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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면제 예산, 환경·복지 분야는 고작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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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면제 예산, 환경·복지 분야는 고작 2.4%

[기자의 눈] 文정부에서도 복지는 금칙어인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쓴 글을 다시 읽는다. 폭로 당시엔 화제가 되지 않았던 대목들이 눈에 박힌다.

"당시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초과 세입을 추경 예산 대비 15조 원 규모로 전망했었는데, 막상 조세 규모 예측을 담당하는 세제실에서는 10조 원 규모로 부총리께 보고 드렸던 상황이었다.”

2017년 초과 세수에 대한 내용이다. 실제 규모는 14조3000억 원이었다. 기획재정부 국고국 소속이던 신 전 사무관의 전망이 같은 부처 세제실의 전망보다 더 정확했던 셈이다. 이는 세제실의 세수 예측이 더 보수적이었다는 뜻이다.

신 전 사무관의 글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2013년 세입예산보다 실제 수납된 세입규모가 적어 결손이 발생한 이후부터 세제실에서는 조세예산 규모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전망하려 하는 경향이 있었기에(그리고 그 외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소위 정무적 이유로) 세입예산은 실제 연도 말 전망보다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세금 남으면 감세 압력, 부자들이 웃는다

신 전 사무관이 거론한 "정무적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호하다. 다만 기획재정부가 세수를 아주 보수적으로 예상한다는 점은 거듭 확인된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당시,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재정 건정성' 강박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자주 나왔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신 전 사무관의 글은 다른 지점도 보여준다. 그나마 신 전 사무관은 기획재정부 안에서 '재정 건정성' 강박이 덜한 편이었을 수 있다. 세수 추계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재정 건정성' 강박은 신 전 사무관보다 더 심각했다. 세수 추계에 대한 전문성은 세제실이 더 뛰어난데도, 오차가 더 컸다는 점이 드러내는 사실이다.

2018년 역시 세수가 남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수치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25조 원 가량으로 내다본다. 2017년보다 규모가 크다.

세수가 남는다는 것, 사실상 긴축재정을 했다는 뜻이다. 이를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세수가 남게 되면, 증세 명분이 사라진다. 감세를 향한 압력이 쌓인다. 대체로 주류기득권 층이 지지하는 방향이다.

재정을 어떻게 쓰는지가 정부 성격 정한다

정부 재정, 기업 재무, 가계는 각각 성격이 다르다. 가계는 무조건 돈을 남겨야 한다. 소득보다 지출이 적어야 한다. 그 나머지를 은행에 맡긴다. 은행은 그렇게 모은 돈을 기업에 빌려준다. 기업이 적당히 빚을 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빌린 돈을 제대로 투자한다는 전제에서다. 모든 기업이 '무차입 경영'을 한다면, 경제가 작동할 수 없다.

정부 재정 운용은 또 성격이 다르다. 무조건 돈을 남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선 기업과 닮았다. 역시 돈을 써야 한다. 다만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 그 방향이 어느 쪽인지 알기 힘드니까, '정치'가 작동한다. 선거로 구성된 정부가 유권자의 뜻을 위임받아서 재정을 쓴다. 이 대목에서 기업과 다르다. 기업은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돈을 쓴다.

정부가 재정을 쓰지 않는다면,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유권자의 뜻을 읽고, 그 방향에 부합하게끔 돈을 써야 한다. 굳이 빗대자면, 노동조합, 동호회 등의 재정 운용과 닮았다. 이런 조직이 돈을 거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면, 비난 받아야 한다. 목적에 맞게 쓰는지 여부로 평가 받아야 한다.

재정 너무 아끼고 산업 정책 없다는 비판 수용

그런데 현 정부는 해마다 수십조 원의 세금을 쓰지 않고 남겼다. 게다가 현 정부는 막대한 재정의 뒷받침이 필요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소득주도성장'에는 최저임금 인상만 포함된 게 아니었다. 그 충격을 완화할 사회안전망 강화도 담겨 있었다. 재정 확대와 맞물린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을 남겼다면, 부작용은 필연이다.

경기 하강 국면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선 통화정책, 재정정책, 산업정책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통화정책(금리 인하)은 쓰기 힘든 조건에서 출범했다. 미국 기준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었고, 가계 부채가 심각하며,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조건이었다. 결국 재정과 산업정책에 의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재정을 쓰지 않고 남겼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위한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일자리가 늘지 않았던, 한 이유다.

