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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뇌-한 최고경영자의 진단(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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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뇌-한 최고경영자의 진단(上)

"모든 것 중국에 빼앗길지도"

‘일본의 위기’란 이제 새삼스런 화두가 못된다. 28일에도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는 동시에, 도쿄 미쓰비시은행 등 일본의 대형은행 12개를 ‘감시대상’으로 분류하는 등 일본을 ‘요시찰 대상’으로 삼았다. “과연 일본의 시대는 끝났는가.” 이같은 물음에 많은 이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나 이렇게 답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왜 일본이 오늘날같은 위기에 직면했으며, 현재 ‘일본의 고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외로 아는 바가 적다. 개발연대에 우리나라는 일본경제를 교과서로 삼아 산업화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싫든좋든 일본 산업의 ‘붕어빵’ 상태이며, 따라서 일본의 현재 위기는 얼마 뒤 우리나라가 직면하게 될 위기의 전주곡일 가능성이 높다.

야마타 신지로(山田眞次郞) 잉크스 대표는 정보통신(IT) 마인드가 부족한 일본 재계에서 일찌감치 ‘일본 제조업의 IT화’를 주창하며 제조업과 IT산업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동시에 일본정부의 각종 위원회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도쿄 공업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 전부터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의 인터넷사이트에 ‘일본의 고뇌’ ‘차기 기간산업은 무엇인가’ ‘차이나 쇼크’ 등 일련의 컬럼을 싣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7회까지 연재된 이 릴레이 컬럼은 많은 식자층으로부터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 컬럼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거대중국의 출현, 시장개방 등 나날이 심화되는 경쟁상황 하에서 경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란 우리도 일본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제품의 품질경쟁력은 아직 일본에 비해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객관적 현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번에 나눠 소개하는 야마타 대표의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곱씹게 할 것이다. 편집자

지난 6월말에 오픈한 에르메스(HERMES: 프랑스 고급의상 브랜드) 긴자(銀座)점에 갈 일이 있었다. 점포 입구에는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줄 맨 뒤에 서서 “얼마나 기다리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30분정도 걸릴 것”이라 말해 일을 못보고 돌아왔다. 에르메스의 긴자점은 세계최대 규모라 한다. 뒤질세라 이탈리아의 구치도 평당 땅값이 3억원을 호가하는 도쿄 번화가의 한 복판에 두 개의 대형점포를 세웠다.

마쓰시다(松下)전기산업, 소니, NEC 등 대기업들의 실적이 잇따라 악화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물건이 안팔려 기업들이 고전을 하고 있는데, 왜 에르메스에는 30분을 기다려야 가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중류(中流)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의 햄버거가 최근 빅히트를 쳤다. ‘가격파괴 전략’이 먹혀든 것이다.
그러나 최고급품인 에르메스는 30분을 기다려서도 산다. 로렉스 시계를 차고 에르메스 백을 걸치고 유니크로를 신고 혼다의 피트를 타고 가 최고급 식사를 한다. 가장 싼 물건과 가장 비싼 물건만 있을뿐 그 중간은 없다. 이른바 ‘중류(中流)’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일본 제품은 중류품이었다. 80년대말에는 고급품 ‘상(上)의 하(下)’에 속하는 제품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90년대 10년간 아시아는 대부분의 제품에서 일본을 추격해 값싼 물건뿐 아니라 ‘상의 하’에 속하는 제품도 만들게 됐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상(上)의 중(中)’에 속하는 제품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예로부터 최고급품, 즉 ‘상(上)의 상(上)’은 구치, 로렉스, 벤츠 등 유럽제 일색이다. 비통하게도 소니의 디지털카메라에는 칼샤이스의 렌즈가 부착돼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와 CPU(중앙연산처리장치), 군사기관의 정밀부품 등 최첨단제품은 변함없이 미국제이다.

일본의 최고급차는 “벤츠보다 조용하고 벤츠보다 빠르고 벤츠보다 고성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벤츠S600은 1천5백만엔인 반면, 최고급 일본차는 7백만엔이다. 벤츠보다 고급이라면 당연히 1천5백만엔에 팔아야 한다. 이 8백만엔의 차이는 속도나 정숙성의 차이가 아니다.

여고생들까지도 ‘상의 상’을 선호하는 요즘, ‘상의 중’을 누가 살 것인가. 더욱이 ‘상의 중’은 아시아국가들에게 맹추격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일본 제조업의 고뇌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중국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

지난 8월21일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후지쓰(富土通) 하드웨어 의존 탈피,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사업구조를 전환한다. 1만6천4백명 감원”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도시바(東芝) 1만7천명, 히다치(日立) 1만4천7백명 등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감원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다시피 하다. 지난 91년 미국의 IBM이 대규모 감원을 한 지 12년후 지금, 일본 대기업들이 IBM의 뒤를 따르고 있다.

지금 일본은 “모든 걸 중국에게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80년대의 미국도 마찬가지 공포를 일본으로부터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공포를 가혹한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덤핑법으로 철강산업을 지켰으며, 일본으로부터의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면 ‘자율규제’를 강요하면서 일본 자동차산업을 미국으로 이전하라고 요구해 고용을 유지했다. 당시 자국 산업을 지키려는 미국에 대해 일본은 “국내산업 보호는 자유무역 정신에 위반된다”며 반발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급속한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는 후지쓰가 보여주듯 급격한 고용 공동화를 낳는다.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했듯 급격한 공동화를 막을 정책은 무엇인가.

우선,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으나 거대한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을 보호해 그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보호란 ‘금전적 보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 301조와 같은 ‘법적 지원’을 의미한다. 이런 보호는 고용의 공동화를 완화시킬 수 있다.

정책적 보호를 받는 산업은 보호아래 있는 기간에 새로운 사업형태를 구축해야 한다. 한 예로 미국의 대형 고로(高爐) 제철소는 경쟁력이 없다. 그 대신 2천명 규모의 전기로(電氣爐) 제철소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고로는 광석에서 철을 생산하나, 전기로는 고철을 녹여 철을 만든다. 이미 미국에서는 철강업이 고철을 재생하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을 중국에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다”**

지난 10년간 오래된 제조업(전자산업도 여기에 포함된다)의 국제경쟁력은 떨어져왔다. 아니 떨어져왔다고 하기보다는 중국이 급속히 따라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대만에 흘러들어간 기술이 대만자본의 중국기업을 통해 곧바로 중국으로 전해지고 있다.

샤프의 고위관계자는 “일본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을 중국에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찍이 일본이 미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각종 제품을 만들었듯, 일본에 있는 기술이 대만에서 중국으로 빠르게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대형가전업체의 경영자를 만나 “일본은 지금부터 무엇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휴대전화는 일렉트로닉(전자) 분야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제품이나 이미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일렉트로닉 분야에서 더 이상 일류국이라 말할 수 없다.”

일본의 고뇌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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