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근대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로 요동치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는 새로운 근대 국가를 낳았고, 근대국가는 자신을 정당화해 줄 사상적 지지대가 필요했다. 시대가 원한 사상은 사회계약론과 사유재산제에 기초한 고전적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의 원리를 집대성한 것은 로크였다. 존 로크는 1632년 영국 서머싯주 링턴에서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해 성직자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의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개업의가 된 그에게 운명적인 일이 일어난다. 로크는 애슐리 경이라는 인물의 간 종양 제거 수술을 통해 그의 생명을 살린다. 애슐리 경은 훗날의 섀프츠베리 백작 (Earl of Shaftesbury)으로 당대 영국정치의 풍운아였다. 이후 로크는 애슐리 경의 고문의사가 되어 격동의 정치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섀프츠베리는 찰스 2세의 동생이자 가톨릭 교도인 요크 공 제임스(James of Duke of York)를 왕위계승에서 배제하려던 배척 법안을 주도하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는 왕위에 오르기도 전부터 의회와 청교도들에 대한 적의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배척법안이 목표로 한 것은 제임스를 왕위계승 후보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을 제한하고 하원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섀프츠베리는 찰스 2세의 서자를 옹립하려는 정변을 시도한 후 네덜란드로 피신했다가 사망한다. 1688년 명예혁명이 성공하자, 네덜란드로부터 돌아온 로크는 이듬해에 자유주의의 고전이 되는 <통치론>을 출판한다.
부르주아적 시민을 억눌렀던 세습 왕권을 로크는 정조준한다. 왕위 계승을 통한 군주권력의 정통성을 부정하면 당연히 군주의 권력적 정당성도 약화된다. "아담은 아버지로서의 자연의 권리에 의해서든 신으로부터의 명시적인 수여에 의해서든, 흔히 주장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권위를 자식들에 대해서 또 그러한 지배권을 세계에 대해서 가지지 않는다. 설사 아담에게 그러한 권위나 지배권이 있었다고 해도, 그의 상속자들에게는 전혀 그것에 대한 권리가 없었다. 설사 그의 상속자들에게 그런 권리가 있었다 할지라도, 의문이 제기된 모든 경우에 대해서 누가 정당한 상속자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연법 또는 명시적인 신법(神法, law of God)이 없기 때문에 상속의 권리와 이에 따른 통치의 권리는 확실히 결정될 수 없을 것이다."(<통치론> 제1장 서론)
당대 대표적 왕권 옹호론자인 로버트 필머(Robert Filmer)는 자신의 저서 <족장론(Patriarcha)>에서 왕의 권위가 아담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아담이 권력을 자식에게 넘긴 것이 정당하듯 왕위 계승도 마찬가지로 정당하다는 주장이었다. 국왕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성서를 이용한 것이다. 로크는 왕권을 강화하려는 필머의 논지를 부수기 위해 권력의 아담 전승 이론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왕권의 계승을 부인하는 것이 매우 심심한 주장으로 들릴 수 있지만, 왕권 승계의 정당성은 봉건질서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였다. 사유재산에 대한 상속제도가 부정되면 자본주의가 흔들리게 되듯 왕위 계승의 정당성이 부정되면 봉건질서는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로크 연구자 존 던(John Dunn)은 로크 사상의 핵심을 '시민의 저항권'에 대한 옹호로 본다. 로크는 절대권력의 부당한 전제에 저항하는 것이 정당하고 주장한다. <통치론> 232절에 로크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정당한 권리 없이 무력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든지, 법에 근거함이 없이 무력을 행사하는 사회의 모든 성원과 마찬가지로, 그가 무력을 사용하는 상대방에게 전쟁상태를 도발하는 셈이다. 그 상태에서 이전의 모든 유대는 취소되며, 그 밖의 모든 권리가 중지되며,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침략자(절대군주-필자 주)에게 저항할 권리가 있다." 국왕이 적법한 법에 의하지 않으면 즉시 무력으로 저항할 것을 요구하는 혁명의 언어다.
