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아내 이순자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망언을 했다. 그는 새해 첫날 극우매체를 통해 보도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남편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제를 이뤄서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지 않느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1980년 5월, 전두환이 실질적으로 지휘한 계엄군이 광주에서 시민과 학생 등 165명을 학살(부상 뒤 사망자는 376명: 5·18기념재단 등 4개 단체가 2005년 5월 13일 발표한 조사 결과)한 이후 39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신학설'이다. 이순자의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여러 야당이 ‘5월 광주’를 모독한 망언이라고 격렬히 비난하자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은 "아내가 남편에 관해 한 이야기에 대해 논쟁을 벌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남편과 둘이만 있는 자리에서 한 말이거나 자녀들에게 한 이야기라면 구태여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이순자는 극우 매체와 사전에 장시간에 걸쳐 녹화를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망언을 했으므로 정치·사회적으로 심각한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전두환이 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되려면 전문가들이 공인하고 주권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업적을 세웠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민주체제 창건이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한 일이 전혀 없고 민주주의를 '학살'한 전과밖에 가진 것이 없다.
1979년 10월 26일 밤,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뒤 전두환은 12월 12일 노태우 등과 함께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는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되어 실권을 잡았다. 그는 1980년 5월 17일의 쿠데타로 '서울의 봄'을 유린한 뒤 이튿날 터진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진압한 '원흉'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같은 해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선거에 단독 후보로 나서서 총 투표자 2525명 가운데 찬성 2524표, 무효 1표로 당선되었다. 이순자는 그 날을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된 시점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전두환이 개헌을 통해 만든 대통령 7년 단임제라는 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던가? 그의 집권 7년 내내 민주주의는 전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재야와 학생의 민주화운동을 무참하게 탄압하다가 임기 말인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위기에 몰리자 같은 해 3월 ‘특별담화’를 통해 '호헌 조처'를 발표했다. 다음 13대 대통령선거에서도 현행 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한 뒤, 사실상 자신이 지명해 당선시킨 인물을 통해 '상왕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러나 6월에 터진 대대적 항쟁은 전두환의 야욕을 여지없이 꺾어버리고 말았다.
전두환이 민주주의의 아버지이기는커녕, 주권자들이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게 만든 재판 결과가 1996년에 나왔다. 김영삼 정권 시기인 그 해 1월 14일 검찰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를 내란 및 반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전두환은 같은 해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2월 26일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상고를 기각하고 내린 판결 사유는 끔찍한 것이었다.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 이탈, 상관살해 미수, 초병 살해, 내란 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김영삼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두 사람을 특별 사면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전두환은 지금 박근혜·이명박처럼 옥살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은 천문학적 액수의 부정축재를 저지른 '국가원수'이기도 했다. 그는 1997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에 위법적으로 형성한 ‘비자금’은 무려 9500억여 원으로 추정되었다. 정부가 2017년 9월까지 환수한 추징금은 1155억여 원뿐이다. 그는 2003년 재판 과정에서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라는 판사의 질문에 "지금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말한 일화로 국내외 언론의 '각광'을 받은 바 있다.
이순자는 전두환이 오는 7일 '사자(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기 전에 '민주주의의 아버지' 발언을 했다. "(치매라서) 조금 전의 일도 기억을 못하는 사람한테 광주에 내려와 80년대 일어난 일을 증언하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코미디"라는 것이다. 1930년생인 전두환은 올해 89세가 되었다. 세수로는 9순이다. 더 이상 기억력이 떨어지기 전에 아내가 남편의 손을 잡고 광주 망월동국립묘지에 가서 영령들에게 사죄하고 민주주의를 학살한 대역죄에 대해 유족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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