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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원유 지원을 제안한다

[창비 주간 논평] "북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한미의 '진심'도 드러나는 순간"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북은 과연 비핵화를 이룰 것인가?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뿐 아니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공약한 한반도 비핵화를 실행할 것인가? 합의가 파격적이었던 것만큼 그 실행에 대한 기대도 높다. 동시에 과연 이 합의가 이뤄질지 우려도 깊다. 특히 몇달째 교착상태를 보이는 북미협상이 남북관계마저 파탄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닌지, 한반도에 조용한 불안감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북의 '진심'이 드러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는 이행될까

하지만 북의 '진심'은 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이 '냉전의 외로운 섬'이라는 것은 북이 우주의 외로운 존재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한국, 또 미국과 전쟁상태라는 오래된 현재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의 행동과 발언은 상당 부분 한국과 미국의 행동과 발언에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는 휴전선을 두고 작용과 반작용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의 핵무장이 상당 부분 한국 및 미국과의 '주고받음' 속에서 나온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북의 비핵화도 상당 부분은 한국과 미국에 달려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 북의 '진심'이 드러날 진실의 순간은 한국과 미국의 '진심'이 드러날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과연 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할 것인가?

16일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들이 지켜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 확신의 근거는 알 방도가 없고, 앞으로 '약속들'이 지켜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동은 모두가 알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 송환 중 그 어느 하나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6개월간 합의 내용을 이행하려는 초보적인 조치들도 없었는데 앞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 비질런트 에이스를 유예한 것은 매우 중요한 조치로서 그 중요성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비록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과의 후속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이를 지켰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이 선언이 지켜지는 동안 북도 미국과 후속협상을 계속했다는 것이고, 작년 11월 이후 핵·미사일 실험 동결을 계속 지켰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으로 양자 사이에 '동결 대 동결'이 지켜지고 있고, 이것이 북미뿐만 아니라 남북 협상이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해주었다는 점은 모두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2019년을 전망할 때 특히 그러하다.

현 상황은 교착국면이 아니라 위기국면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미국은 합의를 이행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보일 수 있는 조치들을 계속해왔다. 양국정상이 '새로운 관계의 수립'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표1>이 보여주는 것같이 새로운 제재조치를 추가하며 북과의 적대관계를 오히려 강화했다. '평화체제의 구축'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북은 미국의 제재조치를 적대정책의 일환으로 인식한다. 전쟁상태에 있는 적국에 취하는 조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을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적대정책을 유지 또는 심지어 강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구속된 미국시민 석방, 미군 유해 반환, 핵실험장 폐쇄 등 전향적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했지만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는 대신 오히려 뒤통수를 쳤다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핵시설 리스트를 요구하고 북의 완전한 비핵화만을 요구하는 데 대한 의심과 불신이 머리를 들 수도 있다. 특히 미사일 시험장과 핵시설 폐기 같은 북의 조치에 상응해 미국이 취할 조치는 제시하지 않은 채 제재만을 강화하는 상황은 북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은 '교착국면'이라기보다 폭발 직전의 위기국면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미국은 북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북은 미국이 새로운관계 수립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불만을 공식화할 수 있다. 불만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이 행동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도 있는 고비인 것이다. 협상과 협상, 이행과 이행이 꼬리를 무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냐, 불만과 파기가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 것이냐를 결정할 고비이다. 그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 선순환의 가능성이 1%라도 더 커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시점이다. 문재인정부가 진정한 의미에서 운전자로 나서서 운전대를 확실히 선순환으로 틀어야 할 국면인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가 나서서 선순환으로 한반도라는 자동차를 밀어야 할 지점이다.

제재위 승인 없이도 대북 원유 지원은 가능하다

그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역설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있다. 2017년 12월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S/RES/2397'는 북에 대한 제재를 최대한 강화하여 원유 수출을 금지하고 있지만 예외 조치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북한(DPRK) 국민의 생활 목적이고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관련되지 않은" 원유는 제재위원회가 사전 승인을 할 필요가 없도록 되어 있다. 또 이 결의가 채택된 시점부터 12개월의 기간에는 원유 4백만 배럴 또는 52만 5천 톤, 정제유 50만 배럴(약 5만9000~7만4600톤)을 초과하지 않는 한 원유 금수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아래 <표2>에서 보듯이 현재 1718위원회(대북제재위원회)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10월 말까지 보고된 정제유 수출량은 약 2만9864톤으로서 허용된 정제유량의 40~50.6%에 불과하다. 1718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이 한국이 대북 원유/정제유 지원 내지 수출을 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올겨울 북 주민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난방용 중유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생존을 위한 농기구용 휘발유를 보내는 것은? 개성공단 시설과 설비의 동파방지를 위해 공단업자들이 연료를 보낸다면 막을 근거도 없고 명분은 더더욱 없다. 이산가족 상봉 시설의 난방과 전기를 위한 중유와 가솔린 공급은 인도적 명분도 있다. 이참에 아예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그 비용을 민수용 정제유로 보내면 '대량 현금'의 용처를 둔 논란도 원천봉쇄할 수 있다. 문 정부가 나서서 제네바합의의 남북 버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북은 영변 원자로를 동결하고, 한국은 원자로 동결로 발생하는 전력 감산을 보충할 화력발전용 중유를 보내는 것이다. 이 어느 것도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물론 미국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특히 중유를 보내 원자로를 동결할 수 있다면 미국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과 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화해와 협력을 늘리고 긴장완화 조치를 취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차분하게 구축될 것이다. '정상회담'과 '선언'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조치들을 하나씩 실천하여 실질적인 종전상태를 이룩하고 평화체제를 안에서부터 만들어 나간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밖에 없고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망을 확고히 가지고 기존 남북/북미 합의에 따라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나서는 것이다. 바야흐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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