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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등 '미국 감싸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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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디스 등 '미국 감싸안기'

미국은 신용 안전, 신흥국가는 위험

9.11테러를 계기로 그동안 ‘서방이익 중심적’ 신용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비판받아온 무디스 등 월가의 신용평가기관들의 객관성이 또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테러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미국의 국가신인도나 미국기업의 신용등급은 종전대로 유지하는 반면, 신흥시장 국가들에 대해서는 테러 여파로 자금이탈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낮추는 편파적 신용평가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신뢰도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야기하고 있다.

정치수도인 워싱턴과 경제수도인 뉴욕을 동시에 가격한 9.11테러로 미국 국가신인도와 산업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조지 W. 부시 정권이 즉각 전쟁을 선포하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글로벌 투자가들이 미국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할 정도로 이번 사태가 미칠 부정적 파장은 만만치 않다.
만약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 등 다른 국가에서 수도가 테러를 당하며 수천명이 죽는 9.11사태같은 전시(戰時)상황이 발발했다면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즉각 해당 국가나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몇 단계 낮추었을 게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미국은 언제나 안전하다”**

그러나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 IBCA 등 월가의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태 발발후 미국 정부나 기업의 신용등급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 사태 발발후 이들이 행한 유일한 평가작업은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 13일 S&P, 14일에는 무디스가 이번 테러로 가장 직접적 타격을 입은 U.S.에어웨이스, 아메리카 워스트 에어라인스 등 일부 미국, 캐나다, 영국 항공사들의 신용등급을 한단계 낮추거나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올려놓은 게 고작이다.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 테러로 최고 1천억달러(영국 보험회계법인 BNW 딜로이트사의 16일 추정치)의 천문학적 거액을 물어내야 할 위기에 처한 미국최대보험사 AIG, GE캐피털 재보험사업부 등 보험사와 재보험사들을 도리어 적극방어하고 나섰다. S&P와 피치 IBCA 등은 “문제 보험사들의 피해액은 1백50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피해액이 5백억달러를 넘지 않는한 이들의 튼튼한 재무건전성을 볼 때 별 문제가 안될 것”아러는 이유로 현재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미국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감싸안기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 예로 S&P는 14일 “최근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안정돼 있다”며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추가하면 금융부문의 신용은 곧바로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신흥시장은 위험하다”**

아이러니컬한 대목은 미국 국가신인도와 기업의 신용등급에 대해선 이처럼 철저한 방어태도로 일관하는 신용평가기관들이 정작 신흥시장 등에 대해선 9.11사태 직후 매몰차게 신용등급을 하락시켰다는 사실이다.

S&P는 15일 9.11사태로 야기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신흥시장에서의 자금이탈 및 경기회복 지연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레바논, 터키, 콜럼비아, 필리핀, 자마이카 등의 신용등급을 낮추고 추가등급 하락을 예고하는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놓았다. S&P 발표후 이들 국가의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19일에는 9.11테러가 아시아의 은행과 보험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S&P는 보고서에서 “신흥시장에서 영업중인 외국계 생명보험 및 비생명보험사에 대한 테러 피해보상 청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여기에다가 조만간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수익성과 수지균형 악화가 단기적으로 더 큰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등 서방 생보사들은 끄떡없으나, 아시아 시장쪽은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는 앞뒤 모순된 전망이었다.

***커지는 시장의 불신**

이들 신용기관의 편파적 신용평가 작업은 시장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예상과는 다른 사태가 속속 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디스가 14일 신용등급을 한단계 낮춘 U.S.에어웨이스와는 달리 앞으로 신용등급을 낮출 수도 있다며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 콘티넨털 에어라인이 18일 미 항공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만기도래한 6천9백40만달러를 갚지 못해 파산신청을 내는 동시에, 10개 노선을 반납했다.

다른 항공사들도 파산위기에 몰리기란 마찬가지였다. 이들 항공사들은 19일 9만8천명의 직원 해고계획을 발표하는 동시에 미정부에 대해 1백75억달러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6개월내에 미국의 거의 모든 항공사가 쓰러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또한 17일 개장한 뉴욕 증시에서는 이들 항공사의 주가가 40%나 폭락했고 그후 거의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평가기관들이 끄떡 없다고 발표한 보험사와 재보험사들의 주가도 맥을 못추기란 마찬가지였다.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조차 “신용평가사들이 보험사와 재보험사의 신용등급에 이상이 없다고 발표한 대목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시장의 불신이 커지자 S&P는 18일 서둘러 이들 보험사를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놓았다.

끄떡없으리라던 미국의 국가신인도에도 이상이 생기고 있다. 18일부터 뉴욕,런던,도쿄시장에서 미국채권 팔자가 시작된 것이다. 9.11 테러직후 한때 돈이 미국채권으로 몰려들며 채권값이 급등했다. 그래도 미국채권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부시정권이 장기전에 돌입한 태세를 분명히 하자 18일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아프가니스탄외의 이라크 등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산될 경우 과다한 전비부담으로 미국의 재정이 취약해지고, 그 결과 미채권의 안전성도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또다시 ‘울지 않는 경보기’**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신뢰는 지난 97년 아시아 금융.외환위기때 한차례 큰 허점을 드러냈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1이라는 투자적격 상위등급에 올려놓고 있던 무디스는 97년 10월부터 98년 1월사이에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1으로 여섯 단계나 낮춰 국제금융계로부터 ‘울지 않는 경보기’라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무디스는 평소 뉴욕 도심에서 갱단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만 해도 뉴욕시가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등급을 낮출 정도로 나름대로 신용평가에 엄격함을 보여왔다. 그러나 뉴욕 도심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고 5천여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 앞에서는 ‘월가식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국내 금융관계자는 “무디스 등의 최근 태도는 미국정부나 미국기업의 신인도를 낮출 경우 미국에서 자금이 이탈돼 세계 경제계에 수습불능의 혼란이 예견된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선진국 따로 후진국 따로 식의 주관적 신용평가 행위를 계속할 경우 신용평가기관의 생명선인 신뢰에 치명적 흠이 가고 그 결과 세계금융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위험이 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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