로크의 '저항의 권리'에 앞서 이미 수많은 사람이 왕권에 항거하고 있었다. 폭군에 대한 저항은 맹자의 '역성혁명'에도 나오는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은 주장이다. 로크를 여타의 사상가들과 구별시키는 것은 '소유권' 개념으로부터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축해간 점에 있을 것이다. 로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자연의 이성은 인간이 일단 태어나면 자신의 보존에 대한 권리, 따라서 고기와 음료, 기타 자연이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제공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가르친다. 또한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그리고 노아와 그의 자손들에게 세계를 주신 것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는 계시에 따르면, 다윗왕이 하느님께서 "땅은 사람들에게 주셨다"(시편115:16)라고 말하는 것처럼 신이 그것을 인류에게 공유물로 준 것은 명백하다."(<통치론> 25절)
로크는 생존에 필요한 재화에 대한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권리라고 말하고 있다. 앞 문장의 '인류에게 공유물로 준 것'이란 표현이 의미하듯이 자연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공유해야 할 자산'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공유물을 최소화하고 개인적 소유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회다. 사유재산을 확립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대표적 옹호론자답게 로크는 공유물의 사유화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창안해낸다. 사유재산의 절대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한 핵심 사항이었다.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후 가장 먼저 시행한 대규모 사업이 토지조사령을 통한 사유재산의 확립이었다. 공유물을 사유화시키려면 엄청난 반발을 초래한다. 여기에는 강제력만이 아니라 사유화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필요하다.
로크는 어떤 논리를 동원해 공유물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하는가. 로크는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노동'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노동에 대한 로크의 설명을 보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그 사람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신체의 노동과 손의 작업은 당연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둔 것을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 그럼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서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며,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타인의 공통된 권리가 배제된다."(<통치론> 27절)
강정인·문지영 번역의 특징인 대명사의 과도한 사용이 눈에 거슬려 독해를 방해한다. 앞의 문장을 쉽게 풀이하자면, 이런 주장이다. 신은 자연적 재화를 모든 인간에게 공유물로 제공했다. 자연에 대한 권리는 모든 인간의 것이다. 그러나 개별적 인간이 노동을 하면 노동의 대상이 된 자연은 노동행위자의 사적 소유물이 된다. 인신(人身)이 특정인의 권리이듯 노동의 결과물도 노동을 행한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 로크는 노동을 통해 자연에 새로운 가치가 부가되면 자연은 공유물에서 노동을 투입한 자의 몫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연상시키는 불온한 문장이다. 노동에 대한 로크의 논설을 더 들어보자. "노동이야말로 그것들(사적 소유물-필자 주)과 공유물 간의 구별을 가져온다. 노동이 만물의 공통된 어머니인 자연보다 더 많은 무엇을 그것들(자연-필자 주)에 첨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그의 사적인 권리가 된다."(<통치론> 28절)
로크는 절대군주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을 역설한 철학자이면서 또한 자본주의 옹호 논리를 전개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철학연구자 김은희는 논문 '로크의 자유주의와 무산자 배제'(<철학연구> 114호)에서 로크 사상의 시대적 유용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17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인클로저 운동이 벌어지면서 토지 사유화에 대한 정당화 논리가 필요한 특수한 계층이 생겨났고 이들은 기득권을 가진 절대왕정에 맞설 필요가 있었다." 로크의 논리는 새롭게 떠오르는 유산자계급을 위한 맞춤 논리였던 것이다.
노동을 통한 사적 소유권이 수립되어도 만약 홉스적 자연상태가 이어진다면, 소유권은 유명무실해진다. 이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정치적 장치가 필요해진다. "어떠한 정치적 사회도 그 자체 내에 재산을 보존할 권력 그리고 이를 위해서 그 사회의 모든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존재하거나 존속할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구성원이 이 자연적 권리를 포기하고, 공동체가 제정한 법에 따라 모든 사건에 관해서 그 보호를 호소할 수 있는 공동체의 수중에 그 권력을 양도한 곳, 오직 그곳에서만 비로소 정치사회가 존재하게 된다."(<통치론> 87절) 로크는 소유권을 보존하기 위해 공동의 정치권력에 자신의 권리를 위임·신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사유화된 재산을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정치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개인들의 개별적 권력을 최고권력에게 양도할 것을 요구한다는데 있어서는 로크나 홉스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로크는 홉스적 절대군주인 리바이어던 체제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한다.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세계의 유일한 지배 형태로 간주되는 절대군주제가 실로 시민사회와 양립불가능하며 따라서 결코 시민적 지배 형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왜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 로크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시민사회의 목적은 자연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사건에 관해 재판관이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단을 피하고 치유하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은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침해를 받거나 분쟁이 일어나면 호소할 수 있는 권위를 확립하고 사회의 구성원은 모두 그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달성된다. 어떤 사람들이든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서 호소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지 못한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여전히 자연상태에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모든 절대군주는 그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연상태에 놓여있다."(<통치론> 90절) 자연상태를 벗어나야만 시민사회로 진입하게 되는데 절대군주는 자신의 신민과 공동의 재판관을 둘 수 없기에 자연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로크의 판단이다. 로크의 통찰은 왜 많은 독재자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지 말해준다.
