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며칠 전 김종욱 한빛은행 수석부행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 부행장은 지난 3월말부터 주말마다 본지에 '책 읽어주는 부행장의 주말 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필자이다.
김 부행장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박형, 찾았어, 마침내 찾았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더니 김 부행장이 지난 3월16일 첫 번째 컬럼에 실었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26가지 지혜'라는 글의 원 저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이 칼럼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삶의 지혜와 부정(父情)을 듬뿍 담은 글로, 글이 나간 뒤 국내는 물론 캐나다 등 외국독자들로부터도 많은 문의가 왔던 화제의 글이었다.
"여자아이들에게 짓궃게 하지 말거라. 신사는 어린 여자나 나이든 여자나 다 좋아한단다."
"목욕할 때는 다리 사이와 겨드랑이를 깨끗이 씻거라. 치질과 냄새로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밥을 먹고난 후에는 빈그룻을 설거지통에 넣어주거라.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고 여자친구 엄마는 널 사위로 볼 것이며 네 아내는 행복해할 것이다."
"좋은 글을 만나거든 반드시 추천을 하거라. 너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진다."
지금 다시 읽어도 미소가 감도는 명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글의 원 저자를 찾지 못해 김 부행장이 '익명의 필자'가 쓴 글임을 밝히며 실었던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의 진짜 필자를 찾다니...
김 부행장이 전하는 사연인즉 이러했다.
지난 4월25일의 일이다. 한빛은행 인터넷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한통의 이메일이 김부행장 앞으로 도착했다. 열어보니 미국 휴스턴에서 기업을 하고 있는 김승호씨(39)가 보낸 글이었다. 자신이 바로 이 글의 저자임을 밝히는 메시지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15년이 된 김승호씨는 현재 세 아들의 아버지라 했다. 아들들에게 아버지로서 말하고 싶은 것을 평소 메모해 두었던 것을 연전에 한번 미국에서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이 어떻게 지구촌을 돌고 돌아 김 부행장에게까지 갔는지 하도 희한해서 연락을 한 거라 했다.
자신의 글이 본지에 실린 사실을 알게 된 과정도 말 그대로 '글로벌(global)'하다. 미국 뉴욕에 있는 친구가 휴스턴으로 세 번이나 전화를 해 "야, 예전에 네가 쓴 글이 한국에서 소개됐다"고 전해줘 프레시안 사이트를 찾아들어와 보게 됐다는 것이다. 김승호씨는 이에 곧 김 부행장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뉴욕에 있는 친구 말에 의하면 선생님께서는 부하 직원에게 자주 좋은 글들을 보내주는 분이라고 하는 걸 보고 "내가 그 글 작자요"하고 나선 게 아니라, 그런 삶을 즐기시는 분이 어떤 분인가 궁금했기에 연락 드려봤습니다.
미국 온 지 15년 돼가는데, 지금은 제 직원이 몇명이나 되는지 잘 모를 정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초기에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느꼈던 것을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모와놨던 것인데 여러 사람들이 공감을 하나 봅니다. 너무나 평범한 원리라서 다들 자기 얘기 같은가 봅니다.
요즘도 아들들에게 할 말이 많아 주섬주섬 모아두고 있습니다. 가끔 한번씩 보내 드리겠습니다.
여름에 저희 회사가 한국에 지점을 여는데 그때 가게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승호가 휴스톤에서"
김승호씨는 이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홈페이지에 써 올려보았던 서너 편의 글도 함께 보내왔다.
김 부행장은 즉각 이메일로 감사의 답신을 보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주변사람들과 돌려보았던 좋은 글 몇 편도 함께 보냈다. 김승호씨는 곧 다시 답신을 보냈고, 이렇게 두 사람은 '글 친구'가 됐다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친구가 된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던 '연(緣) 맺음'이었다.
