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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의 꼼수…"근무 평정 깎고 대기 발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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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의 꼼수…"근무 평정 깎고 대기 발령하고"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21> 은행 직원 후선역 및 대기 발령 사건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의 '비용 감축'의 희생양이었다. 거의, 항상 그랬다. 기업 인수 합병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전체 비용 수치를 맞추고, 서류 위에 사인을 하지만, 그런 간단한 결정 과정에 따라 노동자들은 울고 웃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꼼수가 등장한다. 정당한 방식으로 비용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을 유도하고, 인사 발령을 통해 임금을 삭감하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김선수 변호사는 국민은행과 씨티은행의 '후선역 발령 사건(금융권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업무 실적이 부진할 경우 일선이 아닌 후선, 즉 상담, 조사역 등으로 발령을 내는 것)', '대기 발령 사건' 등에서 부당하게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변론을 맡았다. <편집자>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를 꿈꾸다
(2) 노동 변호사를 야유한 노동자들, 그 실체는…
(3) 회사는 왜 캐디를 '사장님'으로 만들어줬나
(4) 건설 노동자는 병원 노동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라?
(5) 통상임금 논란, 원조는 25년 전 이 사건!
(6) 1992년, 여의도광장에서 '노동자 대회' 열린 이유는?
(7) 신영철 대법관, 노동자 옥죄는 '이것' 해결해줄 수 없나?
(8) 힘들게 대기업 합격, 그런데 출근은 하지 마라?
(9) "전두환 신군부 때문에 퇴직금 소송만 10년"
(10) "21세기, 이게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실이라니…"
(11) 어느 날 캠퍼스에서 사라진 그 교수들, 왜?
(12) 8년 8개월 8일 만에 복직, 대법 판결만 2번…어쩌다?
(13) 노조 위원장 자살, 부위원장 사망…대학은 책임 없나?
(14) 법원 무시하는 사장, 스스로 권위 깎는 법원
(15) 대한항공 남자 승무원 2명의 '11년 법정 투쟁기'
(16) 세계적인 록스타도 한국 자본에 분노했다
(17) 꿈에 그리던 복직…"아이 낳았을 때만큼 기뻤다"
(18) MB정부가 몰아낸 선생님들…교실로 돌아오기까지
(19) '파리 목숨' 대학교 조교들의 눈물을 아시나요?
(20) 알코올중독 치료 병원 매각, 반대에 나선 이들은?

1. 국민은행 후선역 발령 사건

후선역 발령의 경위

원고는 1968년 1월 15일 국민은행에 입사하여 근속 기간 30년이 지난 2001년 5월 12일 무렵에는 신용두지점 차장 겸 감리역(3급)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경제 위기 이후 국민은행은 1998년 12월 31일 장기신용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합병 전 국민은행 직원들은 장기신용은행 직원들에 비하여 동일 연령 또는 동일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5년 정도 승진이 늦었고, 급여 수준은 60% 수준으로 낮았으나 업무량은 40% 정도 많은 편이었다. 국민은행 출신 직원들과 장기신용은행 출신 직원들 사이에 직급 격차가 발생하게 되었고, 노동조합은 이를 조정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은행은 1999년 1월 합병 전 국민은행 출신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승진 인사를 단행하여 90명을 2급으로, 180명을 3급으로, 320명을 4급으로 각 승진 발령했다.

은행은 1999년 6월 14일 노동조합과 준정년퇴직제도의 변경, 후선 배치 인력에 대한 보수 등 지급 기준 변경(상여금·체력단련비 등의 삭감, 연월차휴가 의무 사용), 상담역 직위 신설 등을 골자로 한 단체협약 개정에 합의했다. 은행은 합병 전 국민은행 출신 직원의 감축 비율과 장기신용은행 출신 직원의 감축 비율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연공 관련 부문, 능력 관련 부문, 기타 요소를 참작하여 명예퇴직 중점 권고 대상 직원을 선정했다. 그 구체적인 평가 기준은 3급 직원 중 합병 전 국민은행 출신 직원에 대하여는 연공 관련 부문으로 연령 40%(만 46세부터 적용), 근속 기간 10%(27년 이상 근속부터 적용), 현직급 근속 기간 10%(8년 이상 경력부터 적용), 능력 관련 부문으로 근무 성적 20%, 상향식 평가 20%로 배점하고, 기타 요소로 징계 내용, 승진 누락 기간, 후선 배치 경력 등을 감점 요소로 반영했다.