로크는 권력의 양도가 정치공동체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권력의 양도는 어떻게 가능한가? 로크는 통치론 앞부분인 14절에서 이미 밝혀두고 있다. "하나의 정치체를 만들기로 서로 합의하는 종류의 협약만이 인간들 사이의 자연상태를 종료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밖의 다른 종류의 약속이나 협약을 맺는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자연상태에 있게 된다." 개별적 인간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치공동체에 권력을 위임하는 사회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은 국가를 형성하는 근거이면서 또한 복종 의무의 근거이기도 하다. 로크라면 사회계약론을 연상하지만 정작 로크에게 있어 사회계약론은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사상의 핵심적 개념으로 '소유권'을 상정한다는 사실은 소유권의 확정이 필요한 사회가 이미 도래했음을 뜻한다. 소유가 확대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토지는 재산의 대표적 재화이다. 전통시대에 토지는 대부분 공동체의 소유였다. 토지가 사적 소유로 이전되면서 자본주의가 진전되었다. 로크가 어떻게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정당화하는지 보자. 김남두 서울대 교수는 논문 '사유재산권과 삶의 평등한 기회'(<철학연구> 27호)에서 로크의 토지 사유화 논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개간되고 개량되고 경작되는 경우, 버려져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가치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토지소유권을 정당화하는 것이 소유에 의한 생산력의 증가와 그에 의한 가치의 창출인 만큼, 그것이 점유되고서도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산출되지 않고 버려진 채, 그 안에서 자연물들이 썩어 간다면 그것의 소유권리는 사라지고 타인의 소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로크는 자유주의자의 대부답게 자신만의 독창적 논리를 동원해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전의 논리를 전복시킨다.
로크가 노동을 말한 의도는 '노동 그 자체'라기보다는 노동을 통한 '가치의 창출'에 있었다. 노동의 가치를 말하던 로크는 어디로 갔는가? 로크의 논리에서 인간 노동의 신성성은 사라지고 만다. 김남두 교수는 로크의 '노동'을 이렇게 평한다. "로크에게 있어 노동이란 그 자체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기보다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그의 노동관은 노동이 인간의 자기 외화로서 인간 본질의 실현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 가치 있다고 보는 헤겔이나 맑스의 입장과는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토지의 사유화에 대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전제군주에 대한 저항권을 역설하는 계몽사상의 대표자 로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게다가 토지 사유화를 정당화하는 핵심논리가 '가치 창출'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로크의 사상이 사상적 자유주의 너머 다른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재산의 한계에 대한 로크의 생각은 더욱 파격적이다. 로크는 사유재산의 한계에 대해서 31절에 "자신의 노동에 의해 자신의 소유로 확정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견해를 밝히지만, 이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를 넘어서는 욕망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그가 정당한 소유의 한계를 초과하여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는 그가 가진 소유물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상해서 무익한 것이 되었는가에 달려 있다."(<통치론> 46절) 화폐는 절대 상하지 않는다. 화폐와 앞의 구절이 연결되면서 무제한적 사적소유가 정당화된다. 맥퍼슨(C B Macpherson)은 로크를 자본주의의 이론적 대변자로 본다. 로크가 심화시킨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생각은 서구 계급국가의 토대가 된다. 맥퍼슨은 현대 사회가 모든 계급의 대중적 평등을 보장하는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산자를 배제하는 로크적 '소유기반 자유주의'는 끊임없이 민주주의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고 로크 사상을 비판한다.
