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청와대 비서실 정책담당 특보가 마침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5일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지난 주말 사표를 낸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임으로 전윤철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청와대 비서실장 후임으로 박지원 정책특보를 임명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유력한 경제부총리 후보였던 이기호 전 경제수석은 경제·복지·노동 특보로 새로 자리를 만들어 임명했다. 또 한차례의 '위인설관'이다.
***박지원 친위 비상체제 출범**
'박지원 비서실 체제'의 출범은 정치적 함의가 크다. 중앙일보는 15일 박지원 신임 실장을 '부통령'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의 임기말을 보위할 '친위 비상체제'의 구축이라는 의미에서다.
이날 개각은 외형상 경제부총리 교체가 핵심인 것인 양 비친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박지원 정책특보의 비서실장 취임이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 분석이다. 그만큼 박지원 신임 비서실장이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위상이 큰 때문이다.
박 실장은 평소 '김대중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해온 인물로 유명하다. 실제로 박 실장이 평소 김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는지 없는지에 비례해 김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최근의 예만 살펴보아도 그러하다. 박지원 실장은 지난해 11월8일 민주당 쇄신파의 사퇴 압력에 밀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직에서 밀려났다. 미묘하게도 그후 김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까지 내놓아야 할 정도로 크게 궁지에 밀렸다.
그로부터 83일 뒤인 지난 1월29일 박지원 실장은 청와대 정책담당 특보로 청와대에 컴백했다. 없는 자리를 새로 만드는 '위인설관'을 강행하면서까지 박 특보의 컴백이 단행되다 보니, "1.29 개각은 박지원 컴백 개각"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박 특보의 컴백 이후 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3월9일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면서 노무현 바람이 전국을 강타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인지, 박 특보의 청와대 컴백과 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회복은 비례했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한때 이인제 민주당 경선후보 진영은 '김심 음모론'의 핵으로 박지원 특보를 지목하기도 했다. 유종근 전북도지사 구속직전에 박 특보가 유 지사 집을 방문해 후보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에 기초해서였다. 이 후보의 김윤수 공보특보는 3월26일 "박지원 청와대 정책특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정하는 인형극의 진상을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 건강 악화에 따른 비상 친위체제**
이처럼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던 박 특보였던 만큼, 그의 비서실장 임명은 그 배경과 관련해 여러가지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
첫번째 해석은, 김대통령의 건강 악화에 따른 '비상 친위체제' 구축설이다.
김 대통령은 14일 오후 퇴원했다. 당초 예정됐던 퇴원일(12일)보다 이틀 뒤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TV화면에 비친 김대통령은 다소 초췌하긴 하나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종전과 같은 일정 소화는 힘들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 전언이다. 주요사안만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나머지는 비서실장과 국무총리가 소화하는 형태로 국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런 면에서 김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박지원 특보가 비서실장이 중용된 게 아니냐는 해석인 것이다.
***세 아들 위기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
두번째 해석은, 최근 김대통령이 직면한 '위기' 돌파 시나리오이다.
김 대통령은 현재 홍일, 홍업, 홍걸 세 아들이 모두 부패 의혹에 휘말리면서 진퇴양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김대통령이 입원하게 된 데에도 이런 세 아들 문제가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야당은 오는 19일 장외집회를 시작으로 김대통령의 세 아들 문제를 핵심 정치쟁점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야당은 김대통령의 사과에 이어 김 대통령에 대한 수사까지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말 그대로 'DJ의 위기'이다.
이번 DJ 위기는 자칫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향후 정국에 거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야권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노무현 바람을 앞세워 어렵게 탈환한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또다른 상황은 노무현 후보의 선택이다. 노 후보는 현재 "김 대통령의 부채와 자산을 모두 떠안겠다"는 입장이다. 김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검찰조사 결과 김 대통령 세 아들의 부패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끝까지 김 대통령을 보호할 수만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 필요하다면 '과거와의 단절'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미 노 후보는 김대통령 세 아들 문제와 관련해 '시한부 특검'의 필요성을 언급한 상태다.
이런 안팎의 간단치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DJ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위기관리 체제'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박지원 실장이 이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게 아니냐는 게 정가의 해석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비상체제**
세번째 해석은, 민주당 경선이 이미 끝났다는 판단에 따라 정권재창출을 위한 '정부여권체제 총 정비설'이다.
앞서도 밝혔듯 이인제 후보진영은 '김심 음모론'의 연출기획자로 박지원 실장을 지목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현재의 경선국면이 노무현 대 이인제의 팽팽한 대립국면이라면 박지원 실장 기용은 생각하기 힘든 카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 전남 경선을 끝으로 사실상 민주당 경선은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는 게 여권의 지배적 판단이다.
그런 만큼 더이상 이인제 후보진영의 반발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에 연말 정권재창출을 위한 총체적 시스템 구축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박 실장이 해야 할 일**
이 세가지 해석은 각각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하나로 이어져 있는 인상이다. 요컨대 '김 대통령이 상처 입지 않는 정권 재창출'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김 대통령을 보필하는 비서진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목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나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어떨 것인가이다.
대세적 여론은 검찰이 김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를 철저히 밝혀내야 하며, 필요하다면 사법적 처리도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 아들 비리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당연히 김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이다. 수신제가 평천하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서다.
이미 세간에서는 "홍단 세 개(쓰리 홍)를 먹으면 고스톱 판쓸이"라는 신종 고스톱 룰까지 나온 상태다. 대통령 세 아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여론이 얼마나 냉소적이고 싸늘한가를 보여주는 한 예다.
박지원 실장이 앞으로 해야할 일은 김 대통령과 세 아들간의 '단절'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