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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옹위'와 '이른바 언론'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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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옹위'와 '이른바 언론'의 비극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9>"분탕질 감싸는 건 더 나쁜 분탕질"

대통령 자리만은 결단코 야당 측에 넘겨줄 수도 빼앗길 수도 없다고 본 듯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자리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신념'에 불타고 있었던 듯하다. 바로 그게, 다른 공직자도 아닌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정보원장과 수도 서울 경찰청장 등 '도둑 잡는 책임자'들과 저질 정치꾼들이 판을 벌인 '민주주의 도둑질'의 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공무원인 국정원장은 조직적인 여론조작 시스템을 갖추고는 대통령 선거개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부분적으로 들통이 나 수사가 시작되자, 서울 경찰청장은 자기 부하들의 수사 활동을 계획적으로 방해했다. 나라와 민주주의 잘 지키라고 한푼 두푼 백성들이 낸 불쌍한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자들이 그랬다.

후에 밝혀지지만, 국가정보원의 공무원들이 익명으로 인터넷에 올린 야당 비방 댓글들을 보면, 고도의 심리전 훈련을 거친 솜씨들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이런 것도 있다. <홍어종자 전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얼핏 보기에는 박근혜 후보에게 손해가 될 듯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전라도에는 박 후보 지지표가 별로 없는데다, 특정지역 사람들에게는 통쾌감을 안겨주면서 결속시키는 효과가 결코 적지 않다는 분석이 있었다고 했다.

나라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야당이 정부기관인 국가정보원까지 끌어들여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고 호통을 쳤다. 댓글을 단 증거도 없고, 댓글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떠오른 여직원의 문제도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무렵 박근혜 후보의 선거대책 총괄 본부장은 어디서 어떻게 빼냈는지 국가 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선거 유세장에서 기세 좋게 낭독하고 다녔다. '야당은 NLL을 포기한 정당'이라는 터무니없는 비방을 끼워 넣은 내용이었다. 역시 대통령 자리는 내놓기에 너무나 아까운 자리였던 것 같다. 그 자리가 이 나라 최고의 이권(利權)이고, 특정세력의 꿀맛 같은 배타적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이명박 씨가 거듭거듭 확인해둔 상태였다.
▲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부산지역 합동연설회에 찬조연설자로 나선 김무성 의원.(오른쪽) ⓒ연합뉴스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불법행위가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계량화(計量化)할 수는 없다. 지금 와서 그런 불법이 끼어든 선거였으므로, 선거 자체나 당선이 무효라고 말할 수도 물론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이 명경지수(明鏡止水)같은 맑은 선거였고 때문에 전혀 영향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어떻게 싸우고 피 흘려 지켜낸 민주주의인데, 다른 기관도 아닌 국정원과 경찰이 머리에 테를 매고 덤벼서 그렇게 개판을 만들고 분탕(焚蕩)질을 쳤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공정한 선거다. 정부기관이 그 민주주의와 공정선거의 멱을 따 쓰레기통에 쑤셔 박고 마구 짓밟았다. 그 대목이 문제였다. 악행(惡行) 중의 악행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나왔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분탕질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직접 관련도 없는 '수상한' 사태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대선에서 공무원들 특히 국정원과 경찰의 조직적인 불법행위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신임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고개 바로 들기' 힘든 사태가 올 수 있다는 범정부적인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 '결사옹위(決死擁衛)'하자 한 듯하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분탕질 덮기' 작업은 그래서 시작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대선개입-수사방해-국정원장 구속영장 청구 불발-불구속 기소-총력적인 '대선불법 개입' 감싸기 체제 가동-신임 국정원장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NLL 포기발언' 강조-대통령의 '감싸기' 발언-선관위, 야당의 '대선 개입 비판 홍보' 제지-('NLL 포기 주장' 부메랑으로 회귀)-대화록 공개 여야 결의-국가기록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증발>의 순서로 사태는 이어졌다.
(MB의 4대강 감사 결과 발표와 전두환 씨 압수 수색도 '관심 유도용'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여기서는 제외했다) 대화록 증발은 어느 쪽 소행인지 드러나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수순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총 감독(PD)이 장막 뒤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근래 들어 이 나라에서는 여당이 야당과 대결하면서, 입장이 곤궁해지면 반드시 들고 나오는 카드가 있다. 노루 뼈다귀처럼 거듭거듭 우려먹는 게 노무현 씨의 '남북정상회담 NLL 포기발언'이다.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에서도 사태를 덮고 감싸기 위해 정부 여당 측은 그 쪽에 불을 지폈다. 남북 대치라는 특수 상황에서 노무현 씨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에게 "이 나라 '영토선'인 NLL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게 그 줄거리다.

'김대중·노무현의 좌파 정부'에 대한 의심 쌓기에 길들여진 이른바 보수세력과 특정 계층 사람들은 'NLL 포기'니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이야기만 나와도 진위(眞僞)를 따지기 전에 바로 그냥 열을 올린다. 그러도록 그들은 훈련이 되어 있고 여권은 요즘도 그런 구도를 부추기며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불법 대선 개입 스캔들로부터 대통령을 안전권으로 시급하게 피신 시켜야 하는 절박한 명제까지 놓여있는 상태였다.