로크는 여러 연구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정치사상사 연구자인 세이빈(Sabine)은 로크를 온건한 입헌 자유주의자로, 로크연구자인 존 던(John Dunn)은 기독교에 기초해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이론화한 사상가로, 마르크스주의자인 맥퍼슨(Macpherson)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로, 애쉬크래프트(Ashcraft)는 사회변혁 이론가로 로크를 해석한다. 그런데 최근의 로크 연구의 움직임은 이전 연구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온건한 자유주의자든, 자본주의옹호론자든, 혁명이론가든 모두 일국적 관점 넓게는 유럽적 관점에서 로크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로크를 식민주의와의 연결 속에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입헌 자유주의 사상가로 보든, 정치권력의 정당화에 골몰한 이론가로 보든, 자본주의 옹호론자로 보든, 변혁이론가로 보든 이 모두는 초기 자본주의의 왕성한 확장 욕구와 연결된다. 자본주의는 재산을 축적하고 교양을 쌓고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독자적인 부르주아계급을 만들어낸다. 이 계급은 왕권신수설을 배경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로부터의 자유를 바란다. 전제군주로부터는 부르주아의 재산을 보장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舊) 기득권에 반대하는 이들의 사상적 기조는 당연히 자유주의적이었다. 자본가 부르주아계급의 욕망은 부의 격차가 없는 전통사회를 흔들게 된다. 흔들리는 사회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새롭게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부르주아계급의 이해는 자본주의의 순항에 있으므로 당연히 친자본주의적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여러 학자가 바라보는 로크의 서로 다른 면은 결국 분절된 이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모든 운동에너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최근의 로크 연구는 인간의 원초적 평등과 자유를 주장한 로크는 역설적이게도 아메리카 식민주의에 깊숙이 개입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로크의 사상에는 식민주의와 유럽 중심주의가 깊게 드리우고 있다. 실제적으로도 로크는 캐롤라이나 지역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식민지 관련 기업을 감독하는 정부 기관에도 관여했다.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논문 '로크 사상의 현대적 재조명'(<한국정치학회보> 제32집 제3호)에서 기존의 로크 해석을 이렇게 말한다. "로크의 자연상태 및 재산권에 관한 이론이 주로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및 그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영국 이주민들 간의 문제를 사상(捨象)함으로써 로크 이론이 지닌 복합적인 함의를 적절히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제임스 털리(James Tully)는 아메리카 인디언으로부터 국가성과 재산권을 박탈하는 방향으로 이론을 구축했다며 로크를 비판한다. 로크에 대한 털리의 비판을 살펴보자. "로크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관습적인 토지사용이 재산의 정당한 유형이 될 수 없도록 재산을 정의한다. (중략) 그 결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정치구성체와 재산은 정치와 재산에 대한 유럽식 개념의 주권에 종속되게 된다."(강정인의 논문에서 재인용)
땅에 노동을 투여하는 자만이 땅의 진정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는 로크의 언명은 인구밀도가 상당했던 영국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을 생각할 때 진짜 함의가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울타리를 치는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토지가 적게 남아있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통치론> 33절) 울타리 치기로 소유권을 확정하는 일, 즉 인클로저 운동이 여러 농민 반란과 소요를 촉발했던 역사적 사실을 고려한다면 로크의 이런 한가한 소리는 인구 과소지역인 아메리카대륙을 염두에 두었음이 틀림없다.
로크는 심지어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하는 행위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신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공유물로 주었다. 그러나 신은 세계를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이익과 최대한의 편익을 위해서 주었으므로, 그것이 항상 공유로 그리고 개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신의 의도라고 상정할 수는 없다."(<통치론> 34절) 털리(Tully)에 따르면, 식민지인들은 로크의 논리를 차용하여 아메리카 땅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
로크의 "태초에 모든 세계는 아메리카와 같았다"라는 언명(言明)은 로크가 아메리카 대륙을 원초적 자연상태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크는 아메리카 숲속에서 마주한 스위스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서로에 대해 자연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아메리카가 자연상태라는 로크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권리소멸로 귀결된다. 대신 유럽 이주민의 노동에 의한 소유권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더 많은 편익을 위해서 노는 땅은 허용되지 않기에 원주민이 수천 년간 살아온 삶의 토대는 단지 '빈 땅'이 되어버린다. 강정인 교수는 로크의 식민주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털리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해안가에 살던 일부 인디언들은 촌락을 이루며 농업에 종사했는데, 유럽인들이 그 인디언들의 농지를 탐내서 빼앗고자 했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이유가 인디언들은 토지를 적절한 방식으로 경작하지 않는다는 논변이었다고 한다." 노동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그럴싸한 논리가 구체적 맥락 속에서는 얼마나 반인간적인 주장이 될 수도 있는지,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강정인 교수의 로크에 대한 최종 평가다. "로크의 재산권 이론은 일국 차원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재산권을 정당화하는 데 봉사했다기보다는,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자본의 원시적 축적 과정의 일환으로 유럽 제국주의가 해외 식민지를 정복하고 약탈한 사실을 정당화하는 데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유재산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의 '절대성'이 식민지 민중들에 대한 약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논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유재산의 절대성은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많은 경우 사유재산의 절대성은 약탈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혹시 '약탈'을 수백 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서나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세계적 석학이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약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단언한다. 지금의 무대는 아메리카 땅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도시공간이다. 모든 사람의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를 강남아파트 소유자만 흡수하는 기괴한 모습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공유재가 되어 마땅한 가치의 사유화는 약탈에 불과하다. 수백 년 전 아메리카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약탈은 '사유재산의 절대성'이란 신화로 정당화된다. 신성불가침의 이 신화는 아메리카를 유린, 약탈한 영국 식민주의를 지지하던 철학자 로크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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