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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부시' 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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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부시' 베를루스코니

부시의 反환경정책 등 열렬히 추종

'유럽의 부시'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유럽연합 좌파정부들을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의 월간시사전문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월호 '전통의 이탈리아에 신 파시즘 등장'이라는 기사에서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금 신 파시즘을 연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현재 베를루스코니는 영국-스페인-이탈리아를 잇는 '신자유주의 삼각축'을 주동하고 있다.
즉 미국식 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함으로써 독일- 프랑스 등 10개 회원국 정부가 중도좌파인 유럽연합(EU)과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부시 정권의 추종자**

지난 15일 이탈리아를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과 베를루스코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에너지산업의 시장개방 등 자유경제적 색채가 짙은 공동경제 선언에 서명했다.
이 가운데 에너지 시장 개방은 독일과 프랑스가 추진하는 개방 제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독일과 프랑스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이런 움직임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 공동의 군 수송기 개발 계획 불참, 유럽연합(EU)의 공동 체포영장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 등 유럽통합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는 지난달 14일 유럽통합은 지지하나 유럽연합 본부의 명령을 받지는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주식회사를 강조하고 경제,외교, 환경 등 대부분 분야에서 '강한 미국'을 내걸고 있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노선을 추종하고 있다.
기업을 위해 부시의 기후협약 탈퇴도 옹호한 그는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라며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부시의 미사일방어(MD)체제를 적극 찬성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9·11 테러 이후 비공식적으로 '이슬람 문명에 대한 서구의 우월성'을 피력했다가, 아랍권에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등 실언을 남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유럽 언론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지난해 5월 이탈리아 총선에 나설 때부터 "총리가 될 자격이 없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매도해왔다.

***TV 여론조작을 통해 집권에 성공**

이처럼 유럽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이탈리아 중도좌파 정권이 대대적인 부패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그 반작용의 수혜를 입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기업인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그의 집권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1980년대 이후 이탈리아 정계는 급속도로 부패해갔다. 1992년 '깨끗한 손'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에 의해 정경유착의 부패고리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총리를 역임한 사회당 당수 베티노 크락시가 불법적인 재산축적으로 기소되었다. 역시 총리를 지낸 기민당 당수 줄리오 안드레오티도 마피아와의 결탁 및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후 몇개월 사이에 1천명에 달하는 정관계 인사들이 부패혐의로 조사받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쿠데타를 우려할 정도의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쿠데타 대신 이탈리아 국민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지배하던 TV에 의해 집단 최면상태에 빠졌다. 1994년 5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총리로 뽑았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다시 2001년 5월 총리로 재기시켰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첫번째는 그의 거대한 재산이다. 그는 세계화가 어떤 것인지 그 진실의 일단을 보여주는 상징조작의 힘을 과시한다. 경제력과 매체력을 가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정치권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바로 경제력과 매체력을 가지고 정치권력까지 얻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의 재산은 1백20억달러(약 15조6천억원)로 포브스지에 세계 14위의 거부로 올라 있다.

밀라노 출신인 베를루스코니는 종업원 4만명의 미디어 제국 '핀인베스트'의 사실상 소유주다. 부동산 사업으로 시작한 그는 현재 이탈리아의 채널 5, 텔레친코 등 3개 민영TV와 최대 판매부수를 가진 잡지 파노라마, 일간지 일 지오르날레,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 몬다도리, 인터넷미디어그룹 '뉴미디어, 영화제작·배급사 '메두사',이탈리아 최대의 슈퍼마켓체인, 금융 서비스 회사, 명문 프로축구팀 AC 밀란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은행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유람선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60년대초 밀라노 외곽에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언론사업에도 손을 댔다.

***TV로 정적인 안토니오 검사까지 사직시켜**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라는 책에는 베를루스코니의 위력에 대해 이렇게 쓰여져 있다.

"그는 1992년부터 시작된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개혁 돌풍에 위기감을 느낀 극우세력과 기득권층의 전폭적 지지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언론매체를 통한 대중여론 조작에 힘입어 1994년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 그해 4월에 이탈리아의 총리로 취임한 이탈리아 최대의 '정경복합권력'이다.

베를루스코니는 검찰의 사정수사가 총리인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자기 소유의 TV 네트워크와 막강한 권력을 총동원해 방어에 나섰다. 이같은 '권언(權言)십자포화'로 결국 마니 풀리테의 기수인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를 뇌물수수 혐의로 사임하게 했다."

1994년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까지 되었지만, 베를루스코니 역시 탈세와 부패, 범죄조직 연루 혐의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집권 2백55일 만에 사임했다.

그는 6년의 와신상담 끝에 지난해 총선에서 경제불황에 찌든 유권자들에게 "당신들도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으면서 승리를 거뒀다.

***마피아와 유착해 부 축적**

그러나 그의 부의 축적과정은 줄곧 의혹을 받아왔다.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와의 친분관계를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뇌물수수와 불법 정치자금 운영, 탈세, 마피아지원 등의 의혹을 사다 결국 98년에 2년 9월의 징역형까지 선고 받은 상태지만 최종 확정판결까지는 보통 10년 정도 걸리는 점을 이용해 총리가 된 것이다.

이탈리아 유권자들가 이처럼 부패한 기업인을 총리로 선출한 이유는 중도좌파가 집권한 5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유로권 평균을 훨씬 밑도는 1.7%에 그치는 등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항상 유럽의 만년 2류국으로 머물고 있는 국가 위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베를루스코니는 '강한 이탈리아 건설'을 내세운 선거전략으로 국가적 자존심을 세워줄 인물임을 내세웠고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개인적인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그는 파시스트 지안프랑코 피니 부총리(이탈리아국민동맹 당수 출신), 인종주의자 움베르토 보시 장관(북부동맹당수 출신) 등 득표를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을 잡아 끝내 그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 당이 집권당이 되었다. 이 세사람은 유럽에서 가장 기괴하고 역겨운 3인방"이라고 비난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지난해 4월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지도자로 맞지 않고 민주주의와 법치에 위협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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