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직원들은 23일 최근의 금융통화위원 인사와 관련, "통화정책의 중립성과 일관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금통위원을 중도 교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요지의 집단성명서를 발표했다. 한은 직원 전체 명의로 성명서가 발표된 것은 지난 98년 4월1일 한은법이 개정된 이래 4년여만에 최초의 일이다.
한은 일각에서는 이번 집단 성명서 발표를 계기로 중앙은행 독립성 강화를 위한 한은법 개정 움직임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어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한은 직원들은 이날 박승 총재와 임원진을 제외한 부장 및 팀장급 이하 전체 직원 총의를 모은 성명에서 "금통위원이 임기에 관계없이 수시로 교체되는 상황에서는 중립적이고 일관된 정책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최근 일련의 금통위원 인사를 보면 통화정책이 중립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성명 발표이유를 밝혔다.
성명은 따라서 "정부가 민간단체(대한상의, 증권거래소, 은행연합회)의 금통위원 추천과정에 개입하거나 정부 및 유관기관의 인사 구도의 일환으로 금통위원을 중도에 교체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달초 한은총재를 포함, 금통위원 7명중 민간단체 추천인 위원 3명의 후임이 일반의 기대와 달리 전직 관료 또는 관변인사들로 임명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번 성명 발표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주 단행된 강영주 금융통화위원 중도교체 인사이다. 4년 임기중 잔여임기 2년을 남겨 놓고 있던 강위원은 지난주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재경부장관 추천 몫인 강 위원 후임으로는 재경부 출신인 J모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직원 성명에 앞서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과 한은 노조도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임기보장과 추천제도 개정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무금융노련과 한은 노조는 이같은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재경부의 기능 축소를 목적으로 하는 '안티 MOFE(재경부)' 연대기구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금통위원 추천과정에서 재경부 관료의 인사전횡을 중단하고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금통위 구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재경부 출신의 비중이 높고, 운영에서도 재경부 차관의 발언권이 인정되고 있으며, 추후 결정사항에 대해 재경부 장관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등 금통위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은 간부는 "이번 직원 집단성명은 지난 98년 4월 한은법 개정이래 4년여만에 처음 있는 집단행동"이라며 "강영주 위원 중도교체를 계기로 젊은 직원들의 분위기가 자못 격앙돼 있어 간부들이 동참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내부균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총재와 임원진을 제외한 전직원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성명 발표를 계기로 연말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때 중앙은행 독립을 이슈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한은 직원 공동명의 성명서 전문이다.
***최근의 금융통화위원 인사에 대한 입장**
저희 한국은행 직원일동은 최근의 금융통화위원 인사를 지켜보면서 통화정책의 중립성 및 일관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여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지난 4월 초 금융통화위원 중 민간단체(대한상공회의소 전국은행연합회 한국증권업협회) 추천위원 3인의 임기가 만료된 후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전직관료 또는 관변인사들이 새 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어 총재를 포함한 7인의 금융통화위원 중 과반수인 4인의 위원이 교체된 지 10일만인 4월 18일에는 임기를 2년 남겨 둔 금융통화위원 1인이 정부 유관기관의 장(長)에 내정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금융통화위원 인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이 중립적ㆍ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간단체의 금융통화위원 추천과정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정부의 인사구도에 따라 금융통화위원이 임기에 관계없이 수시로 교체되는 상황에서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중립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정책결정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희 한국은행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금융통화위원 중도교체가 보도된 후 단식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금융통화위원 인사의 부당성을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충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희 한국은행 직원일동은 통화정책의 중립성 및 일관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가 민간단체의 금융통화위원 추천과정에 개입하거나 정부 및 유관기관 인사구도의 일환으로 금융통화위원을 중도에 교체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02. 4. 23.
한국은행 직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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