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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街가 뽑은 '세계 경제 이끌 15인'에 선정된 경제 관료 변양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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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街가 뽑은 '세계 경제 이끌 15인'에 선정된 경제 관료 변양호씨

관료가 反관치에 앞장

평소 국내외에서 관치(官治)경제의 본산으로 비판받아 온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이 세계 경제계에 가장 영향력이 큰 월가의 언론매체로부터‘앞으로 세계경제의 변화를 선도할 15명’중 하나로 꼽혀 관가 및 재계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문제의 국장은 재경부의 핵심부처인 금융정책국의 최고책임자여서 더욱 화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월드 비즈니스’ 특집 섹션에서 앞으로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15명중 하나로 재경부의 변양호(47) 금융정책국장을 꼽았다. WSJ은 “대우자동차와 서울은행 매각, 현대투자신탁 처리, 하이닉스 반도체 회생 등 산적한 재벌개혁의 한 가운데 변국장이 서 있다”며 “대외적으로 재벌개혁 후퇴의 비난 속에서 변국장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WSJ가 꼽은 15명의 공통점은 이들이 각사회의 ‘변화 세력’이라는 것이다.
반세계화 운동의 지도자인 호세 보브를 비롯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형 ‘제3의 길’을 추진중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일본 재계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베스트셀러작가인 일본의 나오미 이노세, 기업관료주의에 메스를 댄 멕시코 여성갑부 마리아 아람부로자바라, 중국정부의 증시 개입을 가로막고 있는 상하이증권거래소 부이사장 제임스 리우, 창의력을 중시하는 일본 소니 창작센터의 테이유 고토 수석 예술책임자 등이 그런 인물이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웬 변화세력?**

이런 쟁쟁한 국제거물들과 함께 변국장이 꼽힌 이유는 무엇일까.
변국장 본인은 과분한 평가라고 말한다. 그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얼마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길래 차관 허락을 얻어 2시간 인터뷰를 한 것이 모두”라며 “이렇게 기사가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사는 친구가 1일 전화를 해줘 비로소 기사가 나온 줄 알았다”며 “내가 산적한 재벌개혁의 한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은 과분한 평가이며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재경부의 권력중추인 금융정책국장이 ‘변화 세력’으로 꼽힌 대목에 대해 갸우뚱해하는 일반인들도 적잖을 듯싶다. 아직까지도 재경부 하면 국내외에서 ‘관치’의 대명사로 꼽히며, 그 중에서도 특히 금융정책국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국장에 대한 WSJ의 평가는 그리 잘못된 게 아니다. 기자가 알기로 변국장은 오랜 시절 ‘재경부의 미운 오리새끼’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해 7월의 일이다. 당시는 재경부장관의 부총리 승격문제가 한창 세간의 논란이 되던 시절이었다. 경제팀간에 불협화음이 잦자 그 원인을 엉뚱하게 재경부의 권한 약화에서 찾아 “외환위기후 장관급으로 격하된 재경부장관을 다시 부총리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과천 재경부 관료들의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김영호 당시 산업자원부장관등 극소수 각료가 반대의견을 피력하긴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재경장관 부총리 승격에 공개 반대**

이때 재경부 내부에서 예기치 못한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국방대학원에 연수를 나가있던 변양호 국장이 공개강연장에서 ‘불가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해 7월13일 국제금융연구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주제발표자로 참석, ‘한 경제관료가 본 외환위기와 극복과정’이라는 강연에서 재경부에 칼을 들이댔다.

“외환위기후 시급한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진만큼 당국의 역할분담을 비상체제에서 평시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금융정책을 수립하는 재경부 권한이 필요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최근 재경부장관의 부총리 승격과 관련해 재경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힘이 있으면 시장친화적 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기관들에게 부실위험이 큰 채권형펀드 매입을 강요하는 대목과 관련, “금감위가 감독업무와 함께 금융정책 업무까지 관장한다면 옛 재무부가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은행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처럼 금감위는 금융기관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한은은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하며 재경부는 금융산업 발전과 시장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제자리 찾기’가 선행돼야 조화로운 금융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변국장의 이같은 주장이 재경부와 금감위 등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각에서는 “인사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냐”며 로마시절 시저의 등에 칼을 꼽은 ‘부르터스’에 비유하는 비난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변국장의 일관된 지론이었다. 그는 93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재경원으로 합한 대목부터가 불만이었고, 재무부 출신이면서도 평소 재무부에 비판적이어서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금융정책실 등 재무부처로 못돌아올 줄 알라”는 선배들의 경고도 받은 바 있다.

