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우량은행 중 하나인 신한은행이 다른 사람도 아닌 창업자 이희건 전 회장(84) 때문에 창립 20년만에 최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이희건씨가 신한은행 회장을 맡고 있던 지난 96년 2월 이회장 개인회사로 사실상 파산상태에 있었던 '코마개발'에 70억엔(우리돈 7백억원)의 거액을 대출해준 사실이 일본경찰의 수사결과 밝혀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한은행은 이 돈을 대출해주는 과정에 코마개발의 담보능력이 없자 이회장 개인의 지급보증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신한은행이 사실상 이희건 회장의 '사금고'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그후 70억엔의 대출금 가운데 3억엔밖에 회수하지 못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희건 전회장은 또한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신용조합 간사이 고긴(關西興銀)의 파산직전에 30억엔을 신한은행 계좌로 빼돌린 의혹도 받고 있어 신한은행 역시 일본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라간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질 전망이다.
***신한은행, 이희건 회장에게 70억엔 부당대출 의혹**
이같은 사실은 이희건씨를 구속해 수사중인 일본의 오사카(大阪)부경(府警)과 마이니치,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주요언론들의 취재에 의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마이니치(每日)신문의 지난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희건씨가 사장으로 있던 골프장 경영회사 코마개발은 지난 96년 2월 이씨가 회장으로 있던 신한은행으로부터 70억엔을 빌어 그때까지 간사이 고긴으로부터 빌렸던 차입금 70억엔을 갚았다. 간사이 고긴 역시 당시 이씨가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때 코마개발은 담보능력이 부족해 이씨가 연대보증인이 됐다.
이씨가 신한은행 돈을 빌린 이유는 신한은행의 대출금 이자가 간사이 고긴보다 낮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당시 코마개발의 재정상태였다.
마이니치 신문이 입수한 코마개발 내부자료에 따르면, 91년 3.4분기(7월기)에 10억엔이었던 누적채무는 92년 17억엔, 93년 23억엔, 94년 26억엔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더욱이 94년 무리하게 2백38억엔을 끌어들어 골프장 증설하는 과정에 이자비용만 연 9억엔으로 급증해, 그후 누적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97년에는 70억엔까지 늘어났다.
반면에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코마개발의 연 매출은 91~96년까지 12~15억엔대에 그쳤고 97년이후에도 12억엔대에 머물렀다.
신한은행이 코마개발에 70억엔을 대출해준 시점은 이처럼 코마개발의 누적채무액이 매출액의 3배에 육박해 '사실상의 파산상태'에 있던 시점이었다.
객관적 여신기준에 따르면 도저히 대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신한은행은 70억엔의 거액을 이희건 회장의 개인 연대보증만 믿고 대출해준 것이다.
***간사이 고긴 부도 직전에 이씨 돈 30억엔 빼돌린 혐의도**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 29일자는 신한은행 개입 과정을 보다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당시 코마개발에 70억엔을 대출해주면서 코마개발이 보유하고 있던 골프회원권을 매각해 회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불황이 한층 심해지면서 골프권이 팔리지 않아 신한은행은 불과 3억엔을 회수하는 데 그쳤다. 67억엔을 날린 셈이다.
이처럼 코마개발이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지자, 이희건 코마개발 사장은 97년 5월 코마개발 사장직을 물러나며 자신이 했던 지급보증을 후임사장에게 떠넘기려 했다.
그러자 신한은행은 후임사장의 담보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이에 이희건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코마개발 지분 10.7%의 대부분을 내놓은 조건으로 99년 2월 지급보증을 후임사장에게 떠넘겼다.
그러나 당시 코마개발은 이미 파산상태로 이희건의 지분은 아무런 담보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신한은행은 이를 수용했다. 신한은행의 두번째 모럴 해저드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에 앞서 지난 27일자에서 또다른 신한은행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신한은행 회장직을 맡고 있던 이희건이 일본 금융재생위원회가 간사이 고긴의 파산을 발표한 2000년 12월26일 직전에 간사이 고긴과 일본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계좌에서 30억엔을 인출, 이를 신한은행의 일본내 지점에 입금시켰다는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 돈이 이미 한국으로 송금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일본 수사당국이 사실여부를 내사중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혐의에 대해 신한은행측은 이희건씨가 2001년 3월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그의 지분 0.13%도 청산한 상태인 만큼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해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신한은행의 부당대출이 발생한 시점은 그가 신한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으로, 신한은행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 수사당국의 수사선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일본언론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만약 신한은행의 부당거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최악의 경우 이 사건에 연루된 신한은행 오사카 지점 등의 폐쇄 가능성까지도 점쳐진다.
***이희건은 신한은행의 절대황제였다**
신한은행은 지난 82년 7월 당시 전두환 정부의 일본자금 유치 정책에 따라 오사카에 근거를 둔 민단계 재일교포들이 출자해 설립한 은행이다.
개인별 지분으로 따지면 1%를 넘지 않는 1천2백여명의 이른바 '개미주주'들이 대다수이다.
은행 설립을 주도한 이희건 당시회장은 그러나 이들 1천2백여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분을 위임받아 그동안 신한은행의 절대군주로서 군림해왔다.
그는 간사이 고긴이 파산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난 지난해 3월까지 신한은행의 회장을 비롯해, 신한생명, 신한증권, 신한리스의 회장직을 모두 맡기도 했다.
IMF사태후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 종전에 38.2%에 달했던 재일교포 지분은 28%로 줄어들었으나, 이희건은 이들 28% 지분의 권한행사자로서 신한은행의 인사 및 합병 등의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3월 주총에서 물러난 뒤에도 현재 신한은행의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신한은행의 절대황제였던 이희건 회장이 결국 신한은행에 최대 치명타를 날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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