많은이들이 인터넷의 기적을 말한다. 어떤이는 "만약 20여년 전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전두환 군부는 광주 학살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쿠데타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살장면이 생중계됐다면 전국민이 가만 있을 리 만무였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의 노무현 바람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같은 정치적 함의까지 포함해 인터넷이 가져온 보다 큰 가능성은 이번 두 사람의 만남을 보면서도 알 수 있듯 '하나됨'의 가능성이다. 앞으로 인터넷이 몰고올 보다 큰 하나됨의 기적을 기대하며, 김승호씨가 김 부행장에게 보내온 글들 가운데 미소를 짓게 하는 세 편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예술가 아니면 건달**
둘째 녀석이 머리가 또 찢어서 들어왔다.
상처의 크기를 보니 피가 꽤 난 것 같다.
학교 측에서 걱정이 되서 전화가 미리 오고
저녁에 다시 담당 간호원이 안부를 묻든 등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온전히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화려한 전력을 자랑하는 태준이를 몰라서 하는 일이다.
불개미집에 손을 넣어 제 손을 두 배로 만들기도 했고
굴껍데기에 무릎을 도려내 순간접착제로
응급치료을 하네 어쩌내 하면서 모처럼 놀러간 바닷가에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하기도 했고
제 손으로 귀 속에 돌을 집어 넣어 수술 날짜를 잡기도 했으니...
녀석 무릅을 들쳐서 상처난 자리를 볼펜으로 이어보면
거미가 제 집인줄 자리를 잡을 판이다.
남 퍼주기 좋아하고
생때 쓰기 좋아하고
능청에다 울음도 9단이다.
불쑥불쑥 묻기 좋아하고
쑥스러울 땐 바보짓도 곧잘 한다.
제 딴에는 남을 즐겁게 한다는 게
내 보기엔 영락 없는 푼수다.
항상 행복하고 뒷끝이 없으나
잘 놀고도 투덜거리기 일쑤다.
"저 녀석은 예술가 아니면 건달이 될 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아들인데 건달은 너무해 보여
"예술가 아니면 정치가가 될 거야"
라고 고쳐 말하지만
정치가가 건달보다 나은 것 같아 보이지도 않으니
차라리 예술가가 됐으면 하는데,
하는 꼴로 봐서는
예술가가 되도 아마
전위 예술한다고
발가벗고 길거리를 뛰어 다닐까 걱정이다.
아침에 자는 녀석 이마를 들쳐보니
아내가 H 자 밴드를 붙여 놨다
다친 자리에 머리가 안나는 거 아닐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태준아 !
아빠는 네가 잘 살 것을 믿는다.
너만한 나이에 이층집 옥상 난간을
밟고 놀다가 시장 다녀오던 네 할머니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아빠도
지금 잘 먹고 잘살지 않니.........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 아들 삼형제! 멋있잖아"
누군가가 딸 없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해준 말인데
별로 감동이 안오는 것 보면
그렇게 썩 멋있는 것 같진 않다.
딸만 다섯인 집에 넷째 딸로
별로 환영 받고 태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아내도
딸 하나 나왔으면 하고 낳은 게
또 아들이라 여간 실망이 아니였다.
유독 여자애들이 나를 따르는 걸 보고
" 당신 딸 있으면 참 잘 해 줄텐데" 한다
딸을 못낳아서 미안하다는건지...
딸하고 나를 놓고 경쟁할 걱정이 없어 좋다는건지...
집에 자주 들리는 친구 중에,
딸만 둘인 승운씨네를 부러워하다가
아들만 셋인 우리를 부러워하는 그 집을 보면
세상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그렇다고 자식 하나씩 바꿀 수도 없고...
아들만 셋이냐고 시금털털하게 물어 보는 이웃들에게
딸 낳을 때까지 낳을 거라고 객기를 부리지만
아들 사 형제는 너무 끔직하고 무서워서...
그러다가도
승운씨네 큰딸, 목까지 겹쳐가며 안아 줄 때나
고양이 같은 작은 딸, 아빠에게도 잘 안한다는
입뽀뽀를 해 줄 때면
지금도 안늦었는데 하며
아내가 어디 있나 쳐다 본다.
몇일 있으면 큰 처형네 조카딸 두놈이 오는데
한놈은 인질로 붙들어 놀까보다.
