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보전에 연연하는 외교통상부 일부 관료의 ‘2차 거짓말’과 최소한의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고 이를 지상중계한 국내 일부 언론의 야합이 또한차례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이같은 일부 관료와 언론의 행태는 이미 국정(國政)이 혼란 상태를 넘어서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주방짜오(朱邦造) 수석대변인은 6일 오후 외신 정례 브리핑에서 마약거래 혐의로 중국에서 처형된 한국인 사건과 관련해 “중국측이 한국에 사과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중국이 한국에 사과해야 할 문제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과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주대변인은 그러나 “중ㆍ한 두 나라는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개별적인 사안이 양국관계 발전과 두나라간 왕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덧붙여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은 이같은 브리핑 내용을 6일 오후 9시21분발 기사로 타전했다.
***6일 오전 국내언론 "중국이 공식사과했다"고 보도**
중국 외교부의 이같은 공식입장 표명이 있게 된 것은 이에 앞서 6일 오전 9시52분발 국내기사로 연합뉴스 외교통상부 출입기자가 “중국이 마약혐의로 사형당한 한국인 신모씨 사건과 관련, 빈 영사협약을 위반한 부분에 대해 우리 정부에 공식사과한 것으로 6일 전해졌다”고 보도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탕자쉬앤 외교부장은 지난 4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한승수 외교장관과의 한중 외무회담에서 신씨의 사형집행 사실을 1개월 뒤늦게 통보하고, 지난해 11월 병사한 공범 정모씨의 사망 사실을 7개월이나 늦게 우리측에 알려온 데 대해 잘못을 인정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밝혔다.
한중 양국은 그러나 중국측 입장을 고려, 이같은 공식유감 표명 사실을 대외에 공표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이 자국에서 숨졌을 경우 즉각 국적국가에 통보한다’는 빈 영사협약 위반을 중국이 공식 인정함에 따라 이번 사건을 수습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앞서 중국 인민일보 "한국이 공식사과했다"고 보도**
이같은 국내의 연합뉴스 보도는 그러나 이보다 앞서 보도된 중국 인민일보의 6일 아침 기사내용과 정반대되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6일 아침 인민일보 기사를 정리한 프레시안의 보도내용이다.(6일 3면 ‘한국, 중국에 사과’ 참조)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중인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한승수 외교부장관이 4일 브루나이에서 탕자수앤 중국 외교부부장을 만나, 마약거래 혐의로 중국에서 처형된 한국인 사건에 대해 한국정부가 중국정부를 근거없이 비난(groundless protest)한 데 대해 ‘공식사과(public apology)’했다고 중국 인민일보가 6일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또 한 장관이 이번 수요일 귀국하는 대로 주중 한국대사관을 비롯한 외교부 관계자들의 명단과 처벌내용을 통지해주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탕자수앤 중국 외교부장이 이같은 한승수 장관의 사과를 받아들여 이번 사건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의 이날 국내보도는 일부 방송에 그대로 보도됐고, 심지어는 7일자 일부 조간신문에까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전재됐다.
***자리보전하려는 관료와 넋나간 언론의 합작품**
그러나 연합뉴스의 이날 국내보도는 이번 사건이 전개된 일련의 과정, 즉 외교통상부의 잇따른 면피성 거짓말과 이를 뒤엎는 일련의 사실 확인 과정, 인민일보 등의 한승수 외교장관 사과내용 보도 등을 무시한 상식밖 보도였다. 또한 베이징 주재 특파원과의 최소한의 사실확인 절차조차 무시된 보도였다.
결국 연합뉴스는 이날 오후 9시21분발 베이징 주재 특파원발 기사형식을 통해 중국 외교부 주대변인의 “사과할 필요도 없고 사과한 적도 없다”는 요지의 강력한 항의성 발표를 전재해야 했다.
이번 파동을 지켜본 외교가 및 언론계에서는 개탄의 소리가 높다.
한 중견 언론인은 “아마도 이번 망신외교 파동으로 목이 날아갈 궁지에 몰린 외교통상부 관리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면책성 로비를 펼친 결과인 듯싶다”며 “이번 2차 거짓말 파동을 통해 관료들이 자리보전을 위해선 국익 따위는 언제든지 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언론이 이같은 관료들의농간에 쉬이 놀아날 정도로 평소 얼마나 자기관리 및 최소한의 사실확인이라는 취재의 ABC를 소홀히 하고 있는가가 극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다른 언론 관계자는 “이는 현 국정이 혼란상태를 넘어서 이미 무정부상태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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