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홍 외교통상부장관이 최근 미국방문중 미국이 북한에 대해 '때로는 매를 들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최 장관의 발언은 앞으로 부시정권의 대북한 강경정책을 합리화하는 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3일 프레드 하이아트가 쓴 '북한: 몽둥이로 할 수 있는 것(N. Korea: What a Big Stick Can Do)'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최 장관 발언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칼럼에 따르면 최 장관의 발언은 임동원 대통령특사가 북한 방문기간중 북한측과 어떤 대화를 했으며, 부시정권 출범 이후 미국의 정책선회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어떠했는가를 미국측에 전달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발언의 취지는 북한이 비로소 대화에 나설 의향을 내비쳤으니, 미국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달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 부시 정부의 '악의 축' 발언으로 상징되는 강경정책의 유용성을 지지하고 북한의 기존정책을 비판한 데다가, 이런 발언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앞으로 남북 및 북미대화에 커다란 장애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정부각료로서는 적절치 못한 언행을 한 셈이다.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나가자 주미 대사관 등은 해명서를 내며 진화작업에 여념이 없다. 워싱턴포스트가 앞뒷 문맥을 제거한 채 본질을 왜곡전달했다는 식의 해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허둥거림이라는 냉소를 사고 있다.
다음은 워싱턴포스트 23일자 보도 전문이다.
***'북한: 몽둥이로 할 수 있는 것'**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부시의 대외정책에 비판적인 진영들이 단골로 삼는 소재다. 대북 정책은 전형적인 매파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며 특정국가를 비난함으로써 평화 정착을 위한 진지하고도 어려운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외교적 협상통로를 막아버렸고 유화정책을 추진해온 한국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나 매파진영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곤혹스러운 입장인 한국의 외교장관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최성홍 외교장관은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때때로 북한이 대화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매를 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대화 재개 의향을 부시 행정부에 전달하는 자리에서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은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온 유일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최 장관은 미국이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활용하도록 촉구했다. 강경책을 보다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경책이 어떠한 효과와 한계가 있는지 흥미로운 사례연구감이지 않은가.
최 장관은 "주민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의 세습독재자 김정일은 협상에 적극적이었던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임기말에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그녀는 김정일을 매우 결단력이 있고 실용적인 지도자라고 표현했다) 방북 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당시 김정일은 "내가 왜 대국을 돌아다니며 방문해야 하는가. 그저 평양에서 앉아 있으면 그들이 나를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었다.
부시는 그러나 취임후 평양을 방문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북한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아, 김정일은 이에 대해 매우 당황스러워 했다.
그러나 2주전 김정일은 지난 10개월 동안 햇볕정책을 이어가려 노력해온 김대중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임동원 특사는 8쪽에 달하는 대통령 친서를 갖고 갔지만 처음 이틀동안 아무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평양에서 마지막 날인 사흘째 되던 날 김정일이 영빈관에 나타나 5시간 동안 밀담을 나누었다.
임 특사는 미국의 강경책, 특히 9.11 사태 이후 미국의 정책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더 이상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정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외교적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고, 그 경우 북한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이러한 메시지가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기존의 벼랑끝 전술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미국의 군사력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미국의 현대식 무기의 가공할 정확성에 경악하고 겁을 먹었다. 확실히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 부시의 강경한 태도를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고 최장관은 말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미국의 목표는 단순히 전쟁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다. 강경책으로 전쟁을 하지 않고도 합법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이다.
북한에 대해 미국의 행정부는 두 가지 난제를 갖고 있다. 첫번째는 올바른 목표 설정이다. 2천2백만 북한 주민의 비참한 상황을 전제할 때 도덕적인 목표는 북한 정권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전략에 따르는 위험성을 감안해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하도록 압박을 가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두번째 문제는 북한의 반발을 사지 않고 어떻게 후자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느냐다. 북한은 제멋대로 행동할 수록 더욱 주목을 받고 대가를 챙겨왔기 때문이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는 이런 딜레마에 대처함에 있어 외견상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가 노골적인 유화정책을 택한 것은 아니었으며, 부시행정부도 (고압적 수사를 하면서도) 구호물자를 제공하고 대화를 제의하는 등 균형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같은 균형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하다. 김정일은 협박전술로 너무나 많은 대가를 받았다는 판단이다. 한국측의 전언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김정일은 (부시행정부의 태도에서) 뭔가를 배웠으며 새로운 (대화의) 기회를 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 장관은 미국의 외교 관리들에게 "이 기회(momentum)을 잘 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최 장관은 "부시행정부가 이에 대해 숙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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