어려서 함께 교회 다니던
병철군,호철군도
아들만 셋 낳았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에이 그냥 참아 볼까?
***아줌마들 컴퓨터 가르치기**
작년 이맘때,
한인 청소년 센터라는 협회에서
무료 컴퓨터 클래스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동생들에게 눈치 받으며 배워 왔던 컴퓨터를
제대로 배워 보자는 욕심에 등록을 하러 갔더니
첫날 강사가 다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묻는다.
"인터넷 웹 브라우저로 어떤 걸 쓰시죠?"
" ………(침묵)…."
" 인터넷 할 줄 알아요?"
"……….(침묵)…"
"인터넷이라는 건 들어 봤어요?"
다들 힘차게
"네~~~"
" CPU 라는 말은 들어 봤어요"
" ………(다시 침묵)…."
안되겠다 싶었는지 강사는
"컴퓨터 켤 수 있는 분, 손들어 보세요?"
라고 말하자 80여명 모인 사람 중에 60여명이 손을 든다.
"손들고 계신 분 중에 컴퓨터 끌 수 있는 분 손들어 보세요?"
30여명이 손을 내린다.
인터넷을 하시는 분이라는 질문엔 12 명이 손을 내리고
남은 18명 중에서 자기 컴퓨터의 사양을 알고 있는 분 있습니까 라는
질문엔 4명이 살아 남았다.
"여기 남은 분 중에 엑셀 사용해 보신 분! "
자랑스럽게 손을 들려다 보니 나 혼자다.
쑥스러워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나는 중급 반으로 쫓겨났다.
내가 실력이 좋은 건지 다른 사람들이 실력이 나쁜 건지
중급 반에서도 수업이 싱거워 몇 번 나가다 그만 둔 어느날,
청소년 센터를 운영하는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승호씨 기초반 강의 좀 해주세요.
기초반 선생이 직업을 얻어서 계속할 수가 없다네요"
내가 직업이 없어 보였나?
하여튼 그 다음주부터 일주일에 한차례씩
내 돈으로 교재를 사고
아침에 녹차 한 잔 얻어먹는 혜택 밖에 없는
컴퓨터 기초반 선생을 하게 된 것이다.
개가 웃을 일이지만 세상엔 그런 일도 가끔 있다.
첫 수업 날
컴퓨터 10대에 20명이 붙어 앉아
졸망졸망 나를 쳐다 본다.
아줌마 열아홉에 아저씨 한명,
20대 1명, 30대 4명, 40대 12명,50대 1명, 60대 1명의
환상적인(?) 비율이다.
한명이 모자란다고?
한명은 할머니 쫓아온 여섯살짜리 여자 애다.
나를 미리 아는 사람들은 저 양반이 언제
컴퓨터를 배웠어 하는 눈치를 보내고,
중우한 중년 아저씨 한 분은 자기 회사에선 위엄 있는
사장님 같아 보이는데 낯선 아줌마들 사이에
무서움으로 떨고 있는 모습이 불쌍하다.
"전 김승호라고 합니다. 옛날에 영화배우 이름과 같습니다."
40대 이상 된 분만 알아 듣는다.
" 혹시 수전증 있는 분 있습니까?"
다들 어리둥절 주위를 둘러 본다.
" 없지요? 자 그럼 손을 드세요 ! "
박수 한번 시작!
짝~~~
박수 두번 시작!
짜~악~짝
짜~악~짝이 아니고 짝짝 입니다.
좀더 빠르게 짝짝 하세요.
짝짝
"잘했어요. 어린이 여러분 "
자기가 뭘 배우는지 모르는 늙은 학생들은
긴장이 풀어지자 웃으며 신이 나서 짝짝된다.
" 저기 6학년 학생은 좀 더 빨리 짝짝 하세요!"
할머니 한 분이 손녀와 함께 손바닥을 친다.
" 여러분 저는 컴퓨터를 잘 알아서
가르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 중에서 제일 잘 한다고 해서
이 자리에 온 사람입니다.
혹시 시피유가 뭐냐 ?
메가가 무슨 말이냐?
그래픽 카드가 어쩐다. 이런 걸
물어 보실 분은 다른 반으로 가세요.
