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재벌 총수 22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애로사항을 듣는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를 끝마친 뒤 4대 재벌 총수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문 대통령은 산책하는 동안 이뤄진 대화의 상당 시간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할애했다.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무게 추를 '적폐 청산'이나 '재벌 개혁'보다는 '대기업 친화적인 경제 행보'로 옮겨가는 상징적인 장면이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에 연출된 것이다.
말문은 이재용 부회장이 먼저 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지난번 인도 공장에 와주셨지만, 저희 공장이나 연구소에 한번 와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얼마든지 가겠습니다"라며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는다거나 연구소를 만든다면 언제든지 가죠"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곧 이어 "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재용 부회장은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반도체의 창업주인 최태원 SK회장은 "삼성이 이런 소리 하는 게 제일 무섭습니다"라고 대화에 끼어들었고, 이재용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어깨를 툭 치며 "이런. 영업 비밀을 말해버렸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반도체 비메모리 쪽으로 진출은 어떻습니까?"라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두 번째 질문을 했고, 이 부회장은 "결국 집중과 선택의 문제입니다. 기업이 성장을 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죠"라고 답했다. 이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공개한 서면 브리핑을 보면, 문 대통령이 두 차례나 질문을 이어간 대상은 이재용 부회장이 유일했다.
문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 다음으로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대상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염두에 둔 듯 현정은 회장을 향해 "요즘 현대그룹은 희망 고문을 받고 있죠. 뭔가 열릴 듯 열릴 듯하면서 열리지 않고 있는. 하지만 결국은 잘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산책 동행자로는 상위 25대 기업과 중견기업 회장 참가자 62명 가운데 9명만 선택받았다.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다. 산책 코스는 청와대 귀빈을 대접하는 영빈관에서 본관, 소나무길, 소정원을 거쳐 녹지원에서 끝났다.
문 대통령은 산책이 끝나는 녹지원에서 재벌 총수들과 악수하면서 현정은 회장에게 "속도를 내겠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문 대통령이 속도를 내겠다는 대상이 '남북 관계 전반'인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인지를 묻는 질문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포괄적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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