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죽음이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가 숨진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가슴앓이가 멈출 줄 모른다. 청년의 이름은 김용균. 올해 스물넷. 사회에 발을 디디자마자 산재의 희생자가 됐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에서 봉급을 몇 번 받지도 못하고 스러져갔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옮겨주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새벽 작업을 하다 벨트에 끼여 숨졌다.
컵라면 3개와 과자 한 봉지, 탄가루에 시커멓게 된 얼굴을 닦기 위한 물휴지 한 통 등 그가 남긴 유품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날카롭게 후벼 판다. 취직의 기쁨에 겨워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거울을 보며 해맑게 웃는 모습의 동영상을 남겼다. 그 동영상이 지금 온 국민을 울리고 있다.
이 청년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였다. 자라면서 부모를 속 썩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자식을 사지로 내몬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는, 한 맺힌 부모의 언론 인터뷰 모습이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든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가. 그의 죽음 앞에 대한민국은 산재왕국이라거나, 산재사망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2위라거나,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는 진단 등 그 어떤 비판과 지적도 사치라는 생각마저 든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산재사고 원청업체 책임 강화, 중대재해 상습 발생 기업에 대한 가중처벌법(일명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고나 사건이 터질 때만 언론, 정부, 국회, 노동단체 등이 왁자지껄하고 떠들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후지부지 되고 말았다. 산재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은 언제나 멀리 있었다.
하청업체 흙수저 노동자 숨지는 일 더는 없도록 막아야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안전장치도 없이, 조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탄가루가 날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위험하고 더러운 곳에서 홀로 작업하도록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만약 그 작업자가 자신의 자녀라면 그런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도록 그토록 오랫동안 방치했겠는가? 서부발전 사장과 태안화력발전소 책임자, 그리고 협력업체 한국발전기술 사장에게 묻는 말이다. 아니 자신이라면 그곳에서 그렇게 목숨 내걸고 일했겠는가?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저녁이 있는 삶이 있는 보장되는 보수를 받는 금수저이다. 반면 위험한 작업을 도맡아 하는 하청업체 또는 재하청업체 노동자는 박봉에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워야 하는 흙수저이다. 흙수저들이 위험하고 건강에 유해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더라도 목숨을 잃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한데 그마저 책임져주지 않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그것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로 하여금 성찰하도록 만들고 있다. 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책임이 큰 사람들, 대통령과 장관, 공공기관 책임자, 국회의원, 법관, 언론인, 노총위원장, 기업주 등이 크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외면하거나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제도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열다섯 소년 노동자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스러져간 것이 벌써 30년이 지났다. 1000명 가까운 직업병 환자를 양산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노동자 집단 중독 참사가 터진 지도 30년이 넘었다. 2007년 물위로 드러나 글로벌 기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삼성전자 노동자 집단 백혈병 참사도 10년 넘는 오랜 세월동안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끔찍한 사건을 겪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직업병 참사를 막기 위한 근본적 제도·의식 혁신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통령은 근본 대책 주문, 정부는 곁가지 대책 발표
산재사고는 산재공화국이란 단어가 말해주듯 그동안 헤아리기 힘들만큼 자주 발생했다. 그 가운데 아직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것들도 많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열아홉 살의 외주업체 직원 김아무개 씨가 전동열차에 치어 사망한, 이른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2017년 11월 제주도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숨진 '제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한결같이 어린 나이에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김용균 씨처럼 나 홀로 작업을 하다 숨졌다.
이런 산재·직업병 사고나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특별근로감독 실시,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말해왔다. 하지만 거의 늘 말로 그쳤다.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 사망 사고가 나고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정부는 △고강도의 특별감독 △조사위원회 구성 △2인1조 근무 즉시 시행, 위험작업 시 장비 정지, 6개월 미만 경력자 단독작업 금지 등 긴급 안전조치 △인력충원 등의 대책을 쏟아냈다. 그동안 수많은 산재사고 때는 무엇을 하고 이제 와서 이런 조치들을 발표하는지, 그런 조치들이 과연 유사 사고 내지는 산재사고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인지에 대해 따져보고 내놓은 대책인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원가 절감을 이유로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용자 의무까지 바깥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며 "최근 산재 사망의 공통된 특징이 주로 하청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해 왔음에도 이러한 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급히 제정해야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견주면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이다. 영국과 같은 곳에서도 이런 법을 제정·시행해 산재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법 제정 이야기만 나오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핑계를 대며 미적거려왔다.
정부는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내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재를 다발시키고 있는 근본적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 기업은 이윤 창출에 목을 맨다. 기업의 태생적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안전을 소홀히 하면 기업이 이윤 창출은커녕 생존 자체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안전을 소홀히 해 상습적 산재사고가 생긴 기업 하나를 망하게 하면 산재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No Safety, No Margin." "No Safety, No Survival. (안전 없이 이윤 없다. 안전 없이 생존 없다.)"
우리 사회에서 뿌리내려야 할 경구이다.
끝으로 나는 결코 노동자 김용균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곳은 없기에 말이다. 대신 김용균의 부모님 말씀처럼 제2, 제3의 김용균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는 서둘러 이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 나아가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작업장과 직장, 가정과 사회에서 일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할 책무가 국가에 있다. 안전과 생명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본인권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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