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와 어원을 같이 하는 '규모화(scaling)'는 문제의 규모에 적합한 규모의 해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 1명이 수십만 개의 건물의 소방점검을 1년 안에 해야 하는 상황은 규모화가 필요하다.
옛날에 '운동'이란 골방에서 등사한 삐라 수십 장을 감시를 무릅쓰고 뿌리기로 상징되었다. 수천만 국민을 향한 홍보 수단으로는 전혀 규모화가 되지 않은 해법이었고 변화는 무지한 대중의 거듭된 배신을 거치며 고통스럽게 느린 속도로만 찾아왔었다. 그런 고통의 한 면에는 어떤 방송 신문도 보도해주지 않는 청계천 의류공장의 살인적 청소년 노동을 알리기 위한 22살 청년의 분신도 있었다.
인터넷은 약자들 간의 소통을 규모화했다. 힘없는 개인에게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주었다. 인터넷 중에서도 월드와이드웹의 역할이 컸다. 부지불식의 다수가 내 웹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게 하여 이메일보다 훨씬 더 확장성 있는 소통이 가능해졌다. 검색엔진은 그런 방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1인이 불특정다수의 수백만 명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문제에 인터넷-웹-검색은 규모화된 해법이 되었다.
결국 인터넷은 운동을 규모화해냈다. 더 이상 운동은 목숨을 건 소수에 의존하는 위험한 것일 이유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인터넷이 다른 기술과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의 신기술들은 항상 상대적 불평등 그리고 억압을 심화하는 부작용 때문에 진보세력들에게 고민의 대상이었지만 인터넷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공론과 생산의 주인자리로 호명하는 긍정적 효과가 명백했다. 1995년 이후 소위 '디지털권리' 수호단체의 숫자들이 세계적으로 급증한 이유이다.
드루킹에 대한 유죄판결은 이미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에 조종을 울린 날이었다.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컴퓨터들이 작동하는 방식대로 일일이 손으로 할 것을 자동화한 것뿐인데 이걸 갑자기 범죄로 몰아치는 것은 신뢰이익에 어긋난다. 미국 교수에게 물어보니 웹사이트라는 게 원래 막노동으로 하던 걸 자동화한 것인데 웹사이트 만드는 것도 범죄냐고 반문한다. 매크로 어뷰징을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 있으면 제발 알려달라. 우리나라 인터넷규제가 유별나서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댓글/추천 올리기에 대해서 컴퓨터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사례들이 있지만 벌금형 정도였다. 당연하다. 첫째 다른 댓글들에 쏠렸을 관심을 가로챘다는 잘못이 있다. 오프라인에 비교하자면 길거리에서 가두확성기를 불법 데시벨 수준으로 틀어 놓은 정도의 일이다. 절대로 징역 살 일이 아니었다.
'업무방해'? 네이버의 업무에 대한 손해가 정녕 징역 2년어치가 되는가? 네이버의 실명 정책을 어겼다고 한들 그건 네이버의 비지니스모델일 뿐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 처벌로 보호할 일인가? 더욱이 지인들이 자신의 계정을 제공해준 것이라면 실명 정책을 어기기는 한 것인가? 네이버가 각자 스스로 쓴 댓글을 통해 여론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도 네이버의 소망일 뿐 이용자들이 곧이곧대로 안 따라 주면 범죄가 되는가? 교수가 좋은 학생들 키우고 싶어서 제발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라고 얘기하는데 학생들이 10시간 공부 안 하면 교수에 대한 업무방해가 되는가?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노조탄압할 때 사용자가 피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노조에게 업무방해죄 뒤집어씌울 때가 자꾸 생각난다.
'여론'의 훼손? 네이버 댓글 양상이 언제부터 여론이 되었는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그냥 그건 여론이 되고 거기서 다른 사람이 안 쓰는 도구를 써서 주의를 끌면 여론 훼손죄가 되는가? 미네르바 처벌하고 비슷한 동어반복의 냄새가 난다. 미네르바가 페이스북 이전 시기에도 팔로워들이 수십만 명이었고 이 수십만 명이 몰리는 걸 보고 여론을 호도한다며 난리쳐서 미네르바가 처벌을 당했다. 그땐 다음 아고라가 '여론'이었고 지금은 네이버 댓글이 '여론'이라는 식이다. 게다가 여론훼손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처벌하는 건 원님재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대 국가에 여론훼손죄는 이정현 씨가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방송간섭죄밖에 없고 방송은 방송에게 주어진 특수하고 독점적인 임무 때문에 그런 보호를 받는 것이다.
'여론'은 전 사회가 나눠 쓰는 1장의 도화지가 아니다. 네이버에 가면 네이버 이용자들의 여론이 있고 일베에 가면 일베 이용자들의 여론이 있다. 백과사전에 들어있는 낱장 개수 만큼 많은 여론들이 있고 여론 수용자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여론이 있다. 그중의 포털 하나에 인위적으로 지지자 숫자를 올려놨다고 처벌하려는 것은 광우병 시위, 세월호 시위에 대고 '대다수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좌파들이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점거해서 국민 전체의 뜻인 것처럼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광화문 점거자들을 처벌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는 '편집부'라는 이름으로 절절한 평등과 인권의 목소리를 대중들에게 전달했다. 대학 서클 선후배 단 몇 명이 작업한 문건도 '전국○○○동맹', '인천지역○○○연대'라는 단체 이름으로 등사를 했는데 보복과 탄압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함을 과시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앞에 '전국○○○'이 들어가면 다 형사처벌감인가? 드루킹이 벌인 여론조작이라는 것이 고작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에 대한 의견이 더 많아 보이게 하는 것인데 자기가 더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정치 아닌가?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의 활동이 생각난다. 소비자 불만 전화는 소비자 불만을 털어놓으라고 만든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전화해서 '당신 물건 팔아줬는데 당신네 회사가 조중동에 광고해서 기분 나쁘다'라고 불만 털어놓았더니 불만을 조금 많이 털어놓았다고 업무방해죄로 처벌당했다. 네이버 게시판은 이용자들이 댓글을 달고 추천하라고 만들어 놓았고 드루킹은 댓글을 달고 추천하는데 더 열심히 하려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더니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있다. 애시당초 알고리즘의 기능 방식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므로 원래 컴퓨터업무방해죄의 입법 목표였던 해킹도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들이 자유롭게 이합집산하며 의견을 표시했던 날은 이제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이제 인터넷은 대중운동의 요람이 되지 못하고 극우보수의 가짜뉴스와 일베의 혐오글들만 남기자는 것인가?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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