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자신탁 인수협상 과정에서 각종 오만한 요구로 물의를 빚고 있는 미국 AIG의 3.4분기(7~9월) 수익률이 9.11테러의 여파로 전년 동기보다 80.8%나 급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AIG는 당초 이달말까지 현대투신을 인수키로 합의했으나 최근 인수가격 추가인하를 요구하며 실사작업 도중 철수하는 등 고압적 태도로 물의를 빚고 있다.
AIG의 억지요구는 수익구조가 악화됨에 따라 현대투신을 보다 헐값에 인수해 단기차익을 극대화하려는 전술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정부등 국내협상단은 의연한 자세로 당초 합의안을 관철시켜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AIG, 9.11테러로 향후 1~2년간 치명적 위기 맞아**
미국 최대보험사인 AIG사는 지난 25일(뉴욕 현지시간) “3.4분기 순수익이 9.11테러 및 과도한 인수합병(M&A) 비용지출의 결과로, 전년 동기의 17억달러보다 80.8%가 감소한 3억2천6백80만달러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같은 수익 악화는 주로 두 가지 요인에서 발생했다는 게 AIG측 설명이다. 하나는 세계무역센터 피해보상금 등 9.11테러에 따른 8억2천만달러의 손실 청구이다.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 제너럴 코퍼레이션(AGC)를 2백30억달러에 인수키로 하면서 이번 분기에 13억6천만달러를 지불한 데 따른 비용지출이다.
반면에 이같은 악재를 제외할 경우 영업이익은 19억2천만달러로 증가했으며, 따라서 9.11테러에 따른 손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AIG측 설명이었다.
AIG측 발표는 그러나 시장으로부터 회의적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 그렌멘드 트러스트의 분석가인 폴 라만은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AIG가 모든 상업적 거래의 보험료를 50%이상 올릴 수 있어야만 앞으로 최소한 1~2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무역센터 피격의 손실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9.11테러의 타격은 앞으로 최소한 1~2년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AIG측 노림수는 단기차익 극대화를 위한 투기펀드식 접근**
국내 전문가들은 이처럼 9.11테러로 입은 손실이 AIG 주장보다 큰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AIG가 내심 경영난 타개에 부심하고 있으며, 그 결과 9.11테러 발발이전에 합의했던 현대투신 인수조건 합의를 깨고 최근 무리한 추가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AIG는 양해각서(MOU)까지 교환한 뒤인 지난 8월 신주발행가를 급작스레 당시 합의사항보다 크게 낮춰줄 것을 요구, 이를 관철시켰다. 당시 현대증권과 참여연대 등은 ‘불평등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크게 반발했으나 정부는 8월23일 AIG측 요구에 굴복했다. AIG는 정부 결정에 만족감을 표시하며 10월말까지 인수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AIG는 지난 22일 느닷없이 5가지 추가요구를 하고 나섰다. AIG는 현대증권에 대해 발행가격(7천원) 기준 5% 배당, 현투증권에 재출자하는 4천억원에 대한 콜옵션,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가능 기간을 발행후 5년 이후에서 1년이후로 단축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분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한 뒤, 단기간에 투자수익을 극대화해 회수하겠다는 전형적인 ‘투기펀드적 접근방식’이다.
이같은 AIG의 위압적 요구를 현대증권이 거부하자 19일 AIG는 현대증권에 대한 실사를 무기한 연기하고, AIG 위탁을 받아 전산 및 마케팅 부문에 대한 실사를 하던 컨설팅회사 엑센추어 실사단도 22일 철수했다. 정부는 그러나 “실사가 중단됐다고 협상이 깨진 것은 아니다”라며 “이달 초순께 AIG측 협상단이 방한해 협상을 진행했으며 일부 협상단이 아직 국내에 남아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는 저자세로 대응했다.
***3차 공적 자금 조성 통한 정공법적 해결이 바람직**
정부의 저자세는 협상결렬시 현대투신에 쏟아부을 공적자금이 사실상 바닥난 만큼 현대투신을 무조건 AIG에 넘겨야 한다는 현실적 사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은 수세적 협상 자세로는 AIG의 억지요구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3차 공적자금’ 조성 문제를 조기에 공론화해 한국 전체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 AIG의 억지요구를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최근 제일은행의 호리에 행장 제명파동 과정에 드러난 외국계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현대투신을 또다시 헐값 매각할 경우 ‘제2의 제일은행’ 사태가 재연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정부는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의 졸속적 협상자세에서 탈피해 제3차 공적자금을 조성한 뒤 현대투신을 비롯해 서울은행 등 줄지어 서있는 부실금융기관들을 정공법으로 처리해 나가야만 국부유출 논란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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