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총장 몰아내기의 발단은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해 검찰이 전 국정원장과 전 서울 경찰청장을 기소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 때문에 대통령의 입장이 당당하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옹색해진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기소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게' 문제였다는 의견이다. 채동욱 검찰총장 한 사람을 몰아내기 위해서 청와대와 국정원은 그동안 '이른바 언론'에게 '하청'을 주기까지 하면서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떳떳해 질 수 있도록 국정원 재판에서의 '유불리'를 계산한 조치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물러난다"는 비장한 글을 남기고 사표를 던진 검사도 나왔다. 조직의 강한 지지와 신망을 받는 검찰총장을 치욕적인 방법으로 몰아내는 데 법무장관이 얼굴 마담으로 나선 사건이라 한없이 창피하다고 탄식하는 검사도 있다.
간단치 않은 사태다. 야비한 짓거리라 개탄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많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간절한 목소리들이다. 그야말로 국격을 염려하는 목소리들이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우리가 참으로 놓쳐서는 안 되는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는 사태도 있다.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다.
상영 중이던 영화가 외부의 '불법적인 힘'에 의해 끌어내려지는 사상 초유의 범법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당국은 열흘이 다 되도록 손을 놓고 있다. 더구나 그 범죄는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이 나라 헌법 제21조의 기능을 눈가림해버릴 목적으로 이뤄진 질 나쁜 '협박'범죄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이야기다. 영화는 해군 등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까지 이기고 무대에 올려진 것이었다.
강제로 상영이 중단돼야할 아무런 까닭이 없는 작품이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 심리에서 헌법에 보장돼 있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 알다시피 표현의 자유는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발표의 자유)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전달의 자유)'를 말한다. 종교의 자유·양심의 자유·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 정신적인 자유를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자유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영화관 측은 12일 내놓은 공식보도 자료를 통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의 경고와 협박이 있었다"며, "상영도중 퇴장하며 거칠게 항의하는 관객도 있어 관객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극장으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필자는 상영 중단조치 전날인 9월6일 천안함 프로젝트를 관람했다. 상영 도중 퇴장하거나 거칠게 항의하는 관객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갑'인 메가박스 영화관 측은 배급사와 '협의해' 상영을 중단했다는 것이고, '을'인 배급사는 그저 상영 중단을 '통보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영화는 이틀동안 다양성 영화 예매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전체 영화 예매율 순위 9~11위로 흥행성이 있어 보이던 상태였다.
메가박스 측은 예매 환불까지 감수하며 그 많은 영화관에서 일제히 상영 중단을 결행했다. 결단코 영화관 홀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리 만무하다. 누가 그러도록 시켰느냐, 그것이 알고 싶다. 사람들은 처음엔 극장 측이 주장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을, '천안함 사태를 북한 소행이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종북·좌빨'이라고 밀어붙이는 보수단체 소속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한 신문사가 20여개 보수단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본 결과는 달랐다.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일 해본적도 없고 이번에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는 것이다. 누가 됐건 대한민국, 이 대명천지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일제히 끌어내리는 것은 아무나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엄청나게 센 손길이 아니면 원천적으로 엄두도 낼 수 없다.
일부에서는 특정 성향의 단체가 아니라면 요즘 '일 많이 하는' 국정원 같은 데의 소행 아니겠느냐고도 말하지만, 누가 했건 범죄임에는 틀림없다. 엄청난 힘의 협박이 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형국이다.
요약컨대, 궁금한 것은 내란을 선동하는 등의 불법 메시지도 없는 내용의 합법적인 영화가 상영 도중에 일제히 끌려 내려와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게 이 나라의 치안 상태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범죄 행위가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왜 사직당국은 팔짱끼고 구경만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마땅히 강제 수사가 시작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혹시라도 정부나 정권차원의 비호를 받는 세력의 소행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있다. 반드시 규명하고 밝혀야 할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깔아뭉개는 그 같은 엄청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뒤탈'도 없다는 점을 놓고 '이건 나라(국가)도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사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에서도 나오지만,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제라며 국방부가 내놓은 어뢰의 잔해에는 참가리비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안함이 침몰한 서해에서는 살지 않고 동해에서 사는 해양생물로 알려져 있다. '1번'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것만으로도 북한제 어뢰라고 단정하기 곤란하고, 천안함을 때리며 '폭발한' 어뢰라고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도 없었다. 천안함 사태는 처음부터 그렇게 의혹이 많았다.
심각한 문제는 그런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희한하게도 천안함 사태가 우리 사회의 사상검증 잣대가 되어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천안함 침몰은 북한소행'이라는 발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조건 '종북·좌빨'로 낙인 찍혔다. '천안함-북한소행'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고는, 부인하면 즉석에서 '사상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으로 판정 받았다.
조용환 변호사가 국회의 청문회에서 '발표된 것만으로는 북한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가 '사상이상자'로 몰려 헌법재판관 임명동의를 받지 못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그렇게들 손을 들었다. 기막힌 이야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부와 정권이 국민들에게 '천안함 침몰은 북한소행'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신시켜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해 놓고는, "왜 확신하지 않느냐"고 트집을 잡아 특정인을 종북·좌빨로 지목하고, '임명동의 거부'라는 터무니없는 불이익을 떠안긴 게 헌법재판관 임명동의 부결사태였다. 천안함 프로젝트 사태도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신시키지 못해 생긴 결과물이다.
영화는 '천안함 사태는 북한의 소행이 아님'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 중 과학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지극히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일 뿐이다. 그렇게 제기된 의혹을 장막치고 감추려 덤빈 게 이번 상영 중단사태다. 말하자면 악의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빈틈없이 가리려 한 사태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도 이번 상영 중단 사태가 이만저만 엄중한 범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바로 봐야할 필요가 있다. 사태 초기에 외신들이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보도한 것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표현의 자유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유신과 군사독제 시대를 거치면서 '일상화 된' 표현의 자유 억압에 익숙해 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심각성에 면역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허나 사실은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으려 했다는 점에서, 이번 상영 중단 사태도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못지않게, 헌법기능을 소멸시키려한 '민주주의 핵심기능 도둑질'에 해당한다. 이 나라 형법 제91조는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은 '국헌문란(國憲紊亂)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본질을 따져 봐도, 장난감 권총을 들고 무얼 어쩌려했다는 사건보다 훨씬 심각한 범죄라고 법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 중단 범죄에 대한 강제수사는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누가 어느 기관이 왜 헌법기능을 유린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기필코 밝혀내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동안 우리가 왜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반드시 깨우쳐 줄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여러 사태에 이어 천안함 상영 중단사태와 채동욱 몰아내기를 감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 정권이 민주주의는 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이 분노와 배신감, 민주주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대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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