장기신용은행 출신 직원의 경우 장기신용은행이 1980년에 설립되어 은행의 역사가 짧아 위와 같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연령 및 근속 기간 요소에 있어 평가 대상이 되는 직원이 거의 없게 되고, 누적 업적 평가제 및 상향식 평가제를 시행하지 아니하였던 사정을 감안하여, 장기신용은행 출신 3급 직원에 대하여는 연공 관련 부문으로 연령 40%(만 42세부터 적용), 근속 기간 15%(17년 이상부터 적용), 현직급 근속 기간 15%(8년 이상 경력부터 적용), 능력 관련 부문으로 근무 성적 평가 결과만을 40% 배점하고, 기타 요소로 징계 내용, 승진 누락 횟수, 후선 배치 경력을 감점 요소로 반영했다. 이에 따라 은행은 1999년 6월 16일 1급 내지 3급 일반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하여 명예퇴직제를 실시했고, 그 결과 1급 233명 중 71명, 2급 598명 중 63명, 3급 1034명 중 44명, 합계 178명의 대상자 중 118명이 명예퇴직 했고 이에 불응한 60명은 상담역으로 전보되었다.

은행은 2000년 4월 27일 노동조합과 명예퇴직제의 실시에 관하여 1급 내지 3급 전 직원, 4급 및 5급은 고령 또는 장기 근속 직원을 위주로 명예퇴직제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조합원이 아닌 1급 내지 3급 직원들과는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은행은 1급 내지 3급 직원 중 1차 명예퇴직 시 불응한 직원들과 연령, 근속 기간을 기준으로 선정한 직원 등 합계 248명을 중점 권고 대상자로 선정하되(원고가 속한 3급 직원의 경우 1950년 이전에 출생한 자이거나 근속 기간이 30년 이상인 자를 선정함) 중점 권고 대상자 중 명예퇴직에 불응하는 직원에 대하여는 후선에 배치하는 전보 발령을 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2000년 4월 28일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원고는 근속 기간이 30년 이상이어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중점 권고 대상자 중 231명은 명예퇴직을 신청하였으나 원고를 포함한 17명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중점 권고 대상자 외 다른 직원들도 명예퇴직을 신청하여 총 명예퇴직 인원은 320명에 달하였다.

은행은 원고를 2000년 5월 12일 신용두지점 차장 겸 감리역에서 남부지역본부 조사역으로 전보 발령하였다가, 2000년 5월 23일 같은 본부의 상담역으로, 2001년 2월 1일 같은 본부의 대기역으로, 2001년 8월 27일 같은 본부 대기역(대기 발령)으로 전보했다. 이로 인하여 원고는 2000년 5월 23일부터 2003년 5월까지 사이에 합계 금 1억3416만6503원의 임금 손실을 입었다.

▲ 국민은행 홈페이지 캡처

소송의 진행과 결과

원고로부터 사건을 수임하여 2003년 3월 6일 소장을 접수했다. 네 차례에 걸친 전보 발령의 무효 확인 및 임금 차액을 청구했다. 임금 차액은 소송 중에 피고로부터 자료를 요청하여 피고가 산정한 액수를 그대로 원용했다. 2003년 5월 23일, 6월 27일, 7월 25일 세 번의 변론기일을 진행한 후 8월 22일 선고했다. 원고는 4차례의 전보 발령이 명예퇴직 불응에 대한 보복이나 사직을 유도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정당한 사유도 없고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아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선고 결과는 지연이자 부분을 연 25%에서 연 20%로 감축(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소정의 지연이자율이 2003년 6월 1일 자로 연 25%에서 연 20%로 감축되었다)한 것 이외에는 원고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서울지방법원 2003. 8. 22. 선고 2003가합16912 판결).

위 판결은 '사용자가 인력 구조 개선이라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명예퇴직제를 실시하면서 중점 권고 대상자를 선정하여 명예퇴직을 권고하되 이에 불응하는 직원에 대하여는 후선에 배치하는 전보 발령을 하는 것이 사용자의 인사재량권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더라도, 그것이 정당하기 위하여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하여 중점 권고 대상자가 선정되어야 하고, 근로자 측과 협의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할 것'이라는 법리를 전개했다.