국민들은 다 안다. 새 정권 들어 임명된 국정원장이 총대를 멨다.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던 국가 기밀인 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 직원들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독자적인 판단으로' 비밀분류를 조정해 공개했다. 원천적으로 그럴 수 없는 일인데도 그랬다. 국가정보원은 대통령의 직속기관이다. 대통령의 허가나 결재 절차를 거쳐 그런 일이 이뤄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장은 자기 판단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그 대화록에 따르면 노무현 씨가 NLL을 포기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강변했다. 대화록을 열람했다는 여당의원들은 노무현 씨가 그렇게 말한 것으로 '짜깁기'까지 했다. 그러나 NLL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노무현 씨의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정일이 김계관으로 하여금 노무현 씨에게 특정사안을 보고하게 한 뒤, 보고를 받은 노 씨가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내용을, 노무현 씨가 김정일에게 직접 (무언가)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한다고 말한 것으로 둔갑 시켰다. 바로 이 무렵 박근혜 대통령도 거들고 나섰다.

NLL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킨 생명선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아니라고 말한 사람도, 그렇게 말할 사람도 없다. 대통령은 그 생명선을 노무현 씨가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큰 잘못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였다. 대통령이 대화록 내용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고는 볼 수없는 시점이었다. 전 국민에게 육성까지 전달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뜬금없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당 의원들도 대통령도 대화록을 자세히 읽어보지(알아보지) 않았거나, 읽어 보고도 그리 말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선거 때 입후보 등록서류에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증을 첨부토록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간의 이야기가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급한 마음에 입이 먼저 나간 듯하다. 잘못이었다. 그만큼 '대통령 보호'가 절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선개입이라는 분탕질을 감싸고 가려 주려는 '이른바 언론'의 피나는 노력은 누가 봐도 눈물겨웠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들과 그 수많은 방송들이 여권의 당정청과 합세해 총력전을 펼쳤다. 나쁜 것을 나쁘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수많은 지성인들과 시민단체·학생들의 대선개입 규탄 성명이나 '촛불'도 도대체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도 아닌 NLL 포기발언 쪽으로 죽기 살기로 여론을 몰아갔다.

제 역할 못하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라고 불릴 뿐이다. 따라서 적합한 이름표를 붙여줄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 그들을 그냥 언론이 아니라 '이른바 언론'으로 부르고자 한다. 한마디로 '이른바 언론'들의 작태는 국정원이나 경찰의 분탕질 못지않은 분탕질이었다. '이른바 언론'외에도 최근 분탕질을 덮어주고 감싸려 한 모든 기관의 행태가 '더 나쁜' 분탕질이다.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이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대단히 두려워하는 듯하다. 국민 앞에 직접 나서려 하지 않는다. 잘못된 일이라 싶으면 솔직하게 나서서 직접 사과하는 게 옳다. 그걸 피한다. 윤창중 씨 사건 때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국민 사과문을 읽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바로 나서서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잘잘못을 철저히 가리도록 조치해야했다.

거의 한 평생을 한눈 파는데 일로매진해온 국정원에 대해서도 "국정원이 알아서 자체 개혁하라"할 일이 아니었다. 그게 되는 일이 아니다. 국가기밀인 대화록을 공개한 국정원장을 바로 해임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면서 새로운 국정원의 모습을 그려 내놓아야 했다. 그런 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구름위에서 간접화법으로 선문답을 할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권위주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정희 씨는 국민들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한 적이 없다. '만전(萬全)당부'와 '유시(諭示)'가 주류를 이뤘다. 특히 박정희 씨와 최규하 씨 시절엔 유달리 만전당부가 많았다. 자주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네가 알아서 부작용 안 나게 잘 처리하고 내게까지 불편함 오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였다. 대통령에게는 뒤에서도 무서워서 찍소리 못하는 기자들이 총리에겐 안심하고 '최만전 총리'라는 별명을 붙여주던 시절이었다.

국경일 같은 때는 '경축사'나 '치사'대신 반드시 '대통령 각하 유시'라고 적힌 식순이 나붙었다. 유시란 원래 옥황상제나 임금 쯤 되는 '지존(至尊)'이 하계(下界) 백성들에게 내리는 옥음(玉音) 정도를 말한다. 구름위에서 만전을 기하라고 유시를 내리거나 선문답을 하거나 눈짓을 보내면 다 되었다. 잘못했다고 사과를 할 이유는 존재할 수도 없었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국정원 사건이 터진 후 당정청이 나라보다, 국민이나 민생보다, 민주주의보다도, 온통 개인에 대한 '결사옹위' 전선 구축에 우선 매달리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불안하다.
아버지나 자신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했다하여 국격(國格)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에 '한국에서는 정보기관이 누설자(In South Korea, Spy Agency Is The Leaker)'라는 기사가 실렸을 무렵에도 국격을 걱정해야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다 덮더라도 국정원과 경찰 등 정부기관의 선거 개입만은 반드시 도마 위에 올려야 할 때다. 선거 개입을 통한 민주주의 도둑질이야 말로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야당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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