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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기술원, 교수가 없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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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가 없는 대학?

[민교협의 시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하 '울산과기원')에 교수가 없다는 투의 제목을 보고 독자들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울산과기원의 정관에 따르면 이 대학에는 오로지 임원과 직원만 있으니, 정관 제5장 '직원'의 첫 조항인 제29조(직원의 정의)는 "이 정관에서 사용하는 직원이라 함은 울산과학기술원법에서 언급하는 임원을 제외한 울산과기원 소속 모든 교직원을 말한다." 즉 교원은 별도의 규정 없이 직원에 포함된다.

제30조(직원의 임면) 1항은 "교원 및 연구원 등 직원은 울산과기원 인사규정에 따라 총장이 임명한다"로 되어 있으니 더욱 심각하다. 법과 정관에 교원인사위원회 설치가 빠져 있으니 교원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교육과 연구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내용은 똑같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산하 대학인 한국과기원(KAIST), 광주과기원(GIST), 대구경북과기원(DGIST)의 정관과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이들 기관 중에서 울산과기원이 막내 격이니 갈수록 개악된 꼴이다.

과거 한국과기원 등에서 심심찮게 문제가 되었지만, 이런 제도로는 이사회를 등에 업은 총장의 전횡을 막기 어렵다. 다행히 작년 12월에 울산과학기술원법이 개정(올 6월 25일 시행 예정)되어 교원인사위원회, 평의원회 등이 새로이 포함되었고, 이에 맞춰 변경될 정관은 과거보다 훨씬 나아질 전망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허술한 법과 정관에 따르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개선이 시급한 중대 사안은 조직을 이끌 총장을 뽑는 제도에 교수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총장 선출 방식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시대의 대세는 교원뿐만 아니라 직원과 학생의 목소리까지도 수용하는 개방적이고 투명한 선출 제도이다. 4대 과기원 법에 모두 새로이 들어간 평의원회 구성 규정이 바로 그러하지 않던가. 울산과기원법 16조2의 2항에 따르면, 평의원회는 교원, 직원, 학생 등 각각의 구성단위를 대표하는 11명 이상의 평의원으로 구성하되 "어느 하나의 구성단위에 속하는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 정수의 2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과기원을 포함한 4대 과기원의 총장 선출 규정은 여전히 지나치게 폐쇄적이어서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더 따지고 들면 울산과기원을 포함한 4대 과기원은 과연 대학인지 아닌지 모호한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따지려면 내가 재직하는 서울대학교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2010년 12월 이명박 정권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켜 서울대가 국립대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바뀐 이후 여러 가지 법적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서울대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법인화 이후 바뀐 허술한 총장 간선제로 뽑힌 성낙인 전 총장은 취임 1년을 맞아 전체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존경하는 서울대 가족 여러분께 올립니다」 2015년 7월 27일)에서 서울대가 "다른 국립대학들과는 달리 외로운 처지"라면서 "심지어 서울대학교는 엄연한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는데, 이것은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부당한 시도"라고 푸념했다.

과연 '공공기관'은 무엇이며, 서울대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무엇인지? 왜 공공기관이 되면 학문의 자유가 저해되는지? 나로서는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었지만, 교육부 아닌 과기부 산하 대학들의 법적 지위를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한국과기원,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울산과기원이 소관 부처만 과기부냐 교육부냐의 차이가 있지 모두 서울대와 동일한 법적 위상을 가진 고등교육기관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들 4대 과기원의 운영과 정부 지원을 규율하는 가장 상위의 법은 '과학기술기본법'이겠지만, 직접적으로는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이 이들 과기원에 대한 정부 지원과 감독의 근거 법률이다. 이 법 시행령 제3조(연구기관의 지정)는 4대 과기원을 포함하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의학원,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과학창의재단, 기초과학연구원 등 총 15개 기관을 명시하고 있다. 이중에는 누가 봐도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이 아닌 조직들이 많으니 여기서부터 4대 과기원이 특정연구기관인지, 아니면 연구와 교육을 겸하는 고등교육기관인지가 헛갈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4대 과기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법에 따라 과기원들은 시장형 공기업, 준시장형 공기업,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의 다섯 범주 중에서 마지막의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기재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 기준으로 총 338개 기관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기타 공공기관에 속하는 유사 기관으로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있다.

