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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안 좋아 해고?"

[현장] 한양대, 비정규직 미화원 33명 집단해고

2010년 새해는 기록적인 폭설로 시작했다. 첫 출근길에 나선 이들은 눈발을 맞으며 교통체증과 대중교통 연착에 시달렸고 기업들의 시무식이 직장인들의 비자발적인 '지각 출근'으로 연기될 정도였다. 이런 폭설과 강추위에 새해를 농성장에서 맞은 이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경기 안산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서 건물 청소부 63명 중 33명이 한꺼번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날아온 소식이었다. 이들은 학교가 지정한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으로 모두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이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면서 많게는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해 온 이들이지만 해고 통보를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규 용역업체 선정한 후 대량 해고…이유는 "인상이 안 좋아서"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는 지난해 12월 2곳의 용역업체와 맺었던 계약이 만료되자 신규 업체 3곳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기존에 근무하던 미화원 64명이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새 용역업체와 다시 계약을 해야 했다. 처음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많게는 3번까지 용역업체가 바뀌었지만 일자리를 떠난 적은 없기 때문이다.

▲ 경기 안산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 비정규직 미화원 33명의 해고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해 12월 22일 용역업체는 이들을 불러 면접을 실시한 후 30일 저녁부터 문자나 전화로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해지 사유를 묻는 질문에는 "인상이 좋지 않아서", "이력서를 성의 없게 작성해서", "나이가 너무 많아서"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청소 상태 불량 등 업무 태만을 문제 삼기도 했다. 하지만 해고자 중에는 근무 성적 우수로 학교로부터 표창을 받은 이도 있었다. 해고당한 이들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2009년 마지막 날 해고자 중 18명이 학교 본관에 모여 고용승계를 요구했다. 부총장에게 해고 사유를 따져 물으려던 이들은 학교 측이 본관 정문을 봉쇄하자 복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첫날 음식 반입 차단…온수 달라는 요구에 "화장실 물 쓰라"

5일 찾은 한양대 안산캠퍼스 본관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학생이나 학교 관계자들만이 경비원의 도움으로 드나들었다. 정문을 통제하는 학교 관계자는 학교 측 입장이 담긴 자료라며 문틈 사이로 짤막한 인쇄물 하나를 건넸다. 해고자들이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 한양대 본관 부총장실 앞 복도에서 일주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해고자 강돌남 씨는 사고를 당한 아들을 보살피는 가장이지만 해고로 살길이 막막해졌다. ⓒ프레시안
해고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꾸려진 대책위원회의 도움으로 만난 농성자 강둘남(55) 씨는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해 왔다. 그 동안 소속된 업체가 3번이나 바뀌었지만 고용에 걸림돌이 된 적은 없었다. 8년 전 사고를 당한 아들(29)이 아직도 거동이 불편해 강 씨가 생계를 도맡고 있지만 해고를 당해 살길이 막막해졌다.

강 씨에 따르면 해고자들이 농성을 시작하자 학교 측은 첫날 음식물 반입을 차단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커피나 컵라면에 필요한 온수를 달라는 요청에도 "화장실 물을 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농성장 밖의 해고자 한 명이 커피포트를 목도리 등에 매달아 창문으로 전달해 물을 끓일 수 있었다. 학교 측은 이후 음식과 물품 반입을 허용했지만 50~60세의 여성들이 엄동설한에 전기장판과 담요에 의지해 농성을 이어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강 씨는 "억울함" 때문에 농성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용역업체가 내세운 해고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노조 가입 전엔 월급 50만 원…연차 휴가도 없어"

한양대 미화원들은 지난 2004년 12월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에 가입했다. 10여 년 전 대학들이 정규직이었던 미화원들을 파견직으로 대체하는 '붐'이 일었고, 한양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50여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했고 연차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들은 노조 가입 이후 몇 차례의 농성과 협상을 통해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인 88만 원으로 끌어올렸고 연 15일의 휴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60세였던 정년을 65세로 늘렸고 건강 문제 등의 사유가 없으면 1년까지 정년을 늘릴 수 있는 협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해 말 학교에서 용역업체들을 새로 선정하면서 인원 감축을 예고했다. 경영상의 이유로 64명이었던 직원 수를 55명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이었다. 미화원들은 감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만큼 정년퇴직 등을 통한 자연 감축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33명이 해고당하고 24명이 새로 채용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해고자들은 학교 측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한 이들을 중심으로 해고자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해고자 고용승계 대책위의 조미란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 사무국장은 "해고자들 사이에서는 학교 측이 과거 집회나 농성 현상에서 채증한 사진으로 해고 대상자를 선정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새로 선정된 용역업체들은 이미 지역신문에 모집공고를 내고 새로 투입될 미화원들을 선발해 왔다"고 말했다.

강 씨 역시 "새로 고용된 사람들은 연차휴가가 10일로 줄어들고 대신 월급에 수당을 좀 더 얹어주는 조건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앞으로는 노조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뒷짐만…한 해고자 음독자살 시도하기도

해고자들은 농성을 시작한 이후 학교 및 용역업체 관계자들과 몇 차례 간담회를 가졌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인원 감축이 불가피 하다는 말에 농성자 중 정년에 가까워진 이들 4명이 자진해서 농성장에서 나가기도 했지만 고용 승계 여부에서는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해고자들이 용역업체와 해결할 상황이라고 팔짱을 끼고 있고, 용역업체 측은 채용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있어 탈락시켰으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될게 없다는 입장이다.

▲ 지난 3일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청소용 세정제를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간 최병을 씨는 거듭 얼울함을 호소했다. ⓒ프레시안
하지만 해고자들은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이 승계되던 관행을 학교가 깨뜨린 데에 분노하고 있다. 책임을 용역업체에 미루고 있지만 업체 선정 권한을 쥐고 있는 만큼 해고 사태의 책임 역시 학교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답답함'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일 총학생회 주관으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해고자 중 한 명인 최병을(62) 씨가 청소용 세정제를 마시고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중환자실에서 고비를 넘기고 5일 일반병실로 옮겨진 최 씨는 "약한 자들을 약하다고 짓밟은 학교에 너무나 속상함을 느낀다"며 거듭 억울함을 호소했다.

안산여성노동조합 등 시민단체와 한양대 안산캠퍼스 총학생회가 함께 모여 꾸린 대책위원회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가 해고 문제에 책임을 지고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5일에도 학교 본관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해고자들의 농성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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