는 친어머니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동교동계 대부 권노갑, 최규선 등으로 독자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지난해 3대 게이트가 터지면서 두 세력은 격렬한 암중 권력투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구속중인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이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을 폭로하며 동교동계를 압박하는 것이나, 이에 맞서 권 고문이 구속에 앞서 김은성 2차장을 물고 들어간 대목 등이 그런 증거다.
결국 권력 내부의 암투가 사태를 수습 불가능한 지경까지 몰고간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낳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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