***외환위기를 예감한 국제파**

변국장의 능력만은 그러나 모두가 인정했다.
외환위기가 발발하기 열달 전인 97년 1월초 일이다. 당시 변방 부서의 과장이던 그가 기자에게 “차나 한잔 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방에 가보니 조선일보를 펴놓고 의견을 물었다. 미국의 돈부시 교수가 한 “96년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2백36억달러나 되니 원-달러환율을 7백원대에서 1천원대로 대폭 현실화해야 외환위기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는 “돌아가는 분위기가 도통 심상치 않다”며 “돈부시 주장이 맞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예민한 시점이어서, 그의 환율 현실화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그는 ‘국내파’가 판치는 재경부 안에서 남달리 국제감각이 빼어난 인물이었다. 세계은행 파견 근무기간 동안에 월가로 상징되는 국제금융세력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생체험한 탓이다. 때문에 그는 귀국후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조사차 한국을 방문, 재무부의 주무과장 등으로부터는 찬밥 대접을 받을 때에도 그들과 만나 국제금융계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면밀히 체크했다. 아울러 96년 반도체 불황이 한국경제를 강타하자 재경원내 박사급 두뇌들을 모아 반도체, 원유 현물시장 등의 가격변동을 체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시로 점검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평소 국제금융계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온 결과, 97년말 외환.금융위기가 발발하자 변방에 묻혀있던 그는 권력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98년 1월 정부는 뉴욕에서 백발이 성성한 월가의 베터랑들과 마주앉아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을 벌어야 했다. 이 협상은 정덕구 당시 재경원차관이 맡았는데, 협상장에 나가야할 주무과장이 자신 없어 하자 변방 부서에 있던 국제파 변과장을 국제금융담당관으로 끌어들여 협상을 추진한 것이다.

변과장은 그러나 어느 정도 외환위기가 수습된 지난해 국방대학원 연수 형식으로 나가야 했다. 일종의 물먹은 인사였다. 이 기간중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외국 금융계 일각에서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진념 재경부장관이 “소신껏 일할 기회를 주겠으니 딴 생각 말라”며 끌어당겨, 지난 1월 정책조정심의관을 거쳐 현재는 재경부의 권력중추인 금융정책국을 책임맡고 있다.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가 된 셈이다.

***"정부 개입 말라"는 월가의 메시지이기도**

세계 경제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매체로 꼽히는 WSJ이 그를 ‘앞으로 세계경제 변화를 주도할 15명’중 하나로 뽑은 것은 이같은 변국장의 일관된 행보를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의 선정을 한국정부에 대한 ‘월가의 우회적 압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서울은행, 대한생명, 현대투신, 하이닉스반도체 등 해외매각 대상에 오른 기업들을 처리하는 데 정부가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변국장도 요즘 돌아가는 경제상황에 골머리가 지끈거리는 인상이다. 그는 3일 통화에서 “9.11테러 발발에도 불구하고 현대투신은 이달말에 본계약을 맺기로 하고 AIG와 협상이 계속 진행중이니 지켜봐야 할 일이나, 하이닉스반도체 처리문제가 골치덩어리”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7월에 만났을 때에는 “미연준(FRB)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린 결과 5,6월중에 잠시 미국주가가 좋아지고 힘들 듯 싶었던 하이닉스의 DR(주식예탁증서)도 6월 중순에 잘 팔려 이제는 한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미국주가가 다시 곤두박질쳐 걱정”이라며 “미국 IT(정보통신)의 중복과잉투자가 해소되기까지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반관료파인 변국장이 금융정책국장이 되더니 좀 바뀐 것같다”는 이야기도 금융계 일각에서 들린다. 언론을 통해 정부정책을 호되게 비판한 정운찬 서울대교수와 정교수 자택에서 벌인 심야설전도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는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일하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국장은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살아나기 힘든 부문은 과감히 도려내고 살릴 부문은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의 소신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둔 예민한 ‘정치의 계절’, 세계 동시불황이 우려되는 ‘경제위기의 계절’에 어떤 형태로 관철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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