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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세계시스템> 달러화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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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세계시스템> 달러화 쇼크

무너지는 달러화 신화

“세계적 위기 때마다 언제나 달러화는 올랐다. 그러나 지금, 뉴욕 및 워싱턴 공격의 여파로 달러화는 대다수 주요통화에 대해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예견돼온 달러화 하락이 마침내 시작된 것인가? 그리고 미국 통화는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가 아닌가?”

9.11사태 직후 얼마 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달러화 관련 분석기사의 서두에서 던진 ‘세계적 화두(global agenda)’이다.

2차 세계대전후 반세기동안 달러화는 명실상부한 세계의 기축통화로, 누구도 그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난 71년 8월15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대통령이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 및 고정환율제 탈퇴를 전격 선언한 이후 달러화는 금과 동일한 가치를 갖던 ‘절대화폐’에서 마르크화나 엔화같은 ‘일반화폐’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변함없는 세계의 기축통화였다.

달러화는 한때 엔화나 마르크화 등에 비해 약세를 보이기도 했고, 80년대 중반에는 대미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인 일본에 대해 무역적자 축소 차원에서 강제로 인위적인 엔화 절상을 요구해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화 가치는 오일쇼크나 걸프전 등 세계위기 때마다 금값과 함께 급반등했다. “세계위기때 미국보다 안전한 도피처는 없다”는 국제투자가들의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달러화는 특히 지난 95년 4월이래 전례없는 상승행진을 거듭했다. 고성장-저물가로 상징되는 ‘신경제 신화’ 덕분이었다. 상승세가 최초로 꺾인 지난 7월까지 미국 달러화는 장장 64개월동안 상승을 거듭했다. 그 결과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지난 7월 조사결과, 달러화는 전세계 주요통화 55개 가운데 멕시코의 페소, 페루의 뉴 솔, 레바논의 파운드 등 3개를 제외한 52개 통화에 대해 지난 84년이래 가장 초강세를 보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던가.
영구할 듯싶던 달러화 상승세가 지난 7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9.11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무너져 내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항공기 테러를 당한 세계무역센터(WTC)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허무하게 가라앉던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최근 달러화의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고개 숙인 달러’**

9.11사태직후 며칠간 과거 모습이 재현되는가 싶었다. 미국 국채 사자세력이 몰리면서 국채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상 현상’이 목격됐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발전, 미국 재정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미국 주식, 장기채권 등을 팔고 유로화나 엔화를 사는 세력들이 나타나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러화는 우리나라 원화 등 신흥개발국 화폐에 대해선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미국경제가 망가지면 미경제에 의존하던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는 더 크게 피해를 볼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화나 엔화, 스위스 프랑화 등 선진국 화폐에 대해선 그렇지 못했다. 맥없는 추락의 연속, ‘고개 숙인 달러’의 초라한 모습이 노정됐다.

맨처음 달러화 팔자가 목격된 곳은 미국 재무부채권(TB)만 1조달러어치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최대 달러자산 보유국 일본이었다. 19일 일본자산 일부의 운용을 책임맡고 있는 ABN 암로 뱅크의 외환 매니저 마사키 토시히로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투자가들이 미국자산으로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일본투자가들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달러화를 지탱해온 세 다리가 꺾였다”**

하루평균 1조1천억달러가 거래되는 외환시장에서 가장 거액을 운용하는 시티은행의 외환전략 총책임자인 로버트 신셰도 22일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세계최대 경상수지 적자국”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달러화 가치를 지탱해왔던 외국인직접투자, 자산매입 유입자금, 채권매입 유입자금 등 세 다리가 꺾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9.11사태 발발직전 유로화 대비 달러화의 연말 환율을 87센트로 전망했던 시티은행은 이를 95센트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세계에서 시티은행 다음으로 외환거래를 많이 하는 독일의 도이체방크의 경우는 유로화가 95센트, 엔화는 117엔이 될 것으로, 미국의 J.P.모건 체이스는 상황을 더욱 나쁘게 읽어 연말에 유로화는 1달러, 엔화는 116엔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외환거래 랭킹 3위인 미국의 골드만 삭스는 6개월 뒤 유로화가 1.05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반년 뒤에는 달러화보다 유로화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는 충격적 전망이다.

***미국채권도 믿기 힘들다(?)**

미국채권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기가 짧은 2년물 등 단기채권에 대한 신뢰는 상대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기가 긴 10년물이나 30년물 같은 장기채권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의 자본시장에서 미국의 단기 국채가 급상승(유통수익률 하락)했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고 안전한 데다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오는 10월2일 공개시장조작위원회 회의에서 금리를 추가인하할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23일 런던 자본시장에서 미국 재무부 발행채권(TB) 2년물의 유통수익률은 2.87%를 기록, 종전의 사상최저치 기록을 갱신했다.