정부 역시 이런 비판을 받아들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취임 직후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을 너무 아낀다는 비판을 의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현 정부에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현대자동차가 추진하는 수소연료전지차 사업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예타 면제 예산 24조 가운데 20조가 토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대규모 국책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방침까지 내놨다. 총 24조1000억 원대 사업인데, 약 20조 원이 토건 몫이다.

토건 사업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토건 사업을 '삽질'이라며 비하하는 배경에는, 육체노동을 하찮게 보는 정서가 있다. 이는 교육 수준이 낮은 하위 계층에 대한 폄하와도 맞물려 있다. 정신활동을 신비화하고, 지식 계층에게 특권을 주는 봉건 체제의 잔재다. 양반 선비, 혹은 중세 귀족의 유산에 가까울 뿐, 옳은 방향이 아니다.

낡은 도로와 교량, 철도 등을 점검하고 보수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또 남북교류 활성화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늘려야 한다. 게다가 현 정부 출범 초기에 편성한 예산에서 토건 관련 예산이 대폭 줄어들었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자리 감소의 한 원인이었다.

예타 면제가 명분 지니려면?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가 도입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강화를 주장했던 예비타당성조사를 무시하는 행위가 옳은가. 그 역시 아니다.

예비타당성조사에는 정량 평가와 정성 평가가 다 포함돼 있다. 정량 평가만 있다면, 효과 측정이 쉬운 사업만 통과할 수 있다. 예컨대 도로나 공항처럼, 이용자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건설 사업이다. 따라서 정성 평가도 한다. 보건, 복지, 환경, 교육, 문화 등처럼 효과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업 심사를 위해서다.

요컨대 예비타당성조사를 아주 엄격하게, 즉 정량 평가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하면, 토건 사업에 유리하다. 그리고 이런 평가를 통과할 수 없는 토건 사업이라면, 하지 않는 게 옳다. 공항을 지었는데, 이용자가 없다. 이 경우, 다른 정성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처음부터 짓지 말아야 한다.

반면 공공 병원 건설이라면 성격이 다르다. 병원에 환자가 적을 수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아주 엄격하게 하면, 첫 삽도 뜰 수 없다. 하지만 정성 평가를 강화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그들은 민간병원에 가기 힘든 환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재정 낭비를 감수하더라도, 병원을 세워야 한다. "사람이 먼저"라고 믿는다면, 더 그렇다.

요컨대 예비타당성조사 완화 혹은 면제가 명분을 지니려면, 대상은 도로나 공항이 아니어야 한다. 사업에 따른 효과 측정이 어렵지만, 사회 공동체 유지와 약자 지원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어야 한다. 도로나 공항처럼 이용자 수를 정확히 셀 수 있는 건설 사업이라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명분이 없다.

세금 남아돌 때도 복지에는 인색, 세금 쓰기로 한 뒤엔 토건 편중

그런데 정부가 29일 발표한 내용은 정반대였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이 압도적으로 토건에 치우쳤다.


효과를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사회 공동체 유지와 약자 지원을 위해 필요한 사업으로 볼 수 있는 경우는 고작 두 건이었다. 제주 공공하수처리시설 현대화 사업과 울산 산재전문공공병원 사업이다. 이 두 사업 예산을 합치면, 약 6000억 원이다. 예산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예산 규모인 약 24조1000억 원 가운데 약 2.4퍼센트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현 정부는 세금이 수십조 원씩 남아도는 상황에서도, 복지에 인색했다. 세금을 적극적으로 쓰겠다고 한 뒤엔, 주로 토건에만 쓴다. 예산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예산 가운데 2.4퍼센트만이 복지와 공공의료에 배정됐다.

대체 왜 그런 건가? "사람이 먼저"라던, 현 정부에서도 복지는 금칙어인가? 현 정부를 이끄는 이들이 속한 세계는 복지가 필요 없는 곳이라서 인가?

'나라다운 나라'엔 누가 살고 있나?

사내 복지가 잘 갖춰진 대기업의 정규직, 연금이 보장된 공무원과 교원, 소득이 높은 전문직 등에게 복지 강화란 못 마땅한 일이다. 지금의 직장과 직업이 유지되는 한에선, 복지 강화란 세금 인상, 결국 소득 저하와 같은 뜻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직장이 자녀 학비와 의료비를 보장하지 않는 대부분의 노동자, 퇴직금조차 없는 자영업자들, 빈곤 노인과 구직 청년에겐 복지 강화가 절실하다. 현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 나라엔 과연 누가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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