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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표절의혹' 소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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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윤식 표절의혹' 소설화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지난해 9월 한국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김윤식 교수의 표절 의혹사건이 소설화됐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제목의 이 소설은 등장인물을 가명처리했을 뿐 거의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적어낸 듯한 대목이 많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이른바 '이명원 사태’다. 서울시립대 국문과 대학원생 이명원씨가 김교수의 표절 사실을 밝힌 논문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학계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왔던 사건이었다. 이씨의 논문은 비평집 <타는 혀>로 출간되기도 했다.이씨는 스승을 비판한 뒤 자신에게 가해지는 제도적 폭력에 견디지 못해 자신이 다니던 대학원을 자퇴하며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자퇴 이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저자인 이환씨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김지윤(소설속 가명) 교수의 표절이 명백하다는 것은 적어도 교수라면 다 알고 있을 만한 것인데, 수십년 동안 아무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더욱이 "다른 마이너 매체들은 사설 등으로까지 다룬 사건에 대해 3대 중앙일간지가‘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한 것도 그곳의 기자들이 모두 김교수와 같은 학교를 나오고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표절 자체보다도 바로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못할 정도로 숨막히는 도제제도 속에 스승과 제자의 ‘동종교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울한 학문풍토를 꼬집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상황을 묻어버리려는 '권력들에 대항해 몇 사람의 독자들에게라도 더 사태를 설명하겠다는 '불순한(?)' 의도에서 기획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문예비평지 '비평과 전망' 홈페이지에 연재 도중 출판사 사정으로 홈페이지가 닫히면서 중단됐던 것을 완성시킨 것이다.

소설 내용 중 우리나라 문학계와 대학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표절의 실상을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발췌했다.편집자.

"이인서의 원고를 눈앞에 두고 앉아있는 세진 역시 믿기 힘들었다. 인서가 인용한 일본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구입해다 비교하며 혹시 각주라도 달지 않았을까 살펴보기까지 한 정세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인서가 비교해둔 많은 문장 가운데 한 대목을 비교해보자면 이렇다.
1)반 텐 베르크의 견해에 기대면, 서양에서 처음으로 풍경이 풍경으로 그려진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이다. 거기에는 풍경으로부터 소외당한 최초의 인간과 인간적인 것에서 소외당한 최초의 풍경이 있다.
2)판 텐 베르크의 생각에 따르면 서구에서 최초의 풍경이 풍경으로 그려진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부터이며 그곳에는 풍경으로부터 소외된 최초의 인간과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소외된 최초의 풍경이 존재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두 개의 내용은 번역상의 개인적인 표기, 조사 사용의 차이를 빼면 어느 것이 누구의 글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혹시나 해서 살폈지만 인용표시도 없었다. 비평을 전공하지 않은 정세진이 보기에도 그건 엄연한 표절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교수들이 매우 격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문학 전공교수들이 모여 이 사태를 두고 회의를 거듭하였고, 각각의 교수들이 연구실로 나를 불러 이런저런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젊은 교수였다. 그는 하루에도 수차례 나를 불러 호통을 치곤했다.
"자네가 기자들한테 논문을 돌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사실인가?"
"그런 일 없습니다."
"왜 그 따위 논문을 써서 제멋대로 발표하고 난린가?"
"그건 학술적 논의입니다. 비판적 문제제기라는 이야깁니다."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려드나? 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너무 강한 거 아냐?"
"김지윤 교수가 선생님에겐 아버집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선생님께서 누누이 주장하는 합리주의란 무엇입니까?"
"동양적 합리성이란 것도 있잖아."
"권위에 대한 복종이 동양적 합리성입니까? 저는 그런 것 믿지 않습니다."
"자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 역시 자네를 제도적으로 매장시킬 수밖에 없어."
"좋도록 하십시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 갈 길과 선생님의 갈 길은 다릅니다. 그것만 이해해주십시오."