김병섭 교수(서울대 행정학)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의 조직적 성격」(서울대 평의원회 온라인 뉴스레터 제5호. 2017년 8월 15일)에서 서울대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기재부의 입장이 교육기관과 행정기관의 차이를 무시하는 오류로서 헌법 제31조 4항("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의 정신과 어긋나는 동시에 고등교육법 제11조의2(평가 등)에서 자체평가 규정을 둔 취지와도 충돌한다고 본다. 실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제1조에서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 교수는 동법 제4조 2항에서 '방송법'에 따른 한국방송공사와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른 한국교육방송공사를 (언론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감안하여) 공공기관 지정의 예외로 명시한 것과 동일한 차원에서 서울대를 기타 공공기관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4대 과기원 역시 연구와 교육을 주 임무로 하는 고등교육기관이므로 서울대와 하등 다를 바가 없으니 똑같이 공공기관 지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이 대학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기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운영되는 역사적 연원은 무엇일까? 과기원의 복잡한 발전과정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내 능력을 멀리 벗어나지만, 적어도 우리 정부가 4대 과기원을 차례로 설치하여 운영하는 과정에서 압축성장 시대 특유의 관 주도적 법과 제도, 즉 경제성장에 유용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해당 분야의 인력을 신속하게 양성하는 일사불란한 정책과 제도에 집중해왔다는 점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나 추격형 발전모델의 시대에 상명하복의 빠른 결정과 일사불란한 실행이 효율적이었다면, 탈추격형의 발전모델을 창안해야 할 오늘에는 더 이상 그러한 제도가 유효할 수 없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 생명과학과 나노기술의 시대에는 한층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소통의 문화와 제도가 있어야만 창의적인 과학적 발견과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본격적인 융복합학문의 시대에는 자연과학과 공학이 인문사회과학과 하나가 되어 탐구해야 할 주제와 쟁점들이 많으며, 분초를 다투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그만큼 인류에게 기회뿐만 아니라 심각한 위험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시민의 관점에서 과학기술 분야 연구의 내용과 성격을 투명하게 감시할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문과와 이과를 분리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극복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과학기술에 특화된 과기원을 일반 대학과 분리하여 그 법적 지위를 이처럼 모호하게 두는 것이 과연 시대의 변화에 맞는 것일까.
내일의 과학 인재를 길러내는 4대 과기원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여 정부의 직접적 통제 아래 두려는 구태의연한 발상은 새 시대의 도전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서울대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시도에서 그런 문제는 심각하게 드러났다. 그처럼 낡아빠진 제도와 관행을 고집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과학기술 분야의 심각한 부정과 폐해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국 대학은 2005년의 황우석 교수 사건 이래 연구윤리를 강화해왔지만, 한반도대운하/4대강 사업, 가습기 살균제, 라돈 침대 등 그 피해 범위를 제대로 조사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시민들이 직접 당하는 일마저 겪어야 했다. 이런 불행한 일들은 과학기술 분야의 고등교육기관에 채워진 낡은 족쇄, 즉 시대에 뒤진 제도와 관료적인 통제, 경직된 조직문화와 무관할 수 없다. 비단 교육부와 과기부 산하의 대학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 등 다른 중앙부처 산하의 대학들까지 포함하여 고등교육,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정비하는 사회적 공론화가 절실하다.

이에 앞서 교원의 법적 지위와 자율성 보장을 훼손하는 울산과기원 정관은 당장 전면적으로 고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과기원을 규율하는 법률과 정관 역시 전면적으로 검토하여 더 나은 대학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당장 가장 중대한 문제이자 당사자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로서 울산과기원을 포함한 4대 과기원의 총장 선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교육부 산하 대학들의 총장 선출 제도 역시 큰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진정한 과학기술의 성취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연구조직에서만 나올 수 있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한국과기원 등 69개 연구기관이 기타 공공기관 내의 '연구목적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약간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을 만큼 정부와 국회도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4대 과기원의 운영체제를 일신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촛불혁명의 또다른 큰 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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