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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일 만에 다시 찾은 용산…"하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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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일 만에 다시 찾은 용산…"하늘도 울었다"

[현장] 용산 참사 희생자 노제, 참사 현장서 열려

고(故)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현. 숨진 이들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 다섯 대가 차례로 남일당 건물 앞에 들어섰다. 355일 만에 다시 찾은 용산이었다.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다섯 명의 철거민이 목숨을 잃은지 어느덧 1년. 그동안 계절은 겨울에서 다시 겨울로, 벌써 네 번이 바뀌었지만, 이들에게 용산의 시계는 2009년 1월 20일에 멈춰있었다.

냉동고에서 1년을 보낸 시신 다섯 구가 마침내 떠나던 날, 하늘도 울었다. 운구 행렬이 서울역을 떠날 즈음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들이 참사 현장에 도착하자, 어느덧 함박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 이성수 씨의 아내 권명숙 씨는 "떠난 남편의 한이 서린 눈인지, 아니면 좋은 곳으로 가라는 축복의 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노제를 위해 용산 참사 현장으로 돌아온 다섯 구의 시신. 남일당 옥상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내려온지 꼭 355일 만이다. ⓒ프레시안
▲ 서울역에서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이 용산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프레시안

희생자 5명을 추모하기 위한 노제가 9일 오후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렸다. 서울역에서 영결식을 마친 유가족과 시민 4000여 명이 운구차를 따라 참사 현장에 차례로 도착했다. 애초 오후 3시로 예정된 노제는, 경찰이 신용산역 인근에서 잠시 행렬을 막아서는 바람에 2시간가량 지연됐다. 경찰은 전·의경 67개 중대 4700여 명을 배치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355일 만에 다시 찾은 용산…"용산을 떠나는 게 쉽지 않다"

1년의 지난한 기다림 끝에 엄수한 장례였지만, 유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아내들은 아들의 손을 붙잡고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마침내 구치소의 창살없이 남편을 마주하게 된 정영신 씨는 남편 이충연 씨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자 구속 집행 정지로 나온 이 씨는 이날 밤 12시가 되면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9월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을 떠난 이후 매일같이 참사 현장을 지켰던 유가족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이들에게 남일당의 의미는 남달랐다. 고 양회성 씨의 아내 김영덕 씨는 "남편이 서럽게 죽어간 이곳을, 매일같이 상복을 입고 하루하루를 보낸 이곳을 떠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유가족들도 "남편의 마지막 길이 실감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 이성수 씨의 아내 권명숙 씨는 "젓가락처럼 까맣게 타버린 남편의 시신을 보고, 아들이 '아빠가 왜 이렇게 작냐'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며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회고했다. 권 씨는 "아이 아빠가 1년 만에 용산에 돌아왔다. 이제 용산도 마지막이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지만, 남편이 없는 집은 예전 같지 않을 것 같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 고 이상림 씨의 유가족 전재숙, 이충연, 정영신 씨 (왼쪽부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나온 이충연 씨는 이날 밤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한다. ⓒ프레시안

"남편이 죽어간 용산…이곳은 이제 부자들의 천국으로 변하겠지요"

2시간 동안 이어진 노제는 송경동 시인의 조시 낭송, 민중가수 최도은 씨의 조가, 문정현 신부의 추모사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용산을 찾은 유가족들은 무대에 올라 "그동안 용산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끝까지 눈물을 참던 권명숙 씨는 편지글을 낭독하면서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남편이 서럽게 죽어간 이곳, 용산도 이제 마지막입니다. 이제 정부는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곳이 되겠지요.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반쪽짜리' 장례지만, 그래도 남편을 편안히 보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남편은 외롭게 불타 죽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 불탄 남일당 건물 뒤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만장이 보인다. 유족들의 걱정대로, 이제 이곳은 '가난한 자의 무덤'에서 '가진 자의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참사 현장을 둘러본 운구 행렬은 오후 7시께 장지로 이동했다. "남편을 두 번 태울 수 없다"는 유족들의 바람대로, 희생자들은 불탄 남일당 건물을 뒤로 한 채 모란공원에 묻힌다.

권 씨의 걱정대로, 이제 이곳엔 남일당을 내려다보는 길 건너 '시티 파크'처럼 호화로운 건물이 높게 들어설 것이다. 살던 곳을 잃어 망루로 올랐던 사람들의 '무덤'이 이제 부유한 사람들의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유가족들은 "용산이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1년여 만에 마침내 '해결'된 용산 참사. 이제 정말 '잊혀지는 일'만이 남았다. 아니, 그것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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