그러고는 2차 명예퇴직제 실시 과정에서 중점 권고 대상자를 선정함에 있어 고연령자나 장기 근속자가 모두 생산성 제고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지장을 준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근로자의 근무 성적은 물론 부양 의무의 유무, 재산, 건강 상태, 재취업 가능성 등도 아울러 고려하여 그 대상자를 선정하였어야 함에도 1차 명예퇴직 시와는 달리 단순히 연령과 근속 기간만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하였으니, 그 대상자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고 공정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은행은 원고의 근무 실적이나 업무 추진 능력 등을 평가하여 그를 중점 권고 대상자로 선정하였다고 주장했으나, 결정적으로 근속 기간이 30년 이상이어서 대상자에 포함된 것이다.

중점 권고 대상자가 조합원 자격이 없는 1, 2, 3급 직원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은행으로서는 명예퇴직제를 실시함에 있어 1, 2, 3급 직원 전체 또는 각 급수에 해당하는 직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조직 또는 개인과 성실한 협의를 거쳐야 함에도 일면에서는 이해가 상반된다고 볼 수 있는 노동조합과 협의 절차만을 거쳤다. 은행과 노동조합은 명예퇴직의 대상자에 관하여 합의하였을 뿐 이에 불응할 경우 전보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는 점에 관해서까지 합의한 것도 아니었다.

희망퇴직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당초 중점 권고 대상자로 선정되지 아니하였던 다른 직원들도 명예퇴직을 신청한 결과 총 명예퇴직 인원이 320명에 달하는 등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당한 정도로 은행의 경영 상태가 호전되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명예퇴직 권유에 불응한 중점 권고 대상자를 후선에 배치할 업무상의 필요성에 비하여 원고가 입게 된 임금 손실 등 생활상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 은행은 2차 명예퇴직을 실시한 다음 2000년 7월 24일 4급 직원 90명을 3급으로 승진시켰고, 2000년도 상반기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총 255억 원의 특별격려금을 지급했다.

1심 판결에 대해 은행이 항소했으나 항소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04. 9. 2. 선고 2003나61216 판결). 은행은 상고를 제기했다가 2005년 3월 9일 상고를 취하함으로써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다(대법원 2004다53319). 이 판결은 은행권이 후선역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리 필요한 절차를 거치고 대상자 선정 기준에 연령이나 근속 기간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포함되도록 하였다. 또한 이 사건 승소로 인해 은행권의 후선역 발령 사건 몇 건을 수임했지만 승소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 한국씨티은행 대기 발령 사건

대기 발령 경위

▲ 씨티은행 광고 캡처
원고는 1984년 한미은행(2007년 8월부터 한국씨티은행으로 상호 변경)에 입사하여 2급 직원(지점장급)으로 근무하던 중인 2001년 1월 후선역인 섭외역으로 발령받았다. 은행은 2000년 12월 중순경 원고를 포함한 5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종용했고, 30여 명이 희망퇴직 했다. 은행은 희망퇴직에 불응한 원고를 포함한 18명과 4급 직원 2명 등 20명을 섭외역으로 발령했다.

은행은 섭외역에 대해 연간 수익 목표를 연봉의 2.5배로 하였는데, 원고의 2001년 연간 수익 목표는 1억9900만 원이었다. 원고의 2001년 1월부터 8월까지 실현 수익이 6000만 원, 연말 예상 수익이 8700만 원으로서 실현 진도율이 30.3%(정상 진도율 63%)였다. 은행은 2001년 8월 초경 섭외역으로 발령받은 18명을 주된 대상으로 추가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 결과 16명이 희망퇴직 했고 원고와 3급 직원 2명만 희망퇴직을 거부했다. 당시 은행의 인사팀장, 담당본부장, 개인영업지원팀장 등은 번갈아가며 원고를 불러내 희망퇴직을 종용했다. 인사팀장은 원고 등을 인사팀으로 출근하게 하여 본점 앞 대로변에서 수많은 행인들과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거나 안내장을 돌리도록 하기도 했다.

