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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코너에 몰리다

한국배우들 출연 거부

하늘 높은줄 모르던 007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
본지가 맨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래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인 MGM이 007시리즈 20탄의 ‘주적(主敵)’으로 설정한 북한군 배역을 국내에서 캐스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 11월26일 ‘007 20탄, 북한을 主敵으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할리우드가 내년초 제작에 들어가는 첩보영화 007시리즈 20탄에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북한 킬러 등의 악역을 맡을 배우를 뽑기 위한 오디션과 캐스팅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본지는 “이같은 ‘북한 두들기기’는 요즘 가뜩이나 살얼음 위를 걷는 듯 불안한 한반도의 평화무드를 깨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특히 이같은 냉전회귀적 상업주의 영화에 우리 영화인들이 출연하는 것은 남북한 화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반(反)시대적 행위’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캐스팅후보로 오른 국내 영화인들의 대응이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본지 보도가 나간 뒤 문화일보 등의 일간지들이 이를 받아 같은 맥락의 문제를 제기했고 ‘필름 2.0’ 등 영화전문잡지들도 이를 크게 다뤘다.
이렇게 문제가 커지자 우선 국내 영화인들이 출연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 분)의 적을 북한군으로 설정하고, 촬영장소인 영국에서는 현지의 교민신문에 영화에 출연할 한국인 엑스트라들을 구하는 광고까지 나온 상태였다. 제작사인 MGM은 국내 영화기획자인 김모씨를 통해 은밀히 국내 톱스타들에게 출연 가능성을 타진했다. MGM측은 영어와 한국어 대사에 모두 능통한 배우를 원했으나 국내배우 중 이런 조건에 맞는 인물이 없자, 우선 과거 제작된 한국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북한군역을 인상 깊게 연기했던 국내 배우들을 중심으로 이미지캐스팅을 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지명도가 높은 배우 10명가량이 물망에 올랐고, 그 중 일부는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차원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비디오를 통한 화면 테스트등 오디션에도 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질 북한 킬러의 이미지가 단순하고 잔인한 악한으로 설정돼 있으며 이같은 시나리오가 남북한 화해라는 시대정신에 위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유오성, 최민식씨 등 후보물망에 올랐던 배우들이 차기작 등 일정을 이유로 출연을 고사하기 시작했다.

이번 캐스팅을 주선한 김씨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국내시장에서 인기를 잃을 역을 배우들이 스스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미 몇몇 배우는 촬영일정 등을 이유로 들어 캐스팅제안을 거절한 상태”라고 캐스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알려졌던 탤런트 김영철씨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연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내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아직 해보지 않은 상태”라며 “아직 텍스트를 검토하지 않았고 확실히 결정된 것은 전혀 없다”고 뒤로 한걸음을 빼는 상태다. 작품 내용과 배역의 민감함 때문인지 김씨의 소속사인 이스타즈도 “김씨가 내년에 SBS의 대하드라마에 주역으로 내정된 상태라 아직 007 20탄 출연여부가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국내배우 캐스팅이 벽에 부딪히자 MGM측도 당초 북한군 특수요원으로 설정됐던 킬러를 '쟈오(ZAO)'라는 아시아계의 신비한 인물로 바꾸고, 국내배우 대신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신인배우 릭윤을 기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릭윤은 할리우드영화 ‘분노의 질주’(The Fast and the Furious)에서 악역인 동양계 스트리트갱 역으로 주목 받았던 배우로 지난 1일 부산에서 열린 월드컵 조추첨 행사때 사회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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