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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뇌(下)-한 최고경영자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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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뇌(下)-한 최고경영자의 진단

"10년후 일본은 뭘 먹고 살까"

제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시책을 검토하는 회의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회의 주제는 “제조업은 일본의 생명선이다”였다. 한 참석자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일본의 기술은 과거 10년간 뒤쳐졌다. 일본 제조업을 복권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받아 이렇게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90년대가 잃어버린 10년은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에도 일본은 필사적으로 기술을 신장시켜왔다. 지금도 제조업은 세계 제일의 기술을 갖고 있다.
지난 70년부터 90년까지 20년간은 신제품이 발매될 때마다 성능과 품질이 한 단계씩 개선됐다. 그러나 현재의 공업기술은 90년을 정점으로 멈추었다. 자동차, TV, VTR도 성능과 품질이 멈춰 더 이상 진화가 어려워졌다.
예컨대 70년부터 90년까지는 50점에서 90점으로 진화했으나, 90년부터의 10년간은 90점에서 95점 정도로 개선됐을 뿐이다.
반면에 과거 10년동안에 70점이었던 아시아는 92점 수준까지 추격해 왔다.”

이같은 일본 제조업의 현상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아시아와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나날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제조업은 앞으로 최소한 10년동안 ‘일본의 생명선’일 것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10년후 국민들을 먹여 살릴 차기 기간산업은 무엇인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 이 경쟁력을 앞으로 10년간 유지하는 사이에 ‘다음 기간산업(基幹産業)’을 창출하지 않으면 일본의 수출경쟁력과 고용은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에서는 이미 민족자본의 자동차산업이 없다. 미국에는 가전산업이 제로(0)다. 미국에서만 쓰이는 대형냉장고 외에는 가전제품을 만들지 않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미국에서만 팔린다. 미국 자동차의 사이즈는 미국외에서는 수요가 없어, 다른 나라에서는 누구도 만들려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앞의 회의에서 “민간이 정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러자 한 대형 가전 메이커의 임원이 이렇게 답했다.
“정부에서 신제품 개발에 주도적으로 나서달라. 일본에는 충분한 생산설비가 있다. 없는 것은 만들어야 할 제품이다. 일찍이 TV와 VTR이 출현했듯 획기적인 신제품이 출현하지 않는 한, 현재 제품의 연장선 하에서는 아시아의 추격으로 일본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물건은 없어질 것이다.”

전자기기 위탁제조서비스(EMS) 대형사인 소렉트론 저팬의 CEO도 마찬가지 말을 했다.
“일본인은 지금까지는 세계 제일이라고 말해도 좋을 우수한 국민이었다. 또한 충분한 생산설비도 갖고 있다. 단하나 무엇을 만들어야 좋을지 모를 뿐이다.”

일본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차기 기간산업은 무엇인가.
아시아는 스스로 신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것이 아시아와 일본의 차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신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날 강연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음했다.
“70년대부터 20년간 미국의 전기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어와 지금은 미국에서 전기산업이 사라졌다. 일본은 지금 미국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20년간 미국은 2억5천만명의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는 산업을 필사적으로 개발해왔다. 일본도 지금부터 그같은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잭 웰치의 충고, "이제야말로 개혁을 해야할 때"**

지난 11월7일 게이오(慶應)대학 대학원경영관리연구과(게이오 비즈니스스쿨)에서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회장이었던 잭 웰치를 초청해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80년에 내가 GE회장이 됐을 때 일이다. GE의 공장이 있는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일본제 TV의 가격이 그 마을의 GE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TV의 제조원가보다 쌌다. 이 사실을 목격하면서부터 개혁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지금 일본도 20년전의 GE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지금 일본 전기.전자기업의 실적은 참담할 정도이다. 올 상반기(4월~9월)에만 히다치(日立)제작소 1천1백5억엔, 소니 4백33억엔, 마쓰시다(松下)전기산업 6백95억엔, 도시바(東芝) 1천2백31억엔, NEC 2백99억엔, 후지쓰(富土通) 1천7백47억엔 등 모두가 참담할 정도의 당기 손실을 기록했다.

일렉트로닉스 산업은 20년전의 GE와 마찬가지로 이미 일본에서의 생산이 무의미해졌다. 반도체 사업부문에서 돌출된 적자는 무계획한 반도체 생산능력 증대에서 기인한 것이기는 하나, 원인의 절반은 일본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 결과 신문사등의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일렉트로닉스 기업들이 중국으로의 이전을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산업은 10~15년 차이로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향후 수년후에 ‘JAPAN as No.1'시대에서 ’CHINA as No.1' 시대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CHINA as No.1'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잭 웰치 전회장의 강연을 듣고 오는 길에 전자상가를 둘러보았다. TV 진열대에 놓여진 제품은 여전히 소니, 마쓰시다 등의 일본 브랜드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들 일본 브랜드 TV는 100% 중국등 아시아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아직까지 중국 브랜드 TV는 눈에 띠지 않았다. 과연 중국 브랜드 TV가 전시되는 날이 올 것인가.

나는 그런 날이 온다고 확신한다. 브라운방식의 TV는 이미 죽은 기술이다. 액정 방식도 빠르게 추적당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PDP)는 아직 일본에서조차 1백만엔 전후여서 소비가 크지 않은 단계다.
그렇다면 다음 새로운 영상장치는 누가 개발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일본이 해야 할 일이다.

누가 만드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파는가, 누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일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감성이 높은 소비자가 존재한다. 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계속해 개발한다면 일본의 브랜드는 살아남을 수 있다.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소비자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연구개발을 계속해야 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쪽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생산된 제품은 브랜드 기업을 통해 소비자에게 넘겨진다. 유니크로처럼 누가 생산하더라도 브랜드 기업에게는 이윤이 남는 법이다.

소비자의 니즈(NEEDS)에 부응하는 창작활동이 가장 고부가가치를 낳은 시대가 됐다. 그러나 기존산업의 단순노동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문제는 브랜드를 살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로, 고용의 공동화를 막기 위한 고뇌는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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