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횡단의 첫 페달을 밟는 날 아침. 창문을 열자 쌀쌀한 바람이 확 들이닥쳤다. 달리다가 더우면 다시 벗기로 하고 방풍 재킷을 꺼내 입었다.
‘꽈당탕.’ 소리에 창문 열고 내려다보니 일 층 창고 앞에 세워둔 내 자전거가 넘어졌다. 우리 일행이 셔터 문 버튼을 전등 버튼인 줄 알고 잘못 누르는 바람에 셔터 문이 내려오면서 자전거를 넘어뜨렸다.
핸들 가방에 넣었던 사진기 화면이 깨지고, 줌이 제대로 작동되질 않았다. 또 핸들에 부착했던 스마트폰 거치대가 박살났다. 구글 지도를 켜고 이동하면서 수시로 길을 찾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치치 언니네 집에서 편히 쉬었습니다.”
“안전하게 잘 가세요. 코리아 화이팅!”
“자∼. 출발합시다.” 나는 일행들의 상기된 눈빛과 일일이 마주쳤다. 핸들엔 태극기와 뉴질랜드 국기가 나란히 꽂히고, 뒤엔 ‘달려라 청춘’ 삼각 깃발이 힘차게 휘날렸다.
“어쿠! 잠깐만요. 자전거 안장을 좀 낮춰주시겠어요?” 춘천댁이 출발하려다가 옆으로 넘어졌다. 바로 옆에 있는 만능 키가 얼른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는 순식간에 안장을 낮춰줬다.
“멋져요. 코리아 파이팅! 코리아 화이팅!” 치치 언니 내외분의 기분이 한층 고조됐다. 솔 응원 도구를 마구 흔들며 떠나는 우리를 열렬히 응원했다.
이틀 동안 머물었던 크라이스트처치 아본헤드(Avonhead) 마을 안길을 빠져나와 마샴 로드(Masham Rd)에 들어섰다. 나는 맨 앞에 서서 남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이상해요. 핸들이 많이 흔들려요.” 출발한지 10분도 안 돼 춘천댁이 안장에서 내려 실린 짐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무거운 짐을 처음 실어서 그럴 거예요. 조금만 타면 금방 적응될 겁니다.” 인천 총각이 말했다.
“자전거에서 내릴 때, 착지가 좀 불안해 보여요. 브레이크를 천천히 잡고 멈춤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발이 지면에 닿아야 해요.” 만능 키가 조언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론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얘기해서 될 일이 아니라서 걱정스럽다.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를 벗어나자 광활한 들녘이 나타났다. 집들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이 한여름이라서 푸른 초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리 맞은 가을 들판처럼 풀잎이 누렇다.
민박 집을 나와 한 시간 후 공사 구간이 나타나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앞서가던 춘천댁이 멈추자 뒤따르던 일행이 모두 섰다. 가까이 가보니 자전거 가방이 떨어져 땅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긴 밧줄을 좀 끊어버리는 게 어때요?” 만능 키가 말했다. 짐받이는 작은데 밧줄이 동아줄처럼 굵고 길어서 제대로 묶여지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아니, 한두 번 더 감으면 되죠 뭐.” 춘천댁이 남는 밧줄을 둘둘 더 감았다.
“끈이 이렇게 길 필요가 없는데.” 만능 키가 혼잣말을 했다.
공사 구간을 빠져나와 1번 국도에 들어서자 차량들이 너무 많고 고속 주행을 하고 있어 정신이 몽롱해졌다.
“저쪽 샛길로 갑시다.” 만능 키를 따라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비포장길로 들어섰다.
“라카이아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직진해서 좌측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그 다음에 다시 좌측으로….”
지나던 트랙터 기사에게 길을 물었다. 묻고 나서 일행들끼리 서로 해석이 조금씩 달랐다.
자갈이 많고 노면이 좀 울퉁불퉁했다. 군데군데 풀이 많이 자란 걸 보니 지나는 차량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앗! 막다른 길목이다. 분명히 알려주는 대로 왔는데 왜 길이 막혔을까?” 일행은 긴 수목 경계 벽에 막혔다. 아마 트랙터 기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게 원인인 듯했다. 비포장길을 한참 다시 되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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