은행은 희망퇴직을 거부한 원고 등에 대해 2001년 9월 8일 자로 대기 발령(이하 '이 사건 대기 발령')했다. 원고 등은 대기 발령으로 인해 급여의 약 2분의 1이 감축되는 불이익을 당했다. 은행은 원고 등의 실현 진도율이 부진하다고 하여 대기 발령 사유를 규정한 인사 규정 제7조 제l항 제3호의 '근무 성적 불량'을 근거조항으로 제시했다. 은행은 원고가 대기 발령 상태에 있다는 사정을 들어 2001년도 원고에 대한 평정 등급을 'D'로 부여했다(원고의 2000년도 평정 등급은 'B'였다).

은행은 2006년 4월 이 사건 대기 발령을 해제하고 조사역으로 발령했다. 원고는 대기 발령 기간(2001년 9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동안 전체적으로 2억7000만 원가량의 급여 차액 손해를 입었다. 3급 직원(이하 갑, 甲)은 2003년 8월 은행을 희망퇴직하고, 자신에 대한 대기 발령이 무효임을 이유로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5년 3월 11일 "갑(甲)의 근무 실적, 근무 경력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 은행의 인사 규정에 따라 근무 성적 불량을 사유로 갑(甲)에 대하여 대기 발령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갑(甲)에 대한 대기 발령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고, 갑(甲)이 항소 및 상고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갑(甲)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소송을 수행했으며, 나중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원고의 소 제기와 수임 및 소송의 진행

원고는 대기 발령이 해제되고 1년 이상 조사역으로 근무한 후인 2007년 7월 대기 발령의 무효 확인과 급여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본인 명의로 소장을 제출한 후 2007년 10월경 앞에서 설명한 국민은행 대기 발령자의 소개를 받고 나를 찾아왔다. 원고 측은 이 사건 대기 발령의 무효 사유로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했다.

첫째, 원고가 인사 규정 소정의 대기 발령 사유인 '근무 성적 불량'에 해당하지 않는다. 섭외역에게 연간 수익 목표를 제시하였으므로 최소한 1년의 실적을 평가하여야 하는데, 8개월 정도의 실적만으로 평가한 것은 잘못이다. 외환 거래를 유치하여 연말까지 실현될 것으로 확정되어 있는 수입을 산입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8개월간의 실현 진도율 30.3%는 섭외역 발령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는 양호한 성적에 속한다.

둘째, 은행은 원고에 대해 '근무 성적 불량'으로 평가하면서 규정상의 근무 성적 평정에 의하지 않았다. 은행의 제 규정에 의하면 근무 성적 평정에 관하여 평정 요소와 배점 비율 및 절차와 방법에 관하여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고, 최종적으로 5등급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원고에 대한 이 사건 대기 발령은 오로지 월별 이익 목표 대비 실현 진도율이라는 하나의 요소만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한 것이므로 제반 규정에 어긋나 무효이다.

셋째, 원고는 은행에 입사한 이래 15회의 인사 고과에서 우수(A) 등급 9회, 보통(B) 등급 5회, 미흡(C) 등급 1회로 비교적 우수한 평정을 받아왔는데, 단지 8개월 만의 실적으로 대기 발령을 하는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서 무효이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대기 발령은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고유 권한에 속하므로 상당한 재량이 인정되는데, 원고의 영업 실적이 매우 부진하여 '근무 성적 불량'을 이유로 인사 규정에 따라 대기 발령한 것이므로 정당한 인사 발령이라고 주장했다. 피고 측은 원고와 같은 사유로 대기 발령을 받은 갑(甲)이 제기한 소송에서 갑(甲)의 청구가 기각되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이에 원고 측에서는 갑(甲)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갑(甲)은 섭외역으로 발령받기 전인 2000년도의 평가 등급이 'D'등급이었으나 원고는 'B'등급이었다. 갑(甲)은 섭외역으로 근무하였던 2001년 1월부터 2001년 8월까지의 실현 진도율이 약 4%에 불과했고 대기 발령 직전인 2001년 7월 및 8월에는 실적이 전혀 없었으나, 원고는 실현 진도율이 30.3%에 이르렀다.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대기 발령이 무효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급여 차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하는 점도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원고 측에서는 자료가 없어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으므로 은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산해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도 은행에 협조를 요청하여 은행이 년 단위로 차액을 계산해서 제출했다. 은행은 근무 평정 등급에 따라 직원 급여에 차등을 두었는데, 원고가 'D'등급에 해당함을 전제로 해서 급여를 계산했다. 원고의 경우 대기 발령 전년도인 2000년에 'B'등급을 받았고 전체 직원의 90% 이상이 'B'등급 이상을 받으므로 'B'등급을 기준으로 급여를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관련 규정이나 인사 자료 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은행에 대해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하여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은행 측은 증인도 신청하여 신문했으나, 원고 측은 갑(甲)의 진술서를 공증받아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판결 선고 및 확정

