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미국의 목표는 내부적으로도 정리가 잘 안 된 것 같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6일(이하 현지 시각)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공관장 회의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 국민과 동맹들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해체하기 위한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들을 여전히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유지하고 있는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 그리고 북한이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핵 동결 수준을 넘어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 폐기 계획을 밝혀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이에 반해 대북 협상 총책을 맡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기대치를 낮추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그는 1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미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 싱클레어 방송과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이것(비핵화)이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위협 감소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취지로 풀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들은 미국이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수 있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능력 폐기와 추가적인 핵물질 및 핵무기 생산 중단, 즉 '동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펜스와 폼페이오의 발언은 김영철과 트럼프의 면담 이전에 나온 것들이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는 김영철과의 면담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8일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좋은 만남이었다"고 했고, 20일에도 "(북한) 최고 대표자들과 아주 훌륭한 만남을 가졌다"며 "2월 말 김 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언이 트럼프 특유의 과장된 화법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김영철을 통해 김정은의 '통 큰 제안'을 전달받고는 고무되어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빠르게'의 주창자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트럼프가 가장 즐겨 쓴 표현이 바로 '빠르게'였다. 하지만 그는 8월부터는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며 오히려 느긋한 자세로 돌아섰다. 폼페이오 역시 비핵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장기전'을 예고해왔다.
반면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북미 관계가 "훌륭하고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북한이 "단계적·동시적 조처"를 강조했던 점에 비춰볼 때,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이고 빠른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전략으로 바뀐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김정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추측건대, 김정은은 김영철을 통해 영변 핵시설의 폐기뿐만 아니라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로 상정되어온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방안도 2차 정상회담의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이에 걸맞은 상응 조치를 준비해달라면서 말이다.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읽을 수 있는 미국의 상응 조치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한미 군사 훈련 중단 및 전략 자산 미전개 상태를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우선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그리고 북중 무역의 실질적인 재개가 가능한 수준으로 제재를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셋째는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체제 협상을 남북미중이 함께 개시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북한의 협상안을 수용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최대의 압박"에 대한 자아도취, 가급적 한반도에서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 주류의 저항과 반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본격적인 견제 등은 여전히 커다란 장애 요인들이다. 동시에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트럼프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비핵화 달성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은 '빅딜'의 가능성을 여전히 잉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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