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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한국일보> 만드는 '알바비'는 지급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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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한국일보> 만드는 '알바비'는 지급되나?

[기고] '짝퉁' <한국일보>가 쌓여가는만큼 모멸감 느낀다

솔직히 말해, 내게는 다른 신문보다 특별히 <한국일보>에 더 애착을 가질 만한 사연도 없고 남달리 애틋한 개인적 소회도 없다. 그런데도 <한국일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엽기적인' 사태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을 때, 뺨이라도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모멸을 경험해야 했다.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몰상식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질 수 있는 건지, 참담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물론 나도 안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났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돈을 가진 자들이 저지르는 횡포 또한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일이 썩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슨 세상이 뒤집어질 엄청난 일이라도 벌어진 양 호들갑스럽게 새삼스러운 경악과 분노를 표현할 일인가 의아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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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둘러 비유하자면, 예컨대 정보기관이 지질한 댓글질로 선거에 개입한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실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제도적 절차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훨씬 모멸스럽고 참담한 일이다. 전자는 그저 권력욕에 눈이 먼 자들의 일탈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후자는 권력의 향방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갑남을녀에게도 이 세상이 통째로 최소한의 상식 테두리조차 유지할 아무 힘도 없는 허방에 불과하다는 절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시 직설적으로 까발리자면,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사 돈을 몰래 빼돌렸다는 사실 자체도 물론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에 '테러'라고밖에는 일컬을 길이 없는 만행으로 대응한 근거없는 배짱이고,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법원의 결정조차 보란 듯이 조롱하고 있는 초법적 오만함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범죄자'가 아닌 그저 '사회적 갈등의 일방 당사자'쯤으로만 여겨진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장재구 회장을 비난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나아가 나는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일보>를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 이 세상은 과연 정상인가.

더구나 <한국일보>는 그저 불운하게도 욕심 사납고 오만한 사업주의 몰상식한 폭력에 유린당하고 있을 뿐인 일개 기업이 아니라, 누구라도 바로 그런 일을 당할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장치 중의 하나인 '언론'이다. 평소 <한국일보>의 논조에 동의했건 그렇지 않건, <한국일보>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건 아니건, 민주 사회의 시민이라면 마땅히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사업주의 비리를 고발했다고 기자의 펜대를 꺾어버리는 일이 단 하루라도 용인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은가. 그리고 <한국일보>의 파행은 하루이틀이 아니라 벌써 40일을 넘었다. 나는 뻔뻔하게도 <한국일보>의 제호를 단 '짝퉁'이 쌓여가는 만큼 모멸스럽고, 편집국이 열리고도 신문을 만들지 못해 사법부마저 조롱당하는 날짜가 쌓여가는 만큼 참담하다.


▲ 200억원대의 배임 혐의로 고발된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1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며 '짝퉁 <한국일보>'를 읽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2013.07.17 .ⓒ뉴시스

짝퉁 <한국일보> 만드는 '알바비'는 제대로 지급되나?

돌이켜보면, 내가 <한국일보>와 인연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출판밥을 먹고 있는 처지에서 <한국일보>는 늘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한국출판문화상'은, 출판의 공공적 토대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시장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출판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가느다란 젖줄로서 구실이 적지 않았다. 과람하게도 나는 지난해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의 예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 이 상의 권위를 신뢰하고 존중하던 터라, 대가와 상관없이 영광으로 여길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순진한 짝사랑이었다. 심사가 끝나 수상자가 발표돼도, 심지어 시상식도 끝나고도, 심사비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건 내가 돈을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몇 십만 원의 심사비조차 지급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수백만 원의 상금은 제대로 지급되는지가 더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이 상에는 버젓한 후원사도 있었기에, 나는 속도 모르고 후원사의 무책임만 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후원사에서 이미 입금을 했는데도 주관사인 <한국일보>에서 그 돈을 돌려쓰느라 그리 됐다는 것이다. 비록 심사가 있었던 날로부터 여섯 달 가까이나 지나서 심사비가 입금되긴 했으니, 목적이 정해진 후원금을 전용한 것은 명백한 횡령 행위다. 훔친 돈을 나중에 돌려준다고 그 죄가 없어지진 않는다. 하기야 몇 백억 원의 횡령 혐의가 폭로된 마당에 고작(?) 몇 천만 원을 보태는 게 부질없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이 기억을 굳이 끄집어낸 것은, 멀쩡한 자체 예산이 확보된 행사도 이럴진대, 신문 지면에 글을 쓰는 외부 필진들의 원고료인들 제때 지급되었을까에 생각이 미쳐서다. 원고료에 밥줄을 대고 있었을 이들의 고통은 오죽했겠으며, 좋은 지면을 위해 원고 청탁을 한 것 말고는 아무 죄도 없는 담당 기자의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컸을까. 동업자로서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서 '짝퉁'을 만들고 있다는 '알바'들에게 '불법적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질타에 덧붙여졌다는 "알바비나 떼먹히지 말고 챙겨 받으시라"는 충고(?)도, 그저 재치있는 농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생계에 쫓겨 신문이라는 사회의 공기에 대한 일말의 자의식에조차 눈감을 수밖에 없는 '알바'들의 알량한 임금마저도 체불되는 딱한 코미디만큼은 정말이지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라도 '짝퉁'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한국일보>의 지면은 마땅히 기자들에게 되돌려져야 하고, 법질서를 우습게 아는 범죄자는 엄하게 처벌되어야 하며, 빼돌린 돈은 고스란히 회사에 환수되어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최소한의 상식이나마 기대할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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