법원으로부터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7. 3. 선고 2007가합68379 판결: 재판장 판사 배광국, 판사 박재우, 판사 홍진영).

원고가 주장한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원고의 2001년 8월까지의 실현 진도율이 30.3%였다는 점만으로 그 근무 성적이 원고가 직무 수행을 계속 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정도로 불량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반면, 원고가 이 사건 대기 발령으로 입은 불이익은 매우 크므로 이 사건 대기 발령은 은행의 인사권의 남용으로서 무효라고 인정했다. 한편 급여 차액에 대해서는 원고가 18년 동안 A등급 10회, B등급 7회, C등급 1회의 근무 평정을 받았고 대기발령 전년도인 2000년도 평정 등급이 B등급인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대기 발령을 받지 않고 계속 근로하였을 경우 받을 수 있는 임금의 산정 기준이 되는 원고의 평정 등급은 B등급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급여 차액을 년 단위로 산정하고 그다음 해 1월 1일부터 연 5%, 그리고 판결 선고일 이후부터는 연 20%의 지연이자를 인정했다. 은행 측은 지연이자의 부담 때문인지 항소를 포기했다.

원고는 대기 발령을 받고 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5년 정도 대기 발령 상태를 견뎌냈고 대기 발령이 해제되고도 1년이 더 지난 시점에 비로소 소송을 제기했다. 대기 발령이 부당하다고 확신은 했지만 은행에 근무하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은행이 강제 집행을 정지하고 항소했더라면 확정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이에 이자가 더 붙기는 하겠지만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장시간 견뎌야 하는 원고의 가슴은 다 타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2001년 9월 대기 발령을 당하고 거의 7년 만에 받은 승소 판결이다.

추가 소송의 제기

위 사건 원고는 2008년 12월 29일 정년퇴직을 한 달 정도 앞두고(2009년 1월 31일 정년퇴직하였다) 2001년 근무 성적 평정 등급이 D등급으로 되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근무 성적 평정을 하지 않고 그 이후에는 최하위 등급인 4등급으로 평정을 받은 것을 시정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그로 인한 급여 손실분을 청구하는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근무 성적 평정 등급이 D등급 또는 4등급이라는 이유로 매년 인상해야 할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급여 및 퇴직금에서 손해를 보았던 것이다. 이에 위 대기 발령 사건에서도 2002년 이후 급여를 근무 성적 평정 등급이 B등급인 것을 전제로 하여 인정하였으므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근무 성적 평정 등급이 B등급이라는 확인을 구하고, 나아가 위 대기 발령 무효 확인 소송으로 급여를 지급받은 이후부터 정년퇴직할 때까지 기간 동안의 반영되지 못한 급여 인상분과 개인별 성과급을 청구했다.

소장 접수 단계에서는 청구액이 6800만 원 정도 되어 단독재판부에 배당되었으나(서울중앙지방법원 2008가단460197), 은행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청구 취지를 정리하니 청구액이 1억 원이 넘어가 합의재판부로 이송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9가합64807). 은행도 일정 부분 임금 인상분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했으나 개인별 성과급에 대해서는 강하게 다퉜다. 근무 성적 평정 등급을 정정하는 것은 원고가 다른 직장에 취업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사실상 다툴 이익이 거의 없었다. 재판부는 금액의 문제로 보고 일정 금액(70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강제 조정을 하였고, 원고는 개인별 성과급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을 이유로 이의 신청을 했다가 2010년 7월 28일경 이의 신청을 취하하여 강제 조정이 성립되었다. 권리를 찾고자 최선의 노력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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