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제2 소위원회로 넘겨진 상태다. 필자가 상담을 통해 만나본 많은 노동자는 개정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자 3회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글을 싣는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직장 내 괴롭힘 OUT ①] 회사 '재량'으로 쓰레기 치우는 10년차 마케팅 전문가)
2018년 9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는 전체회의를 통하여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규정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2소위원회로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법사위가 개정안을 당분간은 통과시킬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정안의 통과가 늦어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개념의 부재현상이 지속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관계 법률의 경우 제1조에 목적, 제2조에 정의 규정이 뒤따른다.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근로기준법 제2조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를 정의하고, 노조법 제2조는 노동조합과 노동쟁의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으며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는 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하여 '직장 내외에서 직장 내의 지위나 인간관계 등의 직장 내 우월성을 이용하여 업무의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일체의 행위'라 정의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 개념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다.
법적 정의가 없다는 것은 적용할 수 있는 직접적인 법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면서 발생한 괴롭힘이지만 노동관계 법률이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결국 괴롭힘의 피해자들은 괴롭힘 행위가 헌법상 규정된 '존엄성'이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수밖에 없다. 절도죄를 규율하는 형법이 없어 헌법상 재산권 규정을 적용하는 꼴이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지 법사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매우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우선 이완영 의원(자유한국당)의 발언을 살펴보자.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기준법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인데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매우 불명확합니다.”, “도대체 어떤 괴롭힘이냐? 정서적인 것이냐? 신체적인 것이냐, 정신적인 것이냐? 이거 매우 주관적인 얘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면 다 괴롭힘이에요. 성희롱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불쾌했다면 성희롱으로 인정되는 겁니다." (법사위 회의록 中)
노동부 출신으로 자유한국당의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완영 의원의 주장치고는 조금 실망스러운 발언이다. 노동관계의 특성상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법적 정의에는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 개념을 담을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법도 마찬가지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을 '성적굴욕감 도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시를 두어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포괄적 규정을 통한 노동자 보호가 효과적이며 '성희롱'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법의 집행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적도 없었다. 설령 법적 정의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뒷받침할 수 있으며 입법 취지와 목적에 따라 충분히 법 해석이 가능하다.
국내법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법적 정의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노동법전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어떤 근로자도 자신의 권리 및 존엄성을 훼손당하거나, 육체 또는 정신 건강을 훼손당하거나 또는 자신의 직업적 미래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는 근무조건의 악화를 목적으로 하거나 또는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반복적인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들을 겪어서는 아니 된다." (노동법전 L.1152-1조)
프랑스 노동법전이 우리 개정안을 비교한다 하여도 문제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필자가 상담을 통해 만나본 노동자들의 사례에 적용하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징계와 복직을 반복하며 노동자를 괴롭혔다면 업무의 적정 범위(사용자의 징계권)를 벗어나 정신적 고통(징계로 인한 고통)을 가하거나 업무 환경(업무장소와 내용)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해당하어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10년 차 마케팅 전문가를 쓰레기 치우라고 지시한 사건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여 문제가 발생한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완영 의원은 '괴롭힘'의 개념이 주관적이므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희롱도 "내가 불쾌했다면 성희롱으로 인정되는 겁니다"라는 식으로 주장하였는데, 괴롭힘과 성희롱을 주관적 잣대로만 판단한다는 것으로 오해한 듯하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기준으로 보아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가 이미 정립되어 있음에도 단지 주관적 영역이므로 보호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법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완영 의원과 같은 자유한국당 소속의 장제원 의원의 의견도 이와 다른바 없다.
"법사위에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휩쓸려 가지고 애매한 문구나 애매한 자구 규정을 정확히 안 한다는 것은 법사위가 해야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서적 고통이 뭐지요? 업무환경이 뭐지요?" (법사위 회의록 中)
두 의원의 '활약' 덕분에 개정안은 소위원회로 넘겨졌고 법사위를 통과하는 것은 시기가 요원해졌다. 덕분에(?) 괴롭힘을 겪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는 노동부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가인권위원회나 노동위원회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괴롭힘 행위를 인권위원회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 규정하여 진정을 제기할 수 있지만, 수개월이 소요된다는 점과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시정 권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처벌은 더욱 먼 이야기다.
노동위원회를 찾아간다고 치자.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의 부당한 '인사명령'인지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사용자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는 인사명령의 성격으로 인해 노동자가 ‘괴롭힘=부당한 인사명령’이란 판단을 받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설령 부당한 인사명령이라고 구제된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는 원상회복 외에 어떠한 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 노동자만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을 부담할 뿐이다.
이번 개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사회적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위 ‘갑질’에 대한 분노가 축적되고 ‘괴롭힘’의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가 불발되면서 관련 규정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모두 현재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모든 법안이 정지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오늘도 권고사직하지 않으면 기존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공장에서 근무할 상황에 부닥쳐 도움을 청하는 8년 차 연구직 노동자의 전화를 받았다. 직장인 30%가 괴롭힘의 겪은 경험이 있다고 호소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자유한국당 소속 법사위 의원들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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