이런 대화를 하루에도 몇번씩 그 교수와 하곤 했다. 제도적 매장(!)이라는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대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표절은 문화적 자본이 열등한 사람이 보다 우월한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자본을 도용하는 행위다. 한 작가의 표절 행위는 작가 개인의 윤리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개인의 윤리 의식을 넘어 보다 넓은 지평에서 표절의 문제를 다룰 수 있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타인의 저작, 혹은 구미의 저작을 표절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문화의 빈곤’에서 그 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시 그 친구는 문학평론가로 더 필명이 알려져 있었는데 어느 날 소설 한 편을 써서 그동안 친분이 있던 출판사 사장에게 출판을 의뢰했습니다. 그 작품은 당시 최고액수의 문학상 공모의 제1회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문학적 검증과 재미를 확보한 신세대 소설이라는 대대적인 신문광고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장에서 엄청난 판매를 이루고 있던 그 와중에 한 젊은 비평가에 의해서 뒤늦게 그 소설의 표절 문제가 제기된 겁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공모전의 심사를 맡았던 심사위원들은 그야말로 우리 문단의 일급들이었는데 표절한 작품에다가 엄정한 심사와 공정성 운운하며 대상을 준 셈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확인 결과 그 소설은 많은 부분 그때까지 우리 시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대중작가들의 문장이며 당시 잘 나가던 여류 소설가의 문장 이곳저곳을 짜깁기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그러자 그 소설을 쓴 친구는 이건 표절이 아니라 패스티쉬라는 새로운 기법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반발하고 나섰고, 심사위원들은 뒤늦게 유감을 표하면서 독자들에게 사과했지만 그건 그야말말로 문단 내에서만 이루어진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 뿐이죠.
멋모르는 독자들은 무슨 무슨 상을 받은 신세대 최고의 소설 운운하는 광고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고, 거기에 더해 패스티쉬니 뭐니 그전에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기법의 소설이라더라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열광의 도를 더해갔죠.
출판사는 표절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독자들은 아무 상관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왜 저런다냐, 잘 팔리면 모든 게 용서되는 거야,독자가 무슨 바본가 라고 말했죠.
소설을 쓴 그 친구는 이후 일약 대중스타가 되어 다음 소설부터는 나오는 족족 수십만부가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모 대학 모 학과에 A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상하게 프로이트를 싫어했습니다. 자신의 지도 학생이 프로이트를 방법론으로 학위논문을 쓰겠다고 찾아오면, 방법론을 바꿀 것을 요구했습니다. '문학연구에 무슨 프로이트냐'는 것이 주된 논조였는데, 방법론을 바꾸지 않으면 논문심사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곤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대학에는 프로이트를 자신의 문학연구 방법론으로 삼고 있는 B교수가 있었습니다.
A교수에 비하자면 한참이나 후배뻘인 교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러나 이 교수에게는 지도학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학원 논문 발표회장이었는데 A교수의 지도학생인 K 가 자신의 논문 방법론으로 프로이트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강평을 하던 A교수는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A교수는 K의 논문이 언급할 가치도 없는 논문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동료 학생인 I는 A교수의 혹평과는 달리, K의 논문이 매우 설득력 있고 독특한 작업의 소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A교수가 I를 지목했습니다.
“너 K의 논문에 대해서 말해 봐. 네 생각엔 이게 좋은 논문 같니?”
I는 침묵했습니다.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지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양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I가 침묵하고 있자 A교수는 화살을 B교수에게 돌렸습니다.
“B교수 생각에는 어때요. 이 논문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죠?”
교수들 간에 견해의 차이가 있을 때, 그들은 학생들 앞에서 논란을 벌이지 않는다는 것은 불문률처럼 지켜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나, 특히 선배 교수의 주장에 후배 교수가 반박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결코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그러니 대학원생이 교수를 비판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썩 괜찮은 논문인 것 같습니다만...”
B교수가 의외로 소신있는 답변을 하자 A교수는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I에게 화살을 돌렸다.
"I군, K군이 자네 선배라고 아무 말도 안 하는구만. 교수보다 선배가 무서워서 그런가. 자네도 앞으로 논문을 발표하겠지만 안 읽어봐도 문제투성이일 거야. K군처럼 말이야. 도대체 요즘 대학원생들 왜 이래."
K의 논문발표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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