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로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폐기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의 맞교환 가능성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북한은 2017년 11월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고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리고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뤘고, 그 덕분에 미국과의 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믿는다. 이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북한 특유의 전략 문화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북한이 ICBM을 조기에 폐기하거나 제3국으로 반출할 경우(이른바 프론트 로딩) "미국과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미국의 약속 이행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렛대가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이 북한 ICBM 폐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북한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은 ICBM의 완전 폐기는 가능한 마지막 단계로 상정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검증 및 추가적인 ICBM 생산 중단에는 동의할 수는 있다. 또한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ICBM의 일부를 폐기하거나 반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ICBM 전체를 초기 단계에 폐기하거나 반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빅딜'의 윤곽은?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다음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좋은 만남"이었다며 강한 만족감을 표했을까?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김영철 일행으로부터 방미 결과를 보고받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해결을 위한 비상한 결단력과 의지를 피력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건대, 두 정상이 2차 정상회담에서 '통 큰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김영철 일행을 통해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할 테니 미국도 상응 조치 로드맵을 준비해달라'고 제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영철 일행으로부터 비핵화 가능성을 확인한 트럼프도 이에 화답했을 공산이 크다. 김정은이 "조미(북미) 두 나라가 함께 도달할 목표를 향하여 한발 한발 함께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2차 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결과는 ICBM 폐기와 제재 완화의 맞교환이 아니라 비핵화 로드맵과 상응 조치 로드맵의 맞교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포괄적인 합의 정신을 담은 6.12 북미 공동성명을 구체화하는 것이 2차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 대북 제재 유연해졌나? 여기서 관건은 대북 제재 문제가 상응 조치에 포함되느냐의 여부이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7월 초 평양 방문 직후 6.12 북미 공동성명을 "동시적이고 균형적으로 이행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대북 제재 문제는 예외"라고 못박았다.
그 이후 폼페이오는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완료되고 검증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에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트럼프가 김영철을 면담한 이후 폼페이오의 발언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22일(현지 시각) "지금은 민간 부문이 역할이 없지만, 만약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를 만들어내고 올바른 조건이 형성된다면, 민간 부문은 북한이 진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 완료 및 검증 이후에 제재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과는 분명 달라진 것이다.
이에 앞선 9일(현지 시각) 트럼프는 "대북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며, 몇몇 매우 확실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선 비핵화, 후 제재 해결'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유연해졌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제재 문제도 상응 조치에 포함되며 비핵화 단계에 맞춰 제재도 풀려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에 미국도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비상한 결단력"을 운운하면서 큰 만족감을 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깜짝 놀란 만한 합의, 그러나 이행은 별개 그렇다면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대북 제재의 고삐를 더 강하게 당겼던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들어 유연성을 내비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하나는 트럼프가 국내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 정부 셧다운, 시리아 철군 결정의 후폭풍, 미국 경기의 둔화,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특검 수사 등이 맞물리면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재선 가도에도 노란불이 켜졌음은 물론이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로서는 한반도 비핵화의 획기적인 진전이 더욱 절실해졌다. 하지만 대북 제재 강화는 비핵화의 전망을 흐릿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빠른 문제 해결을 선호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김영철을 통해서는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제재와 관련해 유연한 입장을 보인 또 다른 요인일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손에 잡히는 비핵화 방안 및 구체적인 이행 조치에 합의하면, 트럼프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반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최대의 압박" 덕분에 비핵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되고 있다고 선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로드맵 제시가 대북 제재의 출구를 트럼프에게 제공해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선 일반적인 예상보다 더 획기적인 합의가 나올 공산이 크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합의와 그 이행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 필자 신간 <비핵화의 최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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