문제는 TB 10년물과 30년물이었다.
2년물 같은 단기채권은 만기가 짧아 믿을 수 있는 반면, 만기가 긴 채권은 앞으로 테러 보복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재정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감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수요가 줄면 값이 떨어지는 법. 미국의 장기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10년물은 4.7%대, 30년물은 5.5%대로 유통수익률이 오르며 값어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미래를 믿을 수 없다”는 국제금융시장의 반응이었다.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 가능성**

달러화 하락과 관련,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 여부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19일 발표한 ‘2001년 세계투자보고’에서 “지난해 1조3천억달러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올해에는 40% 격감한 7천6백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직접투자 감소의 희생자는 한국 등 신흥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절대규모 면에서 살펴보면 “미국이 우선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전문기관의 분석이다.

IMF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최대 경상적자국인 동시에 ‘세계최대 자금유입국’이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유입을 통해 경상적자를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은 전세계 자금 순유입액의 64%인 4천7백80억달러를 빨아들였다. 지난해 경상적자 4천5백억달러보다 큰 액수다. 만성적 경상적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에 대해 평균 7.6% 평가절상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정보통신(IT) 거품이 꺼지고 그 결과 국제기업간 인수합병(M&A) 붐이 냉각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황은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상반기에 외국인들이 사들인 미국자산 순매입액은 2천8백60억달러였다. 지난해 4천7백80억달러의 절반을 웃도는 수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폴 오닐 재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정부와 월가는 ‘달러화 강세’를 자신했고, 달러화도 강세행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상황은 바뀌었다. 하반기가 되면 좋아지리라던 미국경제는 도리어 나빠졌다. 국제사회의 신뢰가 밑둥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러화 위기는 일시적 쇼크가 아닌 구조위기**

9.11사태로 달러화 하락 현상이 심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달러화 위기의 본질은 9.11사태가 아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테러사건은 테러 이전부터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던 달러 하락세를 가속화시키는 작용만 했을뿐”이라며 달러화 약세의 원인을 “1년전에 끝난 미국호황과 연간 4천5백억달러의 미국 경상수지 적자”에서 찾고 있다.

달러화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중반부터였다. 한 예로 도이체방크의 수석경제학자 폴 메게시는 테러 발발 한달 전인 8월10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그동안 달러화는 과대평가돼 왔으며 우리는 지금 전환국면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IMF의 고위관계자도 이에 앞서 8월1일 미국 뉴욕타임스와 만나 “최근까지 ‘강한 달러’ 정책은 미국 및 지구촌의 거시경제를 위해 바람직했으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며 “특히 달러화 가치가 급속하고 무질서하게 수정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린스펀의 전임자인 폴 볼커 전 미연준 의장은 지난달 25일 미상원 은행위원회의 경제정책 공청회에 출석해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유로화 및 엔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달러화 약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GDP의 5%에 달하는 연간 4천5백억달러의 경상적자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너무 높은 수준”이라며 “그 결과 우리는 전세계의 모든 자본을 빨아들여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볼커는 그러나 “앞으로 매일같이 30억달러씩을 빨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시장논리에 따라 일정한 달러화 약세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화 쇼크, 어디까지 확산될까**

달러화 급락시 가장 우려되는 대목중 하나가 국제투기자본인 헤지펀드이다. 97년 위기때 ‘하이리스트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의 위험스런 투자행위를 하던 종합금융사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붕괴, 위기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다.

지난 87년 10월19일 미국의 블랙 먼데이때 주가가 23%나 폭락하고 채권값과 달러화 값도 동반폭락했다. 그러나 당시는 파생금융상품시장 규모가 극히 미미했기에 부동산대출 버블이 심했던 저축대부조합과 일부 금융기관의 도산 수준에서 어렵게 수습이 가능했다. 반면에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헤지펀드의 자산규모가 7천억달러에 달하고, 이들이 운용하는 파생금융상품의 1일 거래량이 1조5천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파생금융상품의 95%가 직,간접으로 달러화 등 환율연계 상품이다.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일반적으로 거래액의 10%안팎의 증거금만 내걸고 이뤄지고 있다. 예상대로 적중만 하면 작은 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으나 반대의 경우 순식간에 원금마저 잃고 도산하는 위험한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최대투자가능금액) 거래방식이다. 홍콩금융계에 정통한 영국계법인 GTA의 강희민 대표는 “대다수 파생금융상품이 달러화 연계상품으로 홍콩 등에서는 보통 10배로 흔들고 있다”며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 파산하는 펀드가 적잖을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속도다”**

달러화 급락은 세계경제계에 재앙이 될 수 있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완만히 진행돼야 한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과연 이런 이상(理想)적 시나리오가 시장에서 통용될지 여부이다. 시장의 불안정성이 과거 어느 시기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미 중남미 등 세계경제의 ‘약한 고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러화를 겨냥한 헤지펀드의 준동도 일각에서 목격되고 있다.

'쿼바디스 도미네.’
지금 세계 금융계가 던지는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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