저 그런 거 물어 보면 안 가르쳐 줍니다.
아니 못 가르쳐 줍니다."
그 말에 마음이 편해진 학생들에게
" 저하고 공부하시면 뭐 그런 건 모르겠지만 대신
아무리 무식한 질문도 하실 수 있답니다. 좋죠?
" 네~~~ "
대답 한번 시원하다.
다들 어린이로 돌아간 기분이다.
" 여러분이 컴퓨터를 얼마나 알고 있건 모르건
여기는 쌩초짜부터 가르칠 거니 다들 초등학생이라 생각하세요.
" 네~~~ "
거 대답들 한번 시원시원하게 잘한다
학생들은 이제 긴장이 완전히 풀리고
교실은 놀이터 같은 분위기로 바꼈다.
자 이제 마우스를 손에 잡으세요
쥐 같이 생겼다고 마우스라고 그런 답니다.
거기 왼쪽이나 오른쪽에 버튼 있죠?
자~ 손은 요렇게 놓고 눌러 보세요
먼저 오른쪽 한번
짝
이번엔 두 번
짝짝
자~ 그렇게 짝짝 누르는걸 클릭 한다고 합니다.
두 번 누르실 때는 아까 손뼉칠 때처럼 빠르게 두 번 하세요
아 이제 마우스를 옮겨서 화살표를 내 컴퓨터로 가져 가세요.
" 선생님 내 컴퓨터는 집에 있는데요."
" 아니요.모니터 화면 위쪽 어디 보세요."
" 그걸 마우스로 눌러 보세요"
" 한번 눌러요? 두 번 눌러요?"
" 한번 눌러서 안돼면 두 번 눌러 보세요"
엽기적인 질문과 엽기적인 대답은 계속된다.
그렇게 시작한 컴퓨터 클래스는
컴퓨터 끄는 방법을 배우는데 한 시간
그림판에서 줄 끗기 하는데 한 시간씩 느림보 수업이였지만
두 달이 지나갈 무렵엔 인터넷에서 채팅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는 등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었다.
두 달 동안 여덟번의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나에게 컴퓨터를 배우겠다는 늙은 학생들의
성화에 지친 청소년 센터의 김 목사의
간청에 몇 달 더 수업을 가졌었다.
무식한 명강의가 동네에 소문이 나서
매번 수업이 시작할 때마다 학생들이 늘어 갔다.
그럭저럭 150여명이나 내 교실을 거쳐 간 것 같다.
요즘도 식당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아니면 쇼핑를 하러 가면 " 어머 선생님" 하며
반색을 하는 아줌마들이 한명씩은 나타난다.
지금도 내 사무실 책상 위에는
나와 공부했던 아줌마들이 보내준 감사의 내용을 적은
한 장의 카드가 놓여 있다.
나 때문에 젊어졌다는 엉뚱한 소리부터
컴팽퇴치에 앞장 서 주신 것을 감사한다는
정치가 같은 글을 포함해서
정성이 가득한 여러 글들이 한장 카드에 빼곡히 적혀 있다.
시디롬 넣는곳을 열어서 커피를 올려 놓던 부영이 아줌마
맨날 전원 스위치 위치를 몰라 헤메던 미세스 정
지금도 식당가면 밥 한그릇 더 내오는 웨이츠레스하는 은숙씨
중풍끼가 아직 남아서 클릭할 때마다 애먹었던 김씨 아저씨
나 보고 선생님 이라는 소리 좀 하지 말라 해도 언제나 어려워 하던 윤할머니
뜬금없이 내가 목사하면 잘 할꺼라는 권집사 아줌마.
잘 난척 하다 진도 못따라와서 헤메던 누구누구씨
내가 옆에만 서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미세스 임
인터넷 배우자마자 원빈 사진 찾아내서 바탕 화면에 깔아 버린 혜영씨
무식한 질문(?)을 잘도 하던 의사 와이프 미세스 김
나를 가끔 목사님이라 부르던 진짜 목사 와이프 미세스 김
다들 